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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대학살의 역사 5

또다른공간-------/알아두면좋다

by 자청비 2005. 11. 8.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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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와 나치에 대한 기록들
 
1.5
12,000
15,000
28,000
200,000
6,500,000
11,000,000

이 숫자의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이 모두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와 나치, 유대인 그리고 학살에 관련된 숫자입니다. 지금까지의 인류역사상 세계 최악의 전쟁이라 할만한 제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독일이 행했던 끔찍했던 역사를 숫자로 돌아봅니다.

 

△ 1.5m: 하인리히 히믈러(나치 독일 친위대 SS의 대장)가 1940년 휘하 SS 부대에 하달한 유대인 총살시 지켜야할 사격 거리. 반드시 유대인의 목덜미 뒷 부분을 겨냥하여 1.5m 이내에서 사격하라 지시했다. 이 명령으로 SS 부대원의 상당수가 미치거나 자살하는 등의 심각한 부작용을 낳아 1942년 철회했다. 게릴라와 소련군 포로는 3m, 집시, 폴란드인 등은 4m 이내에서 총살했다.

△ 12,000명: 나치 독일에 의해 학살된 유럽의 가톨릭 성직자 및 수도자들 그리고 가톨릭교회 관련 인사들의 수.

△ 15,000명: 1942년 나치 독일군이 1주일 동안 소련에서 총살한 사람들의 수. 당시 주러 나치 독일군 사령부는 ‘몹시 놀라우면서 매우 만족스러운 성과’라는 자체 의견을 달아 본부에 이를 보고하였다.

△ 28,000명: 나치 독일이 생체 실험용으로 학살한 사람들의 수.

△ 200,000명: 나치 독일이 1933년부터 1945년 패망 때 까지 국가 경제에 부담이 된다며 살해한 장애인의 수.

△ 6,500,000명: 나치 독일이 1933년부터 1945년 패망 때 까지 학살한 유대인의 수.

△ 11,000,000명: 나치 독일이 1940년 프랑스를 점령한 뒤, 전 유럽에서 유대인 말살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입안한 이른바 ‘마다가스카르계획’에서 제시한 제거 대상 전체 유대인의 수.

 

가장 많은 유태인을 학살한 아우슈비츠 수용소 모습입니다.

 

이렇듯 광기에 휩싸인 히틀러와 나치 일당은 단순히 학살에만 치중한 것이 아닌 생체실험에도 열을 올렸다. 지금도 가끔 흑백사진으로 볼 수 있는 당시의 기록들은 처참한 그 자체이다.

 

나치의 대표적인 생체실험

1. 감압실험 (대표적 연구자 : 지그문트 라셔) : 이 실험은 공군 조종사들이 비행기에서 탈출했을 때 그들이 고도에 따라 어떠한 상태를 보이며 그 고통에 대처하기 위해 시작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실험대상자들을 압력을 조절할 수 있는 방에 들여보낸 후 압력을 감소시키는 실험을 벌였습니다. 이 실험으로 실험 대상자들의 대다수가 죽거나 인체 내의 심한 손상을 입었습니다.

 

2. 냉동실험 (대표적 연구자 : 지그문트 라셔) : 공군 조종사, 해군 선원들을 위한 실험으로 그들이 얼마나 저온의 해상에서 버틸 수 있고, 어떤 방법으로 그들을 녹이는 것이 빠른 지를 연구하였습니다. 이 실험은 얼음물이 든 탱크에 발가벗겨 묶어 넣은 후에 진행되었습니다. 이 실험으로 많은 이가 죽었으며 몸을 녹이는 실험에는 여러 방법 중에 성교를 통한 해동 방법도 실험하여 여러 여자들이 강간을 당하였습니다.

3. 말라리아 실험 : 말라리아에 대한 위험과 치료법을 대상으로 한 연구로 1000이상으로 많이 실험되었습니다. 이 실험이 끝나고 희생자들은 죽거나 영원한 장애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4. 페릿 가스 실험 (대표적 연구자 : 헤르타 오베르휴저, 발데마르 호벤, 아우구스트 히르트) : 페릿 가스는 1차 대전 때 쓰인 독가스의 일종으로 이 실험은 전장에서 독가스가 쓰였을 때 어떻게 해야할 지를 주제로 하였습니다. 또한 실험의 현실도를 가중시키기 위해 실험 대상들의 몸에 못, 톱밥, 철 조각 등 다양한 것으로 몸을 비벼 일부러 상처를 낸 후에 자행되었습니다.

5. 술폰아미드 실험 (대표적 연구자 : 헤르타 오베르휴저, 발데마르 호벤, 프리츠 피셔, 카를 겝하르트) : 특별한 화학 물질인 술폰아미드의 효과를 실험시키기 위해 자행되었으며 특히 그것이 육군을 위해 어떤 도움을 줄지를 목적으로 하였습니다. 이 물질에 사용 대상자들은 다양한 박테리아를 주입했는데 연쇄상구균, 가스 괴저, 파상풍균을 투입하였습니다. 또한 실험의 현실성을 높이기 위해 유리조각, 철 조각, 나뭇조각으로 실험 대상자들을 비볐으며 이때 술폰아미드를 투입하여 그 효과를 본 것이며 이외에 다른 약물들도 쓰였다고 합니다.

6. 뼈, 근육, 신경 재생, 뼈 이식 실험 (대표적 연구자 : 헤르타 오베르휴저, 프리츠 피셔, 카를 겝하르트) : 이 실험은 외과 시술을 위해 특히, 육군의 부상병들을 위하여 실험되었습니다. 이 실험으로 희생자들은 영원히 장애가 되거나, 몸의 일부가 절단되고, 평생에 고통을 겪게되었습니다.

7. 바닷물 실험 : 이 실험은 공군의 조종사와 해군의 선원들을 위하여 실험되었습니다. 여기서 실험대상들은 음식과 물을 먹지 못하였고 오직 화학 처리된 바닷물만 마셨습니다. 이 실험으로 여러 실험들과 같이 많은 희생이 치러졌습니다.

<해수 실험의 희생자>

 

8. 전염병, 황달 실험 (대표적 연구자 : 발데마르 호벤) : 이 실험은 여러 질병들에 대한 치료와 관찰을 위해 시작되었고 특히 육군을 위한 도움을 주기 위해 자행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질병과 황달액을 투입 받았으며 결국 다른 실험들처럼 많은 희생을 야기했습니다.

9. 불임 실험 (대표적 연구자 : 카를 클라우베르크, 아돌프 포코르니, 빅토르 브라크) : 이 실험에 목적은 의학 발전이나 야전의학의 발달을 위해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이 실험은 오직 유태인들을 비롯한 나치가 혐오하던 인종들의 절멸을 위해 자행되었습니다. 이 실험의 목표는 최소한에 방법으로 더 이상의 인종 증식을 막기 위한 방법 개발이었습니다. 그리고 약물, X-레이, 거세 방법이 고안되었습니다. 이 실험의 피해자는 자그마치 400,000명이라고 합니다.

10. 발진티푸스 실험 : 이 실험은 발진티푸스를 황열병, 천연두, 파라티푸스, 콜레라 등을 비롯하여 여러 바이러스의 위험과 치료법, 백신 법을 개발하기 위해 자행되었습니다. 이 실험을 할 때마다 90% 이상이 죽었으며 바이러스를 위한 백신 개발에서도 많은 이들이 죽었습니다.

11. 독 실험 (대표적 연구자 : 발데마르 호벤, 요하임 무르고브스키) : 이 실험은 다양한 독극물에 대한 효능을 실험하기 위해 자행되었습니다. 이 실험으로 엄청난 독이 투입되어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으며 더 나아가 독을 간편한 도구에 이용하여 쓸 수 있게 확장되었습니다. 이 실험으로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습니다.

12. 소이탄 실험 : 이 실험은 화상에 대한 반응과 이를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다양한 화상치료제의 효과를 보기 위해 진행되었습니다. 이 실험도 다른 실험처럼 많은 희생을 야기했으며 특히 이 실험의 피해자들은 약의 후유증과 화상의 상처로 고통받았습니다.

13. 안락사 실험 (독보적인 연구자 : 카를 브란트) : 이 실험은 오직 카를 브란트만이 추진한 실험이며 어떻게 하면 사람을 안락사 할 수 있을지, 어떤 방법이 좋을 지를 연구하였습니다.

 

광기에 찬 전쟁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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