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수의 미디어 동서횡단]
3불정책을 둘러싼 참말과 거짓말
'혹세무민' 하는 대학과 언론
생물학과 학생지도교수(Tutor)가 한 수험생에게 난데없이 동물의 두개골을 내놓으며 묻는다.
"이게 초식동물 머리뼈라고 생각해? 아니면 육식동물 것이라고 생각해?"
"초식동물인 듯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어금니가 발달해 있고…"
학생이 머뭇거리자 교수가 힌트를 준다. "두 눈이 앞쪽에 모여 있지 않고 머리 양쪽에 붙어 있네. 왜 그렇게 진화했을까?
"아하! 사방의 육식동물들을 경계하는 데 편리하겠군요."
"그러면 육식동물은 왜 두 눈이 얼굴 앞쪽에 모여 있을까?"
"잘 모르겠는데요."
"한쪽 눈을 가리고 밖을 한번 내다봐. 어때 잘 보여?"
"보이긴 하는데 거리 측정이 잘 안 되네요. 어! 그러고 보니, 두 눈이 앞쪽에 있어야 잡아먹을 동물과 떨어진 거리를 정확하게 측정해 포획 성공률을 높일 수 있고, 그래서 그 쪽으로 진화한 것이로군요."
위에 소개한 대화는 3년 전 영국 케임브리지대 입학 면접시험에서 한 생물학도 지망자가 겪은 실제상황이다. 여기서 중요한 평가항목은, 얼핏 눈치 챌 수 있는 바와 같이, ① 평소 책을 많이 읽어 상식이 풍부한지 ② 전공하고자 하는 분야의 기초지식이 있는지 ③관찰력과 추리력 등 학문 할 자질이 있는지 등이다. 문제에 대한 딱 부러진 정답이 없을 뿐 아니라, 모르는 사실일지라도 문제해결 과정을 더 중시한다.
이런 사례들과 견주어 요즘 우리나라에서 입시 3불(三不)정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전을 보면 얼핏 생각나는 말들이 있다. '아전인수' '침소봉대' '혹세무민'…. 일부 대학의 교수와 언론의 논객이라는 사람들이 선진국 입시제도를 일부분만 부각시키거나 왜곡해 자신의 억지논리를 뒷받침한다. 그릇된 논거는 선거바람을 타고 정치권으로 확산돼 가히 '혹세무민'의 경지에 이르렀다. 과연 선진국에서도 3불정책이 문제시되고 있는가?
개인적인 얘기를 늘어놓게 돼 민망하지만, 필자는 학부에서 교육학을 배우고 조선일보 기자시절 교육을 담당한 데에다, 지난해 가을까지 6년간 영국에서 뒤늦은 유학생활을 하면서 유럽의 현행 교육제도를 두루 경험할 기회를 가졌다. 터울 많이 지는 세 명의 자녀를 초-중·고-대학에 다니게 하는 한편으로, 독일 등지에서 케임브리지로 유학 온 외국학생들 하숙을 치는 등 그야말로 '죽을 고생'을 하면서 터득한 체험담이다. 큰 아이는 영국 대학뿐 아니라 SAT를 보고 미국 대학들에도 동시에 원서를 냈다.
필자가 체득한 유럽과 미국의 교육체제는 우리와 좀 차이가 있지만, 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에 관한 한 대체로 3불정책을 고수한다. 몇몇 신문 보도처럼 선진국의 학생선발권이 대학에 있는 듯해도, 실제로는 국가기관이 관리하는 시험제도 안에서 약간의 자율권을 행사할 뿐이다. 수능과 비슷한 공동시험을 치르고(영국의 A-level, 프랑스의 Baccalaureat, 독일의 Abitur, 미국의 SAT), 내신성적과 봉사활동 실적 등을 고려해 학생을 선발한다. 고교 졸업시험이기에 고교 교사들이 철저히 교과범위 안에서 출제하고 채점한다. OECD 국가 중에 대학에서 본고사를 치르는 곳은 일본뿐이다.
유럽 각국에서도 교육제도는 선거의 핵심이슈가 되는 때가 많다. 그러나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언론이든 정당이든 교육제도의 뼈대는 건드리지 않는다. 교육은 일종의 공공재이며, 시장에 전적으로 맡겨서는 안 된다는 사실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입시제도와 관련해서도 영국 언론의 경우 고교 졸업시험인 A-level의 과목수를 좀 더 늘려야 한다는 정도의 논란을 벌일 뿐이다. 교육개혁을 한답시고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논리를 일부 도입했던 대처와 메이저는 그것이 한 요인이 돼 정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1996년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마흔세 살의 토니 블레어는 "97년 총선에서 승리해 집권할 경우 추진할 역점사업 세 가지를 밝히겠다"며 당원은 물론 라디오를 듣거나 TV를 보고 있던 국민들의 이목을 끌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블레어가 외친 말은 "교육, 교육, 그리고 교육"(Education, Education and Education). 보수당 정권의 교육실정, 즉 교육기회의 불평등 심화를 집중 공략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세칭 명문대학 교수들과 메이저 보수신문들은 그나마 교육기회의 불평등을 제어하는 최소한의 장치인 3불정책을 폐지하라고 촉구한다. 한미FTA 체결 뒤에는 더욱 기세 좋게 "FTA 하면서 왜 우리 교육은 거꾸로 가나"(중앙 4월6일 사설)라며 3불정책 폐지를 밀어붙이고 있다.
본고사 있는 나라는 일본뿐
보수신문들은 본고사의 폐해가 극에 이르렀던 시기에 자신들이 본고사 폐지를 주장했던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특목고 열풍이 초등학생까지 토플학원으로 내모는 교육광풍으로 바뀌는 나라에서 본고사가 부활돼 공교육이 하루아침에 초토화 할 경우, 또 어떻게 말을 바꿀지 궁금하다. 과거의 예로 보아 본고사가 부활되면 고교 교육과정을 모르는 대학 교수들이 대학과정에서 출제하고, 1점 차이를 변별력이 있다고 여길 게 뻔하다.
"외국처럼 대학에 학생선발권을 줘야 우수한 학생들을 뽑고 세계 유수대학과 경쟁할 수 있다"는 본고사 부활론자들의 논리는 일견 그럴 듯하지만 궤변에 가깝다. 외국 유수대학들의 학생선발권은 본고사를 통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케임브리지와 옥스포드, 하버드 등 세계 유수대학들은 모두 본고사를 치르지 않고 국가가 관리하는 고교졸업시험과 내신, 그리고 면접결과를 토대로 입학사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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