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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사회 계속될 것인가?

세상보기---------/조리혹은부조리

by 자청비 2006. 8. 1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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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술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그 심각성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전체 국민들의 음주율은 매년 증가하고 있고, 특히 청소년과 여성 음주율은 계속 높아지는 추세인데 청소년(12∼19세)의 음주율이 32.3% 에 달한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술 소비량을 살펴보면 성인 1인당 평균 소주 71.1병, 병맥주 140여병으로 매일 소주 1.5병과 맥주 3병을 마시고 있는 꼴이다. 이러다보니 주류회사들의 이익은 1조원에 이르고 이들이 한해 내는 주세만 2조원을 넘는다고 한다. 가히 술의 천국이라 불릴 만하다.

문제는 건강악화나 사고 등 술이 직접적인 원인이 돼 사망하는 사람이 2만여 명에 이르고 사회경제적 비용이 14조 9000억 원에 달한다는 것인데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총 재정이 20조원을 약간 넘고 1년 국방예산이 20조원 정도라는 것을 고려해보면 어마어마한 액수다. 술이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된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술중독이라고 할 수 있다. 술은 일종의 화학약품으로 꾸준히 마실 경우 중독에 이른다.

어떤 물질에 대해 중독에 이르는 과정은 대개 똑같은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물질이 몸 안에 들어갔을 때 어떤 긍정적인 기억을 갖게 된다면 -예를 들어 기분이 좋아진다던지- 다음에는 자기도 모르게 그 물질을 찾게 되는데, 중단하게 되면 여러 가지 금단증상이 생긴다. 이것을 어떤 물질에 대한 ‘의존’ 이라고 한다. 술, 마약, 도박 모두 중독과 의존에 이르는 경로는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약이나 도박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술은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이 병이 아닌 능력으로 인정받는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접대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안 되는 것을 술을 먹여 되게 하는 것’이 접대이다 보니 술을 잘 마시는 것이 능력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또 선천적으로 술이 약한 사람에 대한 배려도 없이 무조건 술을 권한다. 특히 직장상사가 부하에게 또는 선배가 후배에게 강권하는 경우가 많은데 술자리가 윗사람의 파워를 과시하는 자리가 되는 것이다.  선진한국을 위해 일에 미쳐 살았던 우리 가장들은 막중한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술 외에는 달리 그것을 풀 방도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다보니 술에 중독된 사람이 어느덧 300만 명에 이르렀다.


처음부터 중독에 빠지는 사람은 없다. 과음과 폭음이 반복되는 생활을 계속하다보니 어느 순간 중독단계에 이른 자신을 발견한 것뿐이다.  더구나 중독 단계에 이르러서도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더 큰문제다.  술을 마시기 위해 적당한 핑계거리를 내세워 자주 사람들을 소집하는 경우나 집에서 혼자 매일 술을 마시는 경우, 그리고 해장술을 마시는 경우라면 알콜 의존이 아닌지 반드시 검사와 함께 상담도 받아보아야 한다.

술중독에 빠지면 주위의 가족들이 고통을 받는 경우가 많다. 폭력에 시달리고 우울증을 앓고 있는 가족들이 과반수가 넘는다. 중독에 빠진 사람이 300만이니 대략 5가정에 1가정 정도는 술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셈이다. 취재를 하는 동안 만난 가족들은 하루빨리 지옥 같은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자살이나 살인 등 극단적인 방법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남편이나 아내가 중독일 경우 이혼했거나 이혼 위기에 놓여있는 등 해체 직전에 이른 가정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들 중에 현재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의 비율은 대략 1~2% 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의 알콜의존치료는 대부분 정신병원에서 담당하고 있는데 환자나 가족들은 다른 정신병 환자들과 섞여서 치료를 받는 것을 꺼린다.  정신병원에 대한 안 좋은 인식 때문인데 이들의 인식만을 탓할 수 없는 것이, 실제로 현재의 많은 정신병원에서는 알콜의존치료 프로그램을 제대로 가동하고 있지 않다.

알콜의존은 맹장수술처럼 수술 한방으로 치료가 끝나거나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약으로 조절하는 병이 아니라 지속적인 상담과 재활이 필요한 그야말로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병이다. 따라서 다양한 치료 프로그램을 한다고 해서 돈을 더 받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병원들이나 의사들도 알콜의존치료를 기피하게 되는 것이다. 또 병원을 퇴원하고 나서도 지속적인 상담과 재활이 필요하지만 이를 위한 알콜상담센터가 전국에 26개에 불과하다보니 300만명에 이르는 환자들이 상담과 치료를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더 이상 알콜의존 환자들을 방치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하루빨리 알콜치료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 그런데 알콜 문제를 위해 정부가 1년에 쓰는 예산은 50억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1년에 꼬박꼬박 걷는 주세 2조원은 도대체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말로만 공공의료 강화를 외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의료는 민간에 맡겨야 할 부분이 있고 정부가 나서야 할 부분이 있다. 300만에 이르는 알콜의존 환자들을 더 이상 민간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는 것이 취재를 하면서 든 생각이다.

<MBC 신재원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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