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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질이다/냄비/벼리

마감된 자료-------/성제훈의우리말

by 자청비 2007. 1. 1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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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질이다>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한 녀석이 다른 녀석의 배를 간질이면, 그 녀석은 까르르거리며 뒤집어지고, 다음번에는 간질이는 사람을 바꿔 다른 녀석이 뒤집어지고…. 제가 보기에는 별로 재미가 없는데 자기들끼리는 뭐가 그리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간질거리다를 좀 알아볼게요.
'간질거리다'는 움직씨(동사)로 "간지러운 느낌이 자꾸 들다. 또는 그런 느낌이 자꾸 들게 하다."는 뜻입니다. 기침이 나오려고 목구멍이 간질거리는 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말했다처름 씁니다.
이의 그림씨(형용사)는 '간지럽다'입니다. "무엇이 살에 닿아 가볍게 스칠 때처럼 견디기 어렵게 자리자리한 느낌이 있다."는 뜻으로 등이 간지러워 긁고 싶었다, 부드러운 바람에 살갗이 간지러웠다처럼 씁니다.

여기까지는 별거 아닙니다. 쉽습니다. 앞에 나온 '간질거리다'는 동사의 사동사가 뭘까요? 어떻게 하면 "간질거리게 하다"는 뜻의 낱말을 만들 수 있을까요? 간지럽히다? 간질이다? 주로 간지럽히다고 많이 쓰시죠?

앞에서 나온 대로 '간지럽다'는 형용사입니다. 형용사에 이, 히, 리, 기 같은 접미사를 붙여 사동사를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높이다, 좁히다, 넓히다, 밝히다' 등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간지럽히다'가 아니라 '간질이다'가 맞습니다.

그 까닭은 '간질거리다'의 사동사로 '간질이다'가 있어서 '간지럽히다'를 표준어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간지럽히다'는 틀리고 '간질이다'가 맞습니다. 따라서, "살갗을 문지르거나 건드려 간지럽게 하다."는 '간질이다'입니다. 옆구리를 간질이다처럼 쓰죠. 어렸을 때 많이 불렀던, 우리 누나 손등을 간질여주어라~~~라는 노래 기억나시죠?

저희 집 애들은 서로 간지럽히면서 노는 게 아니라, 서로 간질이면서 노는 것입니다.
우리말123


<닭을[달글]>
점심때 삼계탕을 먹었습니다. 조류돋감으로 고생하는 농업인을 돕자는 뜻으로 식당에서 준비했더군요. 축산농가가 빨리 안정을 찾아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제가 어제 점심때 [닥을]먹었을까요, [달글]먹었을까요? 발음을 어떻게 해야 하죠?
맞춤법 규정에
겹받침 뒤에 모음이 오면 뒤에 나오는 자음이 뒤로 간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겹받침 'ㄺ'의 발음은 체언의 경우 '닭이[달기], 닭을[달글]'따위와 같이 모음 앞에서 본음대로 'ㄺ'을 모두 발음하지만 '닭도[닥또], 닭과[닥꽈]'따위와 같은 자음 앞에서는 'ㄹ'을 탈락시키면서 'ㄱ'만을 발음합니다. 다만, 용언의 경우에는 환경에 따라 'ㄺ' 중에서 발음되는 자음을 달리합니다. 이에 따라 '닭' 다음에 '을'이 오니까 [달글]이 됩니다.
제가 어제 점심때 [달글]먹고 지금 편지를 쓰는 걸 보니 닭을 드셔도 안전합니다.
오늘은 [닥또] 먹고 저녁에는 [닥꽈]함께 오리도 먹어야겠습니다. ^^*
우리말123

 


<냄비>
세밑이 되면 길거리에서 구세군 냄비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가난한 이웃을 도웁시다."라는 말씀이 지금도 귀에 선하네요. 많은 사람이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길 빌며 오늘은 '냄비'를 알아볼게요.

'냄비'는 일본어 鍋(なべ[나베])에서 왔습니다. 나베를 남비로 받아들여 죽 써오다가 1988년 맞춤법 규정을 바꾸면서 남비를 버리고 냄비를 표준어로 선택했습니다.
좀 깊게 들어가 볼까요?
표준어규정 제9항에 따르면, 'ㅣ'역행 동화 현상은 표준발음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지랭이'가 아니라 '아지랑이'가 맞습니다.
그러나 다음 낱말은 역행 동화가 적용된 형태를 표준어로 삼습니다. 이에 따라 '신출나기'가 아니라 '신출내기'가 맞고, '남비'가 아니라 '냄비'가 맞으며, '풋나기'가 아니라 '풋내기'가 맞습니다.
자선냄비에 따뜻한 정이 많이 깃들고 더불어 사회도 같이 따뜻해지길 빕니다.
우리말123

보태기)
어쨌건 냄비는 일본어에서 왔습니다. 나베-> 남비->냄비 우리말에 노구솥이라는 게 있습니다.
"놋쇠나 구리쇠로 만든 작은 솥"이 바로 노구솥입니다. 80년쯤 전에 우리나라에 구세군 냄비가 처음 들어올 때 남비를 쓰지 않고 노구솥을 썼더라면... 구세군 노구솥... 좀 이상한가요?

 

 

<찌뿌드드/찌뿌듯>
몸이 무겁고 거북하거나, 표정이나 기분이 밝지 못하고 언짢거나, 날씨가 흐릴 때 찌뿌둥하다고 하는데요. 이것은 틀린 겁니다. '찌뿌둥'이 아니라 '찌뿌듯'이나 '찌뿌드드'입니다. 찌뿌듯한 것은 조금 거북한 것이고, 찌뿌드드한 것은 찌뿌듯보다 조금 더 거북한 것입니다. 찌뿌드드의 준말이 뿌드드입니다. 제 몸이 어제는 찌뿌듯했고, 어젯밤의 치열한 전투로 오늘은 찌뿌드드하네요. ^^*
우리말123

 


<벼리>
주말에 고향에서 잘 쉬고 왔더니 일이 밀려 있네요. 이렇게 일이 많이 쌓여 있을 때는 벼리를 잘 잡아야 합니다. 큰 줄거리를 보고 중요한 것부터 처리해 나가면 내일이 오기 전에 집에 갈 수 있겠죠. ^^*
벼리는 본디 그물의 위쪽 코를 꿰놓은 줄입니다. 그 줄을 잡아당겨 그물을 오므렸다 폈다 하죠.
그 뜻이 발전해 지금은, "일이나 글의 뼈대가 되는 줄거리."를 뜻합니다. 학교에서 숙제를 낼 때,
무슨 책을 읽고 그 벼리를 추려오라고 말할 수 있고, 저처럼 일할 때 벼리를 잘 잡아서 일을 한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벼리를 잘 잡아 일을 일찍 끝내고 집에 들어가서 딸내미와 놀아야 하는데….
우리말123

 

<어묵>

어머니가 오셨을 때
이왕이면 밑반찬이 좋게 나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필 어제는 어묵국(1)에 돈가스(2) 한 조각과 샐러드(3)가 다였습니다.
괜히 제가 죄송스럽더군요.
그래도 어머니는
"찬은 별로지만 쌀이 좋은지 밥맛이 좋다."고 하시면서 웃으셨습니다.
이왕이면 찬까지 좋았으면 어머니가 걱정하지 않으셨을텐데….
만날(4) 그렇게 점심을 때우는 줄 알고 걱정하셨나 봅니다.

1. 어묵국
생선의 살을 뼈째 으깨어 만든 어묵으로 국을 끓은 것을 두고 오뎅국이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오뎅은 일본말 お-でん[오뎅]에서 온 말입니다.
일본어 사전에서 お-でん을 찾아보니 "곤약을 꼬치에 꽂아 된장을 바른 식품."이라고 나와 있네요.
사실 일본에서 말하는 '오뎅'과 '어묵'이 같은 것은 아닙니다.
어묵은 생선살을 으깨 묵 형태로 만든 것이고,
오뎅은 어묵과 무·'곤약' 따위 재료를 꼬챙이에 꿰어 장국에 익힌 음식입니다.
어묵으로 오뎅을 만드는 거죠.
오뎅국을 어묵국이라고 하는 게 좋지만, 어묵국도 아직 국어사전에 오르지 못한 낱말입니다.
1-1.
'곤약'도 일본말 찌꺼기 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곤약을 다듬은 말로 '우무'가 나와 있네요.
2. 돈가스
돈가스는 영어의 '포크커틀릿(park cutlet)'에서 온 말입니다.
이를 일본에서 돼지고기를 뜻하는 '포크' 대신에 돼지 돈(豚) 자를 쓰고
그 뒤에 커틀릿의 일본어 발음인 'カツレツ[까스레스]'를 덧붙여 '돈까스'라는 해괴망칙한 낱말을 만든 겁니다.
그게 우리나라에 건너와 '돈까스'가 된 거죠.
그러나 이마저도 '돈까스'가 아니라 '돈가스'입니다.
우리말에서 외래어에는 된소리를 써서 적지 않거든요.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돈가스를 올려놓고 '돼지고기 튀김', '돼지고기 너비 튀김', '돼지고기 너비 튀김 밥'으로 다듬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좀 억지가 있어 보이죠?
2-1.
"말할 수 없이 괴상하고 야릇함"이라는 뜻의 낱말은 해괴망칙이 아니라 해괴망측(駭怪罔測)입니다.
3. 샐러드
샐러드는 영어 salad입니다. 이를 일본에서 サラダ 라고 쓰고 [사라다]라고 읽습니다. 마땅한 우리말이 없는 서양음식이므로 이는 그냥 샐러드라고 읽고 쓰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설마 이걸 '야채 사라다'라고 하지는 않으시겠죠? ^^*
4. 만날
"매일같이 계속하여서"를 뜻하는 부사는 '맨날'이 아니라 '만날'입니다.

우리말123

 

<살찌다/살지다>
어제는 온 식구가 장보러 나갔습니다. 어머니와 아내는 시장을 보고, 저는 애 둘을 태우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주전부리를 했습니다. 그 재미가 솔찬하거든요. ^^*
밥 때 말고 아무 때나 이것저것 먹으면 살찌겠지만  그래도 시장에 가면 주전부리하는 그 재미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제 먹은 게 살로 가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은 '살찌다'와 '살지다'를 알아볼게요.
너무 쉽다고요? '살찌다'가 맞고 '살지다'는 틀리다고요? 아닙니다.
'살찌다'는 움직씨(동사)로 "몸에 살이 필요 이상으로 많아지다."는 뜻입니다. 살찐 뚱뚱한 사람/살쪄서 바지가 작다처럼 쓰죠.
'살지다'는 그림씨(형용사)로 "살이 많고 튼실하다."는 뜻입니다. 살진 암소/살지고 싱싱한 물고기처럼 씁니다. 살찐 암소/살찌고 싱싱한 물고기가 아닙니다.
두 개를 같이 써 보면, 제 딸내미가 시장에서 이것저것 많이 먹으면 살찌게 되고, (아들은 살찌는 체질이 아니라서 괜찮고...^^*) 그 모습을 보면 살진 게 영 보기 싫은 거죠.
두 가지를 가르실 수 있죠?
우리말123
보태기)
'솔찬하다' 는 "꽤 많다"는 뜻의 전남지방 사투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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