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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대학살의 역사 4

또다른공간-------/알아두면좋다

by 자청비 2005. 11. 8.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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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南京) 대학살,

-인간의 잔인함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1937년 12월 13일부터 1938년 초 몇 달 동안 중국의 난징에서 저질러진 일본인들의 엄청난 양민대학살을 난징대학살이라 한다. 난징을 점령한 일본 군인은 세계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잔학한 만행을 벌이기 시작했다 .수천, 수만 명의 젊은 남성들은 마치 가축처럼 묶여져 도시 외곽으로 끌려가 기관총 세례를 받았고, 총검 훈련의 연습물이 되었으며, 가솔린 세례를 받은 후 산 채로 태워지기도 했다. 그로부터 몇 달 동안 이 도시의 거리는 시체로 산을 이루었고 썩어가는 살 냄새로 악취를 풍겼다. 이때 희생된 사람이 약 35만명 정도라고 한다.
 
그 해 11월 일본군 3개 부대는 일제히 난징을 향했다. 난징으로 가는 길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눈에 띈 사람은 모두 사정없이 구타당하고 총검에 살해되었다. 희생은 이 작은 마을에 국한되지 않았다. 11월 19일 비가 쏟아지는 아침, 중국인들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얼굴에 두건을 쓴 일본군은 쑤저우의 성문을 밀어젖히고 난입했다. 이 일본인들은 며칠 간 살인과 약탈을 저질렀고 오래된 유적을 불태웠으며 수천 명의 중국 여성을 능욕했다. 일본 군인들이 12월 13일 새벽 성벽을 통해 난징을 침략했을 때 난징 시민들의 수는 일본군 병사의 수보다 훨씬 더 많았다. 난징을 공격하러 간 일본인 군대는 9만 명이었는데 그 당시 난징 시내에는 50만 명의 일반 시민들과 9만 명의 중국군이 있었던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추정한다.

 

 

난징 대학살에 있어 단일 규모로 가장 큰 학살은 무푸산 근처에서 일어났다. 난징의 북쪽, 곧 난징과 양쯔 강의 남쪽 둑 사이에 있는 이 산에서는 5만7천명의 민간인과 전직 군인들이 살해되었다. 수많은 중국군의 시체를 처리하는 것은 일본군에게 또 다른 문젯거리였다. 난징과 그 주변에서 학살당한 전체 중국군 가운데 일부만이 무푸산에서 처형됐는데, 시체 처리에만 며칠이 걸렸다. 매장을 하기도 했지만 7천∼8천구의 시체를 묻을 수 있는 커다란 구덩이를 팔 수 있는 곳을 찾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태우는 방법도 있었지만 일본군에겐 충분한 연료가 없었다. 예를 들자면 무푸산 학살 후, 일본군은 시체에 휘발유를 드럼통으로 부어 태우려 했지만 불길이 시체를 재로 만들기 전 연료가 바닥나곤 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체는 양쯔강에 내던져졌다.

 

시아크완으로 끌려 온 중국인 포로들이 강을 따라 한 줄로 정렬해 있는 것을 목격한 종군 특파원 유키오 오마타는 이렇게 기록했다. "첫번째 줄에 서 있던 포로들의 목이 잘렸다. 두번째 줄의 포로들은 자신의 목이 잘리기 전에 앞줄에 서 있던 포로들의 목이 잘린 몸통을 강물에 던져 넣어야 했다. 살육은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되었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2천여명밖에 처리할 수 없었다. 그 다음날 이런 방식의 처형에 싫증이 난 일본군은 포로들을 한 줄로 세운 후 기관총 사격을 가했다. 포로들은 강 속으로 뛰어들었지만 강 건너편에 도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난징 대학살 동안 여성에 대한 강간은 밥먹듯이 이뤄졌다. 임신 중인 여성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임신 중이거나 방금 출산한 여성도 강간의 희생자가 되었다. 임신 9개월의 한 여성은 강간을 당한 후 건강은 물론 정신마저도 이상해졌으며, 임신을 한 여성을 발로 걷어차 죽이는 일도 일어났다. 심지어 임신한 여성을 강간한 후 그녀의 배를 가르고 태아를 꺼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많은 일본 정치가들과 학자들, 산업 각 분야 지도자들은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난징에서 대학살이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한다. 교사들이 역사 시간에 유대한 학살에 대해 가르치지 않으면 불법으로 간주되는 독일과 달리 일본은 수십 년 간 조직적으로 난징대학살에 대한 언급을 교과서에서 지워왔다. 박물관에서 난징대학살에 관한 사진을 떼어내고 원래의 기록들에 나타난 끔찍한 사실들을 교묘히 위장했으며 대중 문화와 관련해 이 학살과 관련한 모든 언급을 삭제했다. 최근 일본의 우익단체들이 오사카에서 대대적인 집회를 열고 "난징 대학살은 20세기 최대의 거짓말" 이라며 사실 자체를 아예 부인하고 나서 내외로 큰 파문이 일고 있다. 그들은 "증거가 없지 않느냐" 고 큰소리로 되묻고 있다.<참고자료 : http://www.chinainkorea.co.kr/역사정치/남경대학살.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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