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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대학살의 역사2

또다른공간-------/알아두면좋다

by 자청비 2005. 10. 28.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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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메르 루즈 대학살(일명 킬링필드)

◀폴포트 (1928-1998)

캄보디아 공산혁명을 주도했던 폴포트 (Pol Pot)에 의해 1975년부터 4년간 캄보디아에서 벌어진 2차 대전 이후 아시아 최대의 학살극이다. 1975년 미국의 원조로 연명하던 극도로 부패한 론놀 정권은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즈 군대에 의해 캄보디아에서 쫓겨난다. 무력으로 캄보디아의 정권을 잡은 폴 포트는 비이성적인 극단주의자였다. 자신이 이상향으로 생각한 농업 기반의 공산주의 사회를 최단시간 내에 건설하기 위해, 혁명에 걸림돌이 라고 생각되는 모든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이후 4년간, 캄보디아 국민의 1/3에 해당하는 170여만명의 무고한 인명이 학살된다.

 
폴 포트는 원래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보기 드문 엘리트였다. 그는 프랑스 유학을 다년 온 뒤 공산주의와 모택동 사상에 빠져 부패에 허덕이는 조국을 개혁코자 쿠데타를 일으켰다. 폴 포트의 크메르 르주 정권은 자본주의나 외세에 연계된 사람들을 가차 없이 처형했다.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는 폐지되었고 시민들은 노동자들을 제외하고 농촌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중앙은행은 폭파되고 집단 농장이 곳곳에 세워졌다. 외국어를 구사하는 사람, 공무원, 교수, 의사, 약사 등 전문직 종사자와 중류층 이상의 사람들은 무조건 처형 대상이었다. 
 

크메르루주는 총알을 아끼기 위해 사람들을 구덩이에 생매장시키고 우물에 넣기도 했다. 심지어 농민이 안경을 썼다는 이유로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오해해 죽임을 당했으며 국제경기에 참가한 경력이 있는 운동선수 2천명이 학살되기도 했다. 

 

이렇게 크메르루주에 의해 캄보디아의 중산층, 상류층 지식인 층은 대부분 살해됐고, 수많은 양민들이 농업과 건설 현장에서 죽노동에 시달리다 사망했다. 특히 캄보디아 내 800명의 의사 중 760명과 545명의 판사 중 541명이 살해될 정도로 크메르 루즈의 지식인 혐오증은 극한을 치달았다. 이때의 대학살로 캄보디아 국가는 기반부터 궤멸돼 버렸고, 이때의 궤멸된 상태에서 회복되기 위해 캄보디아는 여러 세대를 인내해야 했다.


1979년 크메르 루즈 정권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베트남 군대의 침공으로 무너졌고, 크메르 공산당이 북쪽 산악지역으로 물러가며 그도 역시 그때부터 산악에 묻혀사는 은둔생활과, 간혹있는 게릴라 전으로 활동을 벌였지만 역부족이었고, 정부군에 의해 억류, 가택연금 상태에서 1998년 사망한다. (결국 폴 포트와 그의 동료들은 단 한명도 제대로 된 법의 심판을 받지 않았다.)

 

캄보디아의 비극은 사실 닉슨 정권이 이끈 월남전과 깊은 연관이 있다. 1970년대 초 캄보디아에 떨어진 대규모 폭격도 닉슨 대통령이 명령했으며, "아이러니칼하게도" 크메르 루즈 군에 금전적 군사적 지원을 해 준 것도 닉슨 대통령이었다. 이유인 즉, 북 베트남의 월맹군에게 위협이 될만한 세력을 키우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사망하기 직전의 폴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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