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만의 친화성·집단성에 매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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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에서는 마라톤 참가가 개인 차원에서 행해지는 데 반해 한국에서는 집단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진은 지난 4월 서울 강변북로에서 열린 경향신문 서울마라톤 대회에 마라톤 동호회 회원들이 같은 유니폼을 입고 달리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
한국 사회는 가히 ‘마라톤의 시대’를 맞고 있다. 연간 400개에 달하는 각종 마라톤 대회들이 전국 각처에서 개최된다. 참가인원이 수천명에 달하는 대회는 보통이며, 소위 ‘메이저 대회’에 해당하는 대회들은 2만명 내외의 대규모를 자랑한다. 비단 대회 현장만이 아니라 강변 둔치, 공원이나 산길, 헬스장, 각급 학교운동장, 도로 등등 도처에서, 또한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에 이르기까지 무시로, 마라톤 훈련을 하는 ‘달림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모 은행에서는 마라톤 인구수를 수백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마라톤 통장’이라는 신상품을 개발하기도 했다. 마라톤용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쇼핑업체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으며, 마라톤 전문잡지만 해도 서너가지에 이른다. 왜 이렇게 현대 한국인들은 마라톤에 열광하게 된 것일까.
스포츠인류학의 관점에서 보건대, 현대 한국인들이 마라톤에 열광하는 현상에는 몇가지 주목할 만한 대목들이 존재한다. 우선 마라톤이 서구 사회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빠르게, 그야말로 ‘열풍’처럼 전파되었다는 점이다. 단적인 증거로 메이저 대회로 꼽히는 춘천마라톤 대회의 경우 1998년에 풀코스 부문 참가자 수가 1,000명을 넘지 않았고, 다른 부문들을 합치더라도 4,000여명에 불과했던 데 비해, 2003년 이래로는 풀코스 부문 하나뿐임에도 참가자수가 2만명을 넘게 되었다. 마라톤이 체력의 한계에 부딪혀 극한의 고통을 겪게 되는 상황까지도 수반하는 스포츠임을 감안한다면, 최근의 마라톤 인구 폭증은 예사로운 현상이 아니다.
이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설명은, 최근 ‘웰빙 담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한국인들이 여가시간을 잘 활용함으로써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깊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사회 분위기에서 마라톤이 웰빙의 근간인 건강을 효과적으로 확보해 주는 운동으로서 각광을 받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대다수의 마라톤 동호인들이 마라톤을 시작하게 되는 동기는 건강에 대한 고려이다. 모 관광여행사에서는 세계 각처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의 참가를 겸하는 패키지 관광 상품들을 개발하여 성공했는데, 이 역시 마라톤이 웰빙 지향적 생활양식의 확산과 연관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사실이다.
그러나 마라톤 열풍 현상에는 이런 식의 설명만으로는 부족한 면모들이 여럿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마라톤 마니아’라고 일컬어지는 수많은 사람들이 ‘시간단축’이든 ‘거리늘리기’이든 새로운 종류의 목표기록들을 계속적으로 설정하면서 그 성취를 위해 열중하는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 필자의 경우에도 8년에 가까운 마라톤 경력 중 가장 힘들게 완주해냈던 어느 대회에서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으로 골인하는 자신의 모습이 담긴 큰 사진을 연구실 책상머리에 두고 있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목표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 참가 기준기록을 달성하는 일임을 상기시키려는 것이다. 기실 신체적 건강을 챙기는 것이 주목적이라면 마라톤은 그다지 적절한 운동이 아닐 수도 있다. 힘차게 걷기나 5㎞ 내지 10㎞ 정도의 달리기가 그런 목적에는 훨씬 잘 부합하는 반면, 풀코스 마라톤은 부상 등 각종 위험부담까지 수반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격한 운동을 할 경우 몸 안에서 분비되는 ‘엔도르핀’이라는 물질에 주목하는 설명이 있다. 마라톤을 하다 보면 소위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 하여 몸은 힘든데도 정신이 맑아지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신비로운 상태를 경험하는데, 이것이 바로 엔도르핀에 의해 생기는 상태로 마라톤 마니아들은 기실 엔도르핀 효과에 중독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리학적 설명에 대해서 필자로서는 전적으로 공감하기 힘들다. 마라톤 외에도 엔도르핀을 분비시킬 만한 격한 운동들은 여러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와 연관하여 필자가 주목하는 대목은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구성이다. 마니아의 수준에서 마라톤을 계속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화이트칼라 직업에 종사하는 지식중산층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직업활동은 항시적으로 남아 있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발생시킨다. 한편 마라톤은 훈련일지의 작성관행에서 보듯이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적이고 분석적인 생활태도를 요하는 스포츠인데, 이는 바로 지식중산층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생활태도이다. 그런 점에서 마라톤은 지식중산층의 구성원들에게 매우 ‘선택적 친화성’이 높은 스포츠라고 하겠다.
스포츠인류학적으로 흥미로운 또 하나의 대목은, 한국인들이 마라톤을 행하는 방식이 서구 사회에서와는 달리 매우 집단적이라는 사실이다. 국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여 받게 되는 인상으로는, 참가자의 대다수가 지역 혹은 직장 단위로 조직된 마라톤 동호회들의 구성원인 것처럼 보인다. 동호회들이 설치한 천막이나 현수막들이 출발점 혹은 도착 지점 일대에 빼곡이 들어차 있고, 심지어 완주자들이 다른 동호회원들 및 가족원들과 더불어 천막 아래서 술과 음식을 먹는 모습은 서구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이런 점에 착안하여 필자는 수개월 전부터 마라톤 동호회에 대한 참여관찰 연구를 진행해 오고 있다. 그로부터의 잠정적 결론은, 마라톤 동호회 활동을 통해 사람들은 한편으로 자신의 목표기록을 좀더 효율적으로 달성함과 동시에 다른 회원들과의 매우 재미난 교류의 기회도 얻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마라톤이라는 다분히 개인주의적 성향의 스포츠와 지극히 집단주의적인 한국의 문화적 풍토가 독특한 방식으로 접맥되고 있는 셈이다.
공간의 측면에서도 한국 달림이들의 행동방식에는 서구의 선진국과 다른 특성들이 있다. 한 예로, 서구의 경우에는 도시의 도로상에서 마라톤 훈련을 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 데 반해 한국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그 이유는 간단히 말해서 도로에서 마라톤 훈련을 하는 일이 너무나 불편하고도 위험할 정도로 제반 여건이 나쁘기 때문이다. 마라톤 인구가 많아졌을 뿐 아니라 웰빙 운동으로서 마라톤의 인기는 상당한 지속성이 있을 것임을 감안컨대, 정책당국이 마라톤 동호인들이 안전하게, 나아가 쾌적하게 달릴 수 있도록 공간들을 확충하고 기존 공간 내의 시설들도 개선해주기를 당부한다.
〈황익주|서울대 교수 · 인류학과〉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