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속의 일본어>
농업은 어떤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일본 글, 말, 문화 따위의 찌꺼기가 한 데 버무려져 뭐가 찌꺼기고 뭐가 쓰레기인지도 모를 지경이다. 이 지경까지 오기에는 농업학자들의 잘못이 가장 크다.
과학자, 특히 농업과학자들은 자연현상을 이해하고 이를 농업에 응용할 수 있도록 대중 속으로 끌어내는 임무를 맡은 사람이다. 자연현상이나 농업관련 지식을 일반사람들과 공유하고 그 기쁨을 함께 즐기는 것이 농업과학자가 사회로부터 받은 의무이자 선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농업학자는 실험실에서는 그들만의 전문용어로 '밀담'을 나누고, 전문학회에서는 어려운 말로 범벅이 된 논문을 발표하는 자기들만의 '잔치'를 벌이고 그것이 다인 것으로 생각한다. 기자들도 문제다. 하이에나처럼 썩은 내 나는 정치권 기사나 사회의 비리를 찾아 조지는 데만 신경 쓰고 다녔지 어느 누가 농업에 대해 신경 쓰고 먹을거리에 대해 신경 썼던가. 단 하루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을 진데, 먹는 것보다 쓰레기에 더 관심이 많아서야 되겠는가? 쓰레기를 먹고 살 ! 생각이 아니라면 농업관련 소식에 좀 더 자주 귀를 기울여야 한다.
농업 속에 똬리 틀고 있는 일본말 찌꺼기 몇 가지를 살펴보자. 대부분의 사람이 모르고 있는 찌꺼기 중의 하나가 '장해'다. '거치적거리어 방해가 되는 일'은 장애(障碍)다. 그런데 일본에서 자기네 상용한자에 없는 '애(碍)' 대신에 일본 발음이 '가이'로 같은 '해(害)'를 써서 만든 말이 '장해(障害)'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앞으로 '생육장해'라고 쓸 것인가?
몇 년 전 농촌진흥청에서는 우리나라 농업현장에서 사용하는 농업용어 2,386단어를 모아 '알기 쉬운 농업용어'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 그 책에 따르면 '제정된 용어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말고 쓰임새에 따라 알맞은 우리말로 자연스럽게 바꾸어' 쓰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출수'를 '이삭패기'로 바꾼다고 해서 '출수(出穗)가 지연된다.' 를 '이삭패기가 지연된다.'로 바꾸지 말고 '이삭이 늦게 팬다.'로 바꾸라는 말이다. 몇 가지 예를 더 보면;
다비재배(多肥栽培)하면 도장한다. → 걸게 가꾸기하면 웃자란다.(×) 비료를 많이 주어 재배하면 웃자란다.(○) 과습하면 열과(裂果)가 많이 발생한다. → 과습하면 열매터짐이 많이 발생한다.(×) 너무 습하면 터진열매(열과)가 많이 발생한다.(○) 처럼 쓰임새에 맞게 고쳐서 쓰도록 했다.
알기 쉬운 농업용어에 있는 단어 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
안 쓸 말 쓸 말 안 쓸 말 쓸 말
개화기(開花期) → 꽃필때 제초(除草) → 김매기
건물중(乾物重) → 마른무게 조사료(粗飼料) → 거친먹이
결구(結球) → 알들이 종자(種子) → 씨앗, 씨
경운(耕耘) → 갈이, 경운 중경제초(中耕除草) → 김매기
과채류(果菜類) → 열매채소 지엽(止葉) → 끝잎
내냉성(耐冷性) → 찬기견딜성 차광(遮光) → 볕가림
다년생(多年生) → 여러해살이 천립중(千粒重) → 천알무게
담수직파(湛水直播) → 무논뿌림 추대(抽臺) → 장다리
도장(徒長) → 옷자람 추비(追肥) → 웃거름
미질(米質) → 쌀의 질 추수(秋收) → 가을걷이
배수(排水) → 물빼기 축사(畜舍) → 가축우리
분얼(分蘖) → 새끼치기 춘경(春耕) → 봄갈이
사료(飼料) → 먹이 출수(出穗) → 이삭패기
수경재배(水耕栽培) → 물가꾸기 탈립성(脫粒性) → 알떨림성
식재거리(植栽距離) → 심는거리 토성(土性) → 흙성질
엽록소(葉綠素) → 잎파랑이 토양(土壤) → 흙
이모작(二毛作) → 두그루갈이 표토(表土) → 겉흙
저장(貯藏) → 갈무리 해충(害蟲) → 해로운 벌레
저항성(低抗性) → 버틸성 화분(花粉) → 꽃가루
적과(摘果) → 열매솎기 화학비료(化學肥料) → 화학거름
적기(適期) → 제때, 제철 휴립(畦立) → 이랑세우기
전시포(展示圃) → 본보기논/밭 휴폭(畦幅) → 이랑나비
<기타>
이 외에도 고쳐 써야 할 말은 많다. 식탁→밥상,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런데도, 이따금씩→이따금, 교육이란 미명으로→교육이란 (허울 좋은) 이름으로, 입장→처지, 주방→부엌, 야채→남새/채소, 획일적→판에 박은 듯이, 민초→백성 등등 우리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아름다운 우리말을 살릴 수 있다. 감사(感謝)합니다도 그렇다. 고맙습니다라고 하면 된다. 말끝 마다 한자를 섞어 써야만 유식한 사람으로 봐 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는 심지어 국어사전에 없는 단어도 많다. 일의 순서를 의미할 때 쓰는 '수순(手順)', 물건의 조목을 의미할 때 쓰는 '사양(使樣)', 일의 구실을 의미할 때 쓰는 '역활(役活)' 따위는 우리 사전에 없는 단어다. 국어사전에 없는 단어인 줄 알면서도 쓸 것인가? 더 기가 막힌 것은 '이해심, 여유'를 의미할 때 쓰는 '유도리'다. 우리말로 알고 있는 이 말은 국어사전에 없는 말이 아니라 아예 일본말이다. '다대기, 사시미, 아나고' 따위와 같은 일본말인데도 우리는 우리말인 것처럼 그냥 쓰고 있다.
이런 것을 하나씩 들추다보면 가슴이 저리고 답답하다. 그러나 찾아내야 한다.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먹고, 길거리에 침 뱉듯 아무렇게나 뱉어버리기에는 우리말이 너무도 곱고 아름답다. 하루빨리 일본말 찌꺼기를 도려내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곧추세워야 한다.
<내 농사에 활용>
이 글에는 글쓴이도 모르게 일본식 단어나 표현이 들어있을 수 있다. '무식'해서 그런다. 알아야 한다. 뭣이 찌꺼기고 뭣이 쓰레기인지 알아야 안 쓸 수 있다. 일본사람들이 잊을 만하면 한마디씩 지껄여서 우리 속을 긁는다고 툴툴대기 전에 우리말 속에 있는 일본말 찌꺼기부터 찾아 없애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내가 생산한 먹을거리에, 우리말이 있는 것은 일본말을 버리고 우리말을 쓰고, 우리말이 없는 것은 옛말을 찾아 쓰자, 옛말에도 없는 것은 다른 말에서 비슷한 것을 얻어 새로 만들어 쓰자.
내가 생산한 먹을거리에 순 우리말로 가격을 쓰고, 우리말로 먹는 방법을 설명하고, 먹다 남은 음식을 갈무리 하는 방법을 우리말로 설명하면 얼마나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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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덴깡은 한자 '전간(癲癎)'을 일본어로 읽는 것으로 지랄병, 간질병을 의미하는 일본말이다. 흔히 어린애가 칭얼거릴 때 '덴깡 부린다, 덴깡 쓴다'라는 표현을 하는데 남의 자식이든 내 자식이든 절대로 써서는 안 될 말이다. '생떼, 어거지, 투정, 행패'라는 좋은 우리말이 있다. 절대로, 절대로 '덴깡'이란 단어를 쓰지 말자. 다만, 지금 이 글, 이 문장에서는 '덴깡'이 참으로 잘 어울리므로 마지막으로 여기에 그 단어를 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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