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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의 겨울산행

한라의메아리-----/주저리주저리

by 자청비 2006. 2. 27.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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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모처럼 동계휴가를 얻고  한라산에 올랐다. 관음사 코스를 택했다. 가만히 기억해보니 관음사코스로 내려왔던 때가 아마도 군 제대후 복학을 앞두고 한라산에 한 두차례 올랐던 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그러고보면 관음사 코스를 안다녀본지가 20년 가까이 되는 것 같다. 성판악코스는 숲으로 둘러싸여 코스가 단조롭지만 관음사코스는 계곡을 건너기도 하고 따라가기도 하면서 절벽옆으로 아슬아슬하게 가는 곳도 있어 험하긴 하지만 제대로 산행하는 맛이 난다.


방학중인 아이들과 함께 갔다. 다른 코스라면 이미 모두 다녀본 터라 관계없지만 아이들도 관음사코스는 처음이라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집에서 7시쯤 나섰다. 아직 어둠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하늘이 무척 흐려보인다. 관음사코스 입구에 다다라도 하늘이 여전히 어두워 보인다. 비 예보는 없었으나 워낙 한라산 기상이 변화무쌍해 안심할 수 없었다. 비옷을 갖고 와야 하는데 갖고 오지 않았던 터라 노파심에 비옷을 두벌 구입했다. 장비를 모두 점검하고 7시40분쯤 초입에 들어섰다. 초입에는 눈이 모두 녹아 있었다. 1km쯤 지나가니 비로소 눈이 조금씩 쌓여 있다.

 

아이들에게 아이젠과 스패츠를 모두 채우도록 했다. 월요일이어서 그런지 등산객이 없다. 앞선 발자국이 두 명 뿐이었다. 우리보다 조금 늦게 출발한 일행(3명)이 우리가 아이젠과 스패츠를 채우는 동안 우리를 추월해 넘어갔다. 점차 날이 밝아지면서 안개가 걷히고 햇빛이 산넘어 위로 솟아오른다. 이런 날씨라면 오늘 날씨가 쾌청할 것 같다. 계속 가다보니 대피소에 다다랐다. 우리를 앞서간 일행이 그곳에서 쉬고 있다. 우리는 그냥 지나쳐갔다.  예전보다 적송이 훨씬 많아졌다. 개미등-개미목이라고 불리던 곳이 예전에 많이 황폐해졌던 곳인데 지금은 적송 숲으로 변해 있다. 눈으로 덮여 있어서 그런지 예전의 느낌이 살아날 듯 말듯 한다. 마침내 적송 숲을 벗어나 삼각봉에 다다랐다. 삼각봉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바 없다. 다만 주변이 눈으로 뒤덮여 있어 조금 어색하다. 삼각봉 남쪽으로 왕관봉이 웅장하게 펼쳐진다. 그 뒤로 눈에 덮인 백록담이 우아한 자태를 드러낸다.


폭설로 등산로 주변이 많이 훼손돼 있다. 날씨가 너무 좋아 눈이 녹는 듯 싶다. 아이들이 등산화를 신지 않았는데 눈이 녹으면서 신발이 젖을 것 같아 내려가는 길이 매우 걱정됐다. 여의치 않으면 용진각 대피소에서 돌아서 가야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산행속도도 매우 더딘 편이다. 중 3이 되는 문형이는 괜찮은데 이제 중학생이 되는 나영이는 아직 내색은 안하지만 조금 힘든 모양이다.


마침내 용진각에 다다랐다. 계곡위로 눈이 덮여 있어 어디가 바위고 어디가 물이 흐르던 곳인지 모르겠다. 새로 만든 대피소와 화장실은 눈 속에 여전히 파묻혀 있다. 잠시 쉬면서 가만히 눈치를 살폈다. 여기서 돌아가자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전혀 그럴 기미가 안보인다. 당연히 정상에 가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걸까. "자! 이제 조금만 힘내면 정상이다"면서 용기를 북돋우며 출발했다. 옛 용진각 대피소를 지나 산 정상을 향했다. 여기서부터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올라가야 했다. 눈이 덮여 더욱 힘들었다. 미끄러지는 탓에 거의 기다시피하면서 올라갔다.

 

힘겹게 왕관봉에 올랐다. 정상 방향을 제외하고는 모든 세상이 발아래 놓여 있다. 그리고 오후 1시 조금 안돼 마침내 동능 정상에 다다랐다. 정상에서 부는 칼바람은 땀에 젖은 옷과 얼굴을 파고 든다. 간단히 기념촬영하고 1시를 조금 넘겨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하는 길은 미끄러지기 연속이었다. 기다시피 올랐던 왕관봉에서 내려오는 길은 미끄럼타고 내려와야 했다. 더구나 관음사로 하산하는 사람들이 많아 이미 길은 미끄럼틀이 돼 있었다.  용진각에서 잠시 쉬면서 허기를 채웠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오후 2시를 넘어서고 있다. 하산하는 길은 비교적 수월했다.

 

중간에 문형이가 몇 번 미끄러지긴 했지만 간간히 기념사진도 찍고 하면서 빠른 속도로 내려올 수 있었다. 관음사 초입에 도착하고 나니 오후 5시였다. 산행시간을 8시간으로 잡았는데 올라가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근 20년만의 관음사코스 산행이었지만 용진각 주변의 경치는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 없이 웅장한 옛 모습 그대로 였다. 더구나 아이들과 지난해 1월 성판악 코스를 통해 정상에 올랐던 이후 모처럼 산행이라 더욱 즐거웠던 산행이었다. "얘들아! 내년에도 가자!"소리에 "예"(문형) "싫어요! 너무 힘들어요"(나영) 그래도 나는 안다. 내년쯤 나영이에게 산에 가자고 하면 싫어하면서도 따라 나설 것을….

<사진 1 : 삼각봉 앞에서 왕관봉을 배경으로>

<사진2 : 한라산 동능정상에서, 뒤로 보이는 것이 백록담 분화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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