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機械’라는 낱말이 온전하게 등장하는 최초의 문헌은 『장자(莊子)』 <천지(天地)> 편일 것이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이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밭에 물을 주고 있는 노인을 만났다. 그 노인은 우물의 수면까지 내려가는 길을 파고 항아리에 물을 담아 와서 밭에 뿌리고 있었는데, 노력에 비해서 대단히 비효율적이었다. 그래서 자공이 두레박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고 시험해 보라고 권유했다. 그랬더니 노인은 “내가 우리 선생님으로부터 들으니, 기계를 가진 자는 반드시 기계를 쓸 일이 있게 되고 기계를 쓸 일이 있는 자는 반드시 기계에 사로잡혀 무엇을 꾀하는 마음이 생긴다”(有機械者 必有機事 有機事者 必有機心)라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기계에 사로잡혀 무엇을 꾀하려는 마음’(機心)이 생기면 인간의 순수한 본성이 안정되지 못한다고 하면서 두레박의 사용을 거절했다. 여기서 두레박이 일종의 기계인 셈이다. 장자 사상 전반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이 이야기의 완전한 뜻을 읽을 수 있겠지만, ‘기계를 가진 자는 반드시 기계를 쓸 일이 있게 된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자동차를 가지면 반드시 자동차를 쓸 일이 있고,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가진 자도 반드시 그것을 쓸 일이 있게 된다. 그리고 기계를 쓰다보면 어느 듯 그 기계에 사로잡히게 된다. 현대인이 자동차와 컴퓨터와 휴대폰에 사로잡혀 그것들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이 엄연한 현실이 아닌가? 이렇게 기계에 사로잡힌 마음을 “기심(機心)”이라 하는데, 이는 정상적인 ‘사람의 마음’(人心)이 아닌 ‘기계의 마음’을 뜻한다. 이 말이 후대에는 ‘교묘하게 남을 속이려는 마음’ 또는 ‘남을 해치려는 마음’의 뜻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機’자에는 ‘거짓’, ‘나쁜 책략’의 뜻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기심’은 좋지 않은 마음을 가리키는데 그 어원은 ‘기계’에서 나왔다. 오늘날 가장 가공할 기계는 군사용 무기이다. 그 중에서 핵탄두를 실어 나를 수 있는 미사일 때문에 지금 세계가 시끄럽다. 북한이 대포동 2호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다. 군사용 무기는 원래 사람을 살상할 목적으로 고안된 기계이다. 이 기계를 가진 자는 이 기계를 쓸 일이 있게 되고 이 기계를 쓸 일이 있게 되면 이른바 ‘기심’이 생기게 마련이다.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바로 ‘기심’이다. 이건 ‘인심’이 아니다. 컴퓨터가 인간의 사고 패턴을 바꾸어 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컴퓨터에 의한 조직적 범죄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가? 자동차가 내뿜는 공해물질이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다. 소름 끼치는 최첨단 무기의 개발로 인간은 언제 죽을지 모를 위험에 처해 있다. 이 모든 것이 기계로 말미암은 재앙이 아니겠는가? 자꾸만 앞으로 나아가려는 기술의 속성상 오늘의 기계문명을 과거로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이쯤해서 우리는, 두레박의 사용을 거절한 노인의 마음을 한 번쯤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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