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미FTA 2차협상이 국내에서 진행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한미FTA 협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DAUM 아고라에서 한미FTA 협정의 추진배경 및 과정 등에 대한 분석이 잘된 것 같은 글이 있어서 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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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가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그야말로 일방적으로 강행하고 있다. 한미FTA를 향한 정부의 일방 질주는 정치권의 '적극적인' 방관과 보수언론의 '더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정부는 "지금은 한미 FTA에 무조건 반대할 때가 아니라 한미FTA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한 전략을 짤 때"라며 한미FTA에 대한 염려나 반대의 목소리를 구한말 쇄국주의나 반미 종속이론으로 쏘아붙이고 있다.
대통령은 왜 한미FTA 카드 꺼내들었을까?
한미FTA와 관련해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노무현 정부가 갑작스럽게 한미FTA를 추진하게 된 배경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동북아시아 경제의 중심이 되겠다며 일본이나 중국과의 FTA를 추진하고 있었던 정부가 아니었던가. 이른바 ‘동북아 균형자론’으로 조·중·동 등 보수 언론들로부터 "미국에 등을 돌리겠다는 것이냐"는 질타를 맞는가 싶더니, 올 초에는 '2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한미FTA를 체결해 미국과의 돈독한 관계를 회복하겠다고 선언하니 사람들로서는 헷갈리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공식적인 입장은 "중국에 쫓기는 상황에서 한국경제는 더 이상 제조업만으로 먹고 살 수 없다. 미국과 FTA를 체결해 미국의 선진 서비스들을 국내에 들여와 국내 서비스업을 고도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한미FTA를 체결해 경제가 성장하면 그 성장 과실로 경제 양극화 문제를 풀겠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좌파'와 '신자유주의자'라는 양 날개로 날 수 있다고 우기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있어 한미FTA는 오른쪽 날개에 해당하는 셈이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이런 입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은 "노무현 정부의 한미FTA 올인에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며 "(정부의 선전대로) 한미FTA가 그렇게까지 이익이 된다면 왜 여태까지 안 했는가…. 정부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쫓기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풀어줘야 한다"며 관료 출신으로서는 거의 최초로 한미FTA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이와 동시에 정부가 한미FTA를 추진하게 된 '진짜' 배경이 무엇인지를 놓고 수많은 추측과 소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정부가 한미FTA를 체결하는 조건으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유엔(UN) 사무총장 자리를 꿰찰 수 있도록 미국과 거래했다'는 상상력 풍부한 추측에서, '정부가 미국과의 FTA 체결을 통해 북핵 문제는 물론 위폐 문제, 인권 문제 등으로 악화일로의 길을 걷고 있는 북미 관계에서 미국 측의 양보를 얻으려 한다'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시나리오까지 나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어느 것도 사실로 증명된 바 없다.
현재로서 노무현 대통령의 한미FTA 드라이브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노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었던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 비서관이 제시한 '한건론'이다. 노 대통령이 임기가 2년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다 할 업적을 남기지 못해 초조해진 나머지 한미FTA를 추진하게 됐다는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이라는 업적(?)을 남겼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쾌거를 이뤘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야심차게 밀어붙였던 동북아 균형자론에서도, 4대 개혁입법에서도,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에서도 '노무현 정부의 업적'이라고 할 만한 것을 만들어 내는 데 실패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9월 노 대통령은 해외순방길에서 김현종 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만났다. 바로 이 자리에서 김 본부장이 한미FTA라는 새로운 건수를 노 대통령에게 안겨줬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2004년 김 본부장은 자신의 화려한 프레젠테이션 실력을 발휘해 한미 FTA에 관심이 없었던 미국 정부의 마음을 돌려놓은 상태였다).
한미FTA라는 새로운 건수를 잡은 노 대통령은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특유의 뚝심을 발휘해 의약품에 대한 새로운 가격정책의 도입 중단,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기준의 예외 마련,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 스크린쿼터의 축소를 일사천리로 단행했다. 바로 이것이 미국이 내건 '한미 FTA 협상을 개시하기 위한 4대 선결과제'였다.
재경부·외통부에 득실대는 '검은 머리 미국인들'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FTA라는 카드를 꺼내들게 된 보다 근본적인 배경에는 한덕수 경제부총리를 위시한 재정경제부와 외교통상부의 고위 관료들이 있다. 현재 한미FTA 협상을 전두지휘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들이다. 이 두 부처는 정부의 일방적인 한미FTA 추진에 대한 시민사회의 합리적인 문제 제기에 시종일관 ["지금은 한미 FTA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한미FTA를 성공으로 이끌지 협상 전략을 짜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대꾸해 왔다. 꽤나 그럴싸하게 들리는 주장이지만 바로 이 말에는 정부 관료들의 오만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한미FTA를 추진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는 '지적 능력'과 '권한'을 가진 것은 관료들뿐이며, 한번 관료들이 결정한 사안을 감히 국민들이 뒤집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특히 국회, 재계, 법조계 등과 끈끈한 네트워크를 형성해 한국경제를 미국식 신자유주의적 질서에 맞게 재편하는 데 여념이 없어 '모피아'(재정경제부의 영문 약어인 모페(MOFE)의 '모'와 마피아의 '피아'를 합성한 단어)라는 별명까지 얻은 재경부는, 노무현 정부의 일방적인 한미FTA 드라이브를 뒷받침하고 있는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오랫동안 재경부의 '마피아'적 행태와 싸워온 시민사회단체들은 한미FTA에 무역 장벽의 제거, 공공 부문의 민영화, 금융 시장의 완전 개방 등, "자본에 날개를 달아주기 위한" 재경부의 숙원 사업들이 패키지로 들어있다는 점을 지적하곤 한다.
한편 한미FTA 협상의 실무를 맡아보고 있는 외통부 인사들은 굳이 분류하자면 '성실한 친미 대외개방론자'들이다. 특히 한미FTA의 핵심인물인 김현종 외통부 통상교섭본부장은 '검은 머리의 미국인'으로 분류되고 있다.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미국의 유수한 대학(원)에서 공부했던 김현종 본부장은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한미FTA에 별 관심이 없었던 부시 정부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했는지 몰라도 정작 우리말은 잘 구사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국내 언론에서 김현종 본부장의 모습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국내의 한미FTA 반대 세력을 상대하는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것은 김종훈 한미FTA 협상 수석과 이혜민 한미FTA 협상단 단장이다.
그러나 이들의 성실함과는 별개로 이들이 한미FTA에 대한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것은 도가 지나치다. 이들은 "한미FTA와 관련된 문서를 공개하면 우리나라의 FTA 협상 전략이 노출돼 향후 다른 나라들과의 FTA 협상에 있어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는 핑계를 대며 한미FTA 관련 정보를 거의 공개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4월 한미FTA 2차 예비회의에서는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 나오는 문서들은 협상이 발효되고 난 후 3년간 공개하지 않는다고 미국 측과 합의했다. 이에 대해 송기호 변호사는 "정보를 독점해야 관료들이 (제멋대로) 마지노선을 그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협상 결과를, 마지노선을 지킨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며 '관료들의 정보 독점' 현상에 대해 신랄하게 꼬집은 바 있다.
정보 독점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한미FTA 체결이라는, 해방 이래 최대의 경제정책을 결정하고 실행함에 있어서 특정 국책연구소의 연구 결과에만 기대고 있다. 최근 자료 조작 및 은폐 논란에 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바로 이들과 '짝짜꿍'하고 있는 연구소다.
KIEP는 지난 1월 '한미FTA의 경제적 효과와 필요성'이라는 연구보고서를 내놓고 한미 FTA가 체결되면 GDP 1.99%가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아가 3월에는 이 연구에 '생산성 1% 향상'이라는 새로운 가정을 추가해 한미FTA로 GDP가 7.75%나 증가할 것이라고 재전망했다.
정부와 보수언론들은 KIEP가 내놓은 이런 수치들을 끊임없이 선전했다. 정부가 한미 FTA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연구결과나 자료들은 외면하고 오로지 KIEP의 장밋빛 전망만을 선전한다는 비판이 커져가고 있을 무렵, 급기야는 KIEP가 한미 FTA의 효과와 관련된 수치를 조작하고 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의혹은 아직까지도 해소되지 않았다.
이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학자로서의 양심을 버리고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정책을 뒷받침할 연구결과들을 마치 기계처럼 뽑아내는 KIEP 측에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한미FTA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평가하는 데 있어 'FTA는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결과를 내게끔 설계돼 있는 '정통 경제학'의 목소리에만 귀 기울이고 이를 국민들에게 선전하는 정부의 태도다.
'정치적 계산' 하기엔 한미 FTA 잘 몰랐다?
이 같은 한미FTA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치권은 어떤 계산을 하고 있을까? 올해 초 정부가 한미FTA 협상을 추진하겠다고 하자 여야는 한미FTA를 '비(非)이슈'로 만드는데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이는 무엇보다도 노무현 정부가 한미FTA라는 예상치 못했던 패를 들고 나오자 여야 모두 '이것이 내게 유리한 패인지 불리한 패인지'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한미FTA에 대해 알지 못했던 탓이 크다.
한마디로 정치권은 한미FTA가 우리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폭발력을 발휘할지 잘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일례로 한미FTA를 전담해서 취재해온 나는 정부가 한미 FTA 협상을 개시한지 두 달이 지나서야 몇몇 국회의원들로부터 "한미 FTA에 대해 다뤄보려고 하니 관련 자료들을 좀 나눠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나마 이들이 한미FTA에 가장 관심을 많이 보이는 축에 속한다.
올해 사립학교법 등 여러 정치·사회적 이슈들에 있어 극단적으로 대립했던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한미FTA에 있어서만큼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실 이 두 당은 경제정책에 있어서만큼은 거의 차별화되지 않은 신자유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한미FTA가 잘 될 수 있도록 성공 전략을 짜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정부의 입장에 대체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우리당과 정부는 2월15일 "1차 한미FTA 추진 관련 당정 공동특위"를 열고 내년 3월까지 한미FTA를 타결하는 것을 목표로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 4월11일 국회 통일외교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는 한미FTA의 졸속 추진을 우려하는 우리당 의원들의 지적이 쏟아지기도 했지만 비판의 타깃은 '한미 FTA' 그 자체가 아니라 '졸속 추진'이나 '준비 미흡'이었다.
야당인 한나라당 역시 "국민적 합의와 철저한 사전준비가 갖춰질 경우 한미FTA를 조속히 체결하는 것이 좋다"는 입장이다. 유일한 제도권 진보 정당인 민주노동당도 비정규직 법안 등 다른 사안들을 다루는 것만으로 바빴던지 정부의 일방적인 한미FTA 추진에 대한 원론적인 수준의 우려만 표시했을 뿐이다. 권영길 의원만이 한미FTA에 한미 양자투자협정(BIT)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지적했고, 대정부질문에서 한덕수 부총리에게 KIEP의 자료조작 및 은폐 문제를 집중적으로 따져 물었다.
한국사회 본모습 체계적으로 드러낼 계기
앞으로 한미FTA는 어떤 방향으로 달려갈까? 한미 양국 정부의 주장처럼 미 행정부가 가진 무역촉진권(TPA)이 실질적으로 소멸되는 내년 3월 전에 협상이 타결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정부가 지금과 같은 태도로 미국과 협조적인 -보다 정확히는 비굴한- 관계를 유지하고 정치권이 현재와 같은 수준의 암묵적인 동의만 해준다면, 내년 3월이 아니라 올해 연말에도 타결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미 FTA에 대한 저지 운동이 거세지고 있다. 한미FTA의 폐해가 농업에만 국한되는 줄만 알았던 각 분야의 운동 진영들이 이제 모두 한미FTA를 저지하는 데 가세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재경부·외통부 관료들의 '한미 FTA 올인'과 시민운동단체들의 '한미FTA 결사 저지'가 격돌할 태세다.
한미FTA는 경제적인 이슈들뿐 아니라 노동, 환경, 지적재산권 등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거의 모든 이슈들을 포괄하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한미 FTA는 한국사회가 당면한 모든 문제점들을 체계적으로 드러내는 장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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