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
자장면이 짜장면이 아닌 자장면인 까닭은 아시죠? 우리말에서 외래어는 된소리를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뻐스가 아니라 버스이고, 프랑스 빠리가 아니라 파리입니다. 자장면도 외래어로 보고 짜장면이 아니라 자장면이라고 씁니다. 별로 맘에 들지 않지만 맞춤법 규정이 그렇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짜장'입니다. 짜장면의 짜장이 아닙니다. 짜장은 우리말 부사로 "과연 정말로"라는 뜻입니다. 그는 짜장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 짜장 헛된 이야기만도 아닌 셈이었다처럼 씁니다.
짜장, 처음 들어보셨죠? 지금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난 널 짜장 좋아한다."고 말해보세요. 그 사람 눈이 휘둥그레지면
이렇게 설명해 주세요. "'짜장'은 아름다운 순 우리말로 정말, 진짜라는 말이다. 따라서 '난 널 짜장 좋아한다'는 말은 '나는 너를 정말 좋아한다'는 말이다."라고….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이런 대목이 있지요. "충줏집 문을 들어서 술좌석에서 짜장 동이를 만났을 때에는 어찌된 서슬엔지 발끈 화가 나버렸다."
<품>
흔히 '폼 잡는다'는 말을 합니다. 그는 사진기를 폼으로 메고 다닌다, 지금 한창 낮잠 자려고 폼 잡고 있을 텐데..., 그 투수는 공을 던지는 폼이 안정되어 있다처럼 씁니다.
이 폼은 영어 form에서 온 단어로, 국어사전에 올라있긴 하나 국립국어원에서 '자세'로 다듬었습니다.
그러나 "몸을 움직이거나 가누는 모양."을 뜻하는 '자세'도 姿勢로 한자어입니다. 일본어투 낱말이나 영어를 다듬으면서 이왕이면 우리말로 다듬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영어에서 온 '폼'과 거의 같은 뜻의 낱말이 '품'입니다. "행동이나 말씨에서 드러나는 태도나 됨됨이"를 뜻하는 순 우리말이죠.
말하는 폼이 어른 같다, 생긴 폼이 자기 아버지를 닮았다, 옷 입는 폼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그 아이는 조숙해서 동생을 돌보는 폼이 어른 같다처럼 씁니다. 여기서 '폼' 대신 '품'을 써도 뜻은 같습니다.
말하는 품이 어른 같다, 생긴 품이 자기 아버지를 닮았다, 옷 입는 품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그 아이는 조숙해서 동생을 돌보는 품이 어른 같다...
다른 게 없죠?
이렇게 낱말 꼴도 비슷하고 뜻도 비슷한데 왜 사람들은 '폼'만 쓰고 '품'을 쓰지 않을까요?
폼 잡다, 폼 재다는 말은 써도,
품 잡다, 품 재다는 말은 안 쓰잖아요.
아마 누군가 그렇게 쓰면 우리말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할 겁니다.
좋은 우리말이 있는데도 굳이 어려운 외래어를 쓰는 못된 버릇은 버려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우리나라 보석을 버리고 미국 어느 산골짜기에서 주워온 허드렛돌을 품고 다니면서 자랑할 겁니다.
외국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이거 미제라면서….
보태기) '품'과 같은 뜻의 낱말이 '품새'입니다. 설마 '폼 잡다'보다 '후카시 잡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없겠죠? ふかし[후카시]가 일본어 찌꺼기라는 것은 다 아시죠?
<사바사바>
"뒷거래를 통하여 떳떳하지 못하게 은밀히 일을 조작하는 짓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 '사바사바'입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올라있는 낱말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사바사바뿐만 아니라 '사바사바하다'는 것까지 올라있습니다.
사바사바의 어원을 좀 볼까요? 이 낱말은 일본어에서 왔습니다. '捌く'에서 '-하다'라는 뜻의 어미 く를 없애고 어간인 さば만 남긴 겁니다. さば는 고등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さばさば[사바사바]라고 하면 고등어를 다 팔아치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게 발전해서 무엇인가를 적당히 처리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발전한 거죠. 마음이 후련하거나 동작이나 성격이 소탈하고 시원시원한 뜻도 있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鯖を読む[사바오요무]에서 왔다고도 합니다. 고등어를 세다는 뜻인데, 어물전에서 고등어를 팔면서 대충 세면서 담아 눈속임함을 뜻합니다.
게다가, 산스크리트어의 sabha(사바)에서 온 불교 용어라고 주장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뜻은 속세라고 합니다. 뭐가 진짜 어원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거야 언어학자들이 할 일이죠. 어쨌든 사바사바는 "떳떳하지 못한 방법으로 일을 조작하는 짓"임은 분명합니다.
이런 사바사라를 우리가 쓸 까닭이 없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사바사바를 '짬짜미'로 다듬었습니다. 짬짜미는 "남모르게 자기들끼리만 짜고 하는 약속이나 수작."을 뜻합니다.
<사의를 표명하다>
뉴스를 듣다보면 장관 등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사의를 표명'했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꼭 '辭意를 表明'했다고 해야 하는지…. 사표 냈다고 하면 못 알아볼까요? 설마 죽고 싶다는 死意로 받아들일 사람을 없을텐데….
예전에는 높으신 분이 사표를 내면 더 높은 곳에서 반려를 했었는데요. 반려(返戾, へんれい[뱅래이])는 일본어투 낱말입니다. 아직 국립국어원에서 다듬지는 않았지만 "돌려주다"로 다듬어서 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의를 표명했다고 할 때의 표명도 表明(ひょう-めい[뾰우메이])라는 일본어에서 왔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 '밝힘'으로 다듬었습니다.
<알 턱이 없다>
흔히, "마땅히 그리하여야 할 까닭이나 이치."를 말할 때 '택'이라는 낱말을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택도 없는 짓'처럼 씁니다. 그러나 이것은 '택'이라고 하면 안 되고 '턱'이라고 해야 합니다. 영문을 알 턱이 없다, 그가 나를 속일 턱이 없다, 턱도 없는 짓처럼 써야 합니다.
'턱'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턱 : 사람의 입 아래에 있는 뾰족하게 나온 부분.
턱 : 평평한 곳의 어느 한 부분이 갑자기 조금 높이 된 자리
턱 : 좋은 일이 있을 때에 남에게 베푸는 음식 대접. 승진 턱/턱을 쓰다/턱을 내다/그는 합격 턱으로 우리에게 술을 샀다.
턱 : 마땅히 그리하여야 할 까닭이나 이치. 영문을 알 턱이 없다./그가 나를 속일 턱이 없다.
턱 : 긴장 따위가 갑자기 풀리는 모양. 나는 마음이 턱 놓였다./방안에 들어앉으니 온몸이 맥이 턱 풀린다.
무슨 행동을 아주 의젓하거나 태연스럽게 하는 모양. 의자에 턱 걸터앉다/사장이 되어 내 앞에 턱 나타났다.
이렇게 우리 고유어에 '택'은 없습니다. 한자어에서 온 선택, 주택 따위는 있지만 순한글에서 택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누군가 턱도 없는 짓을 하면 어떻게 받아줘야죠?
<첫/처음>
김연아 선수가 시니어피겨 사상 첫 금메달을 땄다고 하죠. 한국 선수가 그랑프리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피겨가 한국에 도입된 지 100년 만에 처음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처음'과 '첫'을 좀 갈라볼게요.
'첫'은 "맨 처음의" 라는 뜻의 관형사로 뒤에 오는 명사와 띄어 써야 합니다. 첫 경험/첫 시험/첫 월급/첫 사건처럼 띄어 쓰죠. 첫 삽을 뜨다처럼 쓰시면 됩니다.
가끔은 첫이 접두사로 쓰이기도 하는데요. 이런 경우는 한 단어로 봐서 붙여씁니다. 첫걸음, 첫나들이, 첫날, 첫날밤, 첫눈, 첫돌, 첫딸, 첫마디, 첫머리, 첫사랑, 첫새벽, 첫서리, 첫술, 첫인사, 첫인상, 첫차 따위입니다. 당연히 사전에 한 단어로 올라 있습니다.
'처음'은 명사로 "시간적으로나 순서상으로 맨 앞."을 뜻합니다. 곧, 어떤 일이나 행동을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것임을 나타냅니다. 처음과 나중/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다/처음이라서 일이 서툴다, 이런 일은 생전 처음이다처럼 씁니다. 명사니까 앞 말과 띄어 씁니다.
다시 앞으로 가 보면, 김연아 선수가 시니어피겨에서 맨 처음으로 금메달을 땄으므로 '첫 금메달'이 맞고, 피겨가 한국에 도입된 지 100년 동안 그런 일이 없었으므로, 그런 상을 받는 것은 '처음'이 맞습니다.
<메우다>
축구 중계를 듣다 보면, "수비수가 빠져나간 저 자리를 다른 선수가 빨리 메꿔야 합니다."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뭘 어떻게 메꾸죠? 대한민국 국어사전에 '메꾸다'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뚫려 있거나 비어 있던 곳이 묻히거나 막히다"는 뜻의 단어는 '메다'이고, 이 단어의 사동사는 '메우다'입니다. 구덩이를 메우다, 공란을 메우다처럼 씁니다.
"수비수가 빠져나간 저 자리를 다른 선수가 빨리 메꿔야 합니다."는,
"수비수가 빠져나간 저 자리를 다른 선수가 빨리 메워야 합니다."로 써야 바릅니다.
우리말을 엉망으로 지껄이는 해설자 때문에 텅 비어 버린 제 가슴 한구석을 무엇으로 메워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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