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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내린 직장'이란 거짓말

세상보기---------/현대사회 흐름

by 자청비 2007. 5. 1.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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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내린 직장’이란 거짓말


“영광이라니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앨리스가 말했다. 험프티 덤프티는 비웃었다. “물론 모르겠지, 내가 설명을 안 해줬으니까. 내 말은 ‘너에게 논쟁에서 완전히 이겼다’는 뜻이야.” “하지만 ‘영광’이 ‘논쟁에서 완전히 이기다’란 뜻은 아니잖아요.” 앨리스가 반박했다. 험프티 덤프티가 아주 경멸하는 어조로 말했다. “내가 어떤 단어를 선택한 경우, 그 단어는 내가 말하려는 의미를 정확하게 담고 있다. 그 이상의 의미도 그 이하의 의미도 아니다.”(루이스 캐럴, ‘거울 나라의 앨리스’)

 

여기서 앨리스는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그 주인공이고, 험프티 덤프티는 높은 담 위에 위태롭게 얹혀 있는 달걀이다. 떨어져 깨지면 그만일 허망한 존재인 험프티 덤프티는 황당한 얘기를 내뱉고 스스로 제 말에 취하는 자기기만의 전형에 해당한다. 멀쩡한 앨리스를 타박하는 허망한 험프티 덤프티는 동화 속의 일만이 아니다. 요즘 ‘이른바’라는 부사를 덧붙여 얘기되는 ‘신(神)이 내린 직장’이란 말은 험프티 덤프티의 21세기 한국판 버전이라 할 만하다.

 

-고용불안 탓 공공기관 인기-

 

‘신이 내린 직장’을 입에 올리는 경우는 대체로 보통사람이거나 나라를 걱정하는 힘있는 사람의 두 부류다. ‘월급은 많이 받고 일은 적게 하며, 정년의 철밥통을 끌어안고 있다’는 공기업과 국책은행, 교사와 공무원은 보통사람들에게 부럽기도 하고 배 아프기도 한 대상이다. 이들의 신세한탄이 신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진다. 팍팍하고 언제 내쫓길지 모르는 자신들의 일자리는 ‘신이 저주한 직장’이란 반어법인 셈이다.

 

이와 달리 힘있고 배웠다는 사람들은 ‘대국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민간기업으로 가야 할 우수한 인재들이 공공부문으로 쏠리면 우리 경제의 생산부문이 인재 공동화(空洞化)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모험과 경쟁을 피하고 안정과 평등에 안주하는 경향은 국가 경쟁력에 적신호라고 걱정한다. 다분히 경멸적인 의도인 셈이다.

 

개인적인 신세한탄이든, 나라를 걱정해서든 ‘신이 내린 직장’이란 말은 거짓말이다. ‘속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실과 다르게 하는 진술’을 거짓말이라고 할 때 ‘신이 내린 직장’이란 말엔 거짓말의 교묘한 수법이 숨어있다. 나태하고 부패한 공무원의 몇몇 사례가 나랏돈만 축내는 공공부문으로 일반화된다. 공공부문의 비효율을 들어 공공부문 자체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다. 절반의 진실로 속내를 숨긴 채 절반의 거짓말을 꾸미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작아야 하고, 공기업과 국책은행은 민영화해야 한다는 신념이 깔려 있다.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곳에 인재가 몰리는 것은 안될 일이라는 개탄을 숨기고 있다. 여기에 신이 저주한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신세한탄이 뒤섞이면서 ‘신이 내린 직장’은 개인적으로나 나라를 위해서나 파괴되어야 할 우상이란 이미지로 표상된다.

 

공공부문에 젊은 구직자들이 몰리는 이유를 물으면 험프티 덤프티 같은 답이 나온다는 점에서도 거짓이다. 시장경제의 전도사들은 요즘 젊은이들이 모험심이 없다고 타박하고, 정부가 공공부문 개혁에 소홀한 탓이라고도 하며, 심지어 평준화 교육 때문이라고도 한다. 변죽울리기이자 비논리적이다. 젊은이들은 시장 전도사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합리적 선택이론에 따라 좋은 직장을 고른다.

 

고용은 불안하고 민간기업의 취업문은 갈수록 좁아지니 공공부문을 찾는 것이다. 경쟁만이 살 길이라며 고용안정성을 내팽개치게 만든 사람들이 이제와서 취업 풍토를 탓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민간기업 기피도 사실과 다르다. 최근 조사에서 대학생 취업 선망기업 10위안에 공기업은 1개에 불과했다. 민간기업이 우수 인재에게 욕심이 있다면 사람을 중시하는 일터부터 재건하는 게 우선이다.

 

-기업 ‘사람’중시해야 인재몰려-

 

영국의 미술비평가 존 버거는 광고의 기능을 분석하며 “자본주의가 예전에는 대중의 관심을 가능한 한 좁히려 했지만, 요즘은 무엇이 바람직하고 무엇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하는 ‘엉터리 규범’을 강요함으로써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엉터리 규범을 강요하는 것은 비단 광고만이 아니다. ‘신이 내린 직장’이란 험프티 덤프티식 거짓말이 그렇다. 엉터리 규범과 거짓말이 있을지언정 신이 하사하거나 저주한 일자리가 있겠는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들에게 노동절이 다시 찾아왔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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