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백전노장에게 듣는 마라톤철학

건강생활---------/맘대로달리기

by 자청비 2007. 7. 23. 17:19

본문

===============================================================
석병환·이광택·이경두·전용구…백전노장에게 듣는 마라톤 철학

나이 어린 선각자는 없다. 깨달음이란 찰나의 것이라기보다 삶의 밀도가 빚어내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마라톤계의 ‘어르신’ 석병환(74)옹과 예순을 넘긴 노장 이광택(63)·이경두(61)·전용구(61)씨에게 달리기 철학에 대해 들어봤다. 길은 많아도 궁극은 하나인 까닭에, 노장들은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고 입을 모았다.

“저승에서 살아 돌아온 기분”
석병환 옹이 1999년 서울마라톤대회에 참가 신청을 할 당시, 그의 나이는 64세였다. 주최측인 서울마라톤클럽의 박영석 당시 회장은 출전 경험 한 번 없는 고령의 노인이 무턱대고 대회 참가를 신청하자 몇 번이고 접수를 거절했다. 사정하다시피 참가를 희망하는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게 되자 박 회장이 받아두었던 다짐은 “뛰다가 힘들면 무조건 포기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마” 하고 약속한 뒤 출전한 대회에서 그는 3시간44분27초라는 호기록을 세우며 완주했다.

석병환님

석병환 옹은 당시를 떠올리며 “저승에서 살아 돌아온 기분”이라고 말한다. 반환점을 돌았을 때부터는 “이승에서 뛰는 것 같은 기분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60대 1등상을 수상하기 위해 시상대까지 올라가야 했지만, 한 발짝 내디딜 기운도 없어 주위의 부축을 받아야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게 바로 마라톤’이라고 생각하며 감동을 느꼈다.

이후 대회가 있을 때마다 참가했으며, 페이스에 상관하지 않고 뛰고 싶은 대로 뛰었다.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계획적으로 달렸더라면 서브3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대회 때마다 느꼈던 가슴 뿌듯한 성취감과 감격은 아직도 가슴에 살아있다.

“감기에 걸리거나 몸이 안 좋을 때는 물만 먹고 대회에 참가하는 경우도 있어요. 출발선에 서서 도저히 완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다가도 모든 고통을 극복하고 완주에 성공했을 때, 나는 인간은 진실로 위대한 존재라고 느낍니다.”

그는 마라톤을 정직한 운동이라고 말한다. 42.195km를 달리는 데에는 요령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활 전반에 절제와 인내가 필요하고, 일련의 규칙을 몸에 익혀야 즐겁게 달릴 수 있다. 그는 나라의 장래를 책임진 젊은이들이 마라톤을 통해 정직한 자세와 자신감을 얻기를 희망한다. 또한 그와 같은 세대의 노인들이 달리기를 통해 건강을 지키기를 바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건강한 마라톤과 건강한 달리기여야 한다. 고 고영우 박사의 갑작스런 별세를 경험하고 큰 충격과 슬픔을 겪은 그는, 마라톤을 사랑하는 달림이들이 더욱 건강하게 뛰어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또한 “부상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것도 마라토너의 자질”이라면서 즐겁게 달리기 위해서는 절제가 중요한 덕목임을 강조했다.

“분위기에 휩쓸리는 달리기는 지양해야”

이광택 100회마라톤클럽 고문은 1978년부터 조깅을 시작해 무려 30년 동안이나 달리기 인생을 살아왔다. 그런 그가 이야기하는 마스터스 마라토너의 최고 덕목은 “기본에 충실하며 무리하지 않는 겸허함”이다. 예순의 나이에 2시간54분39초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수립한 그가 “무리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모순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마스터스 마라톤계의 큰 별이었던 고 고영우 박사를 잃은 이후, 애통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되새기는 내용이다.

이광택님

생애 처음으로 참가했던 대회는 2000년 통일 마라톤대회였다. 오랜 달리기 경력이 있었으니 큰 염려 없이 조깅화에 테니스복을 입고 주로에 나섰는데, 언덕은 처음인데다가 테니스복에 허벅지가 쓸리고 발에는 물집이 잡혀 결승점에 도착하는 일이 그렇게 괴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의 고비를 넘기자 고통보다는 성취감이 더해갔고 대회 출전을 거듭할수록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흔히 외치는 구호처럼,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1년 10월에는 대회 출전 1년만에 서브3를 달성했고, 2006년 봄에 출전한 6개 대회에서 연속 서브3를 달성하는 등 순풍에 돛을 단 듯 기록 행진이 이어졌다. 그러나 마라톤은 인생을 건강하게 즐기기 위한 것이다. 그는 달리기를 시작하는 달림이들에게 승부욕과 경쟁심에 사로잡혀 스스로의 능력 이상으로 무리하지 않기를 당부했다.

“대회에 참가해보면 분위기에 휩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습에 충실하지 않은 채, 좋은 성적만 거두려 해서는 안돼요. 충분히 연습하고 즐겁게 달려야죠.”

요즘 들어 우후죽순 개최되는 마라톤대회도 우려의 대상이다. 이윤만 추구하는 기획사가 늘고 있는데다가, 많은 인원이 참가하여 달리는 기쁨을 함께 누릴 기회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참가비를 인하하고, 내실 있게 대회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라톤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계층이 좀더 적극적으로 달리기에 동참하는 분위기를 이끌어야합니다.”
그는 지난 5월 20일 1백 회 완주에 성공했다.

“즐겁게 달리는 일, 쉽지만 어려운 일”

정형외과 전문의인 이경두 박사가 처음 마라톤을 시작한 해는 1999년, 밀레니엄 버그에 대한 두려움과 세기말이라는 특수한 배경 때문에 전 세계가 술렁일 때였다. 이 박사는 20세기의 마지막을 기념할 만한 일을 찾다가 마라톤을 생각했고, 마라톤 전문서적을 구입해 ‘100일 훈련 가이드’에 따라 그해 춘천 마라톤을 준비했다. 30km 지점에서 탈진하여 3시간58분의 기록으로 겨우 골인했는데, 이듬해에는 같은 대회에서 3시간27분56초에 결승점을 밟아 보스턴 마라톤대회 출전권을 얻었다. 그리하여 2001년 보스턴 마라톤 우승자인 이봉주 선수와 함께 주로를 달리는 행운을 누렸다.

이경두님

그는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숨겨진 능력을 발견하는 과정’을 마라톤의 매력으로 꼽는다.
“요즘에는 100km 울트라마라톤을 뜁니다. 예전 같으면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죠. 기록을 단축하거나 더 먼 거리를 달리는 일은 매번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해내게 되지요.”

최근에는 마라톤 인구가 증가해 함께 주로를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많아 행복하다. 마라톤대회는 그가 주인공이 되는 축제와 같아서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운동은 재미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달리기의 경우, 시작 단계에서는 지루함을 느끼기 쉽지요. 컴퓨터 기술은 점점 발달하고 있고, 마라톤을 하려는 젊은이들은 많지 않아요. 젊은 사람들을 대회로 끌어모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겠지요.”

그는 즐겁게 달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즐겁게 달리는 일은 어렵다고도 말한다. 달리기를 즐기기 위해서, 경쟁은 적당한 수준이어야 한다. 누군가를 이겨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달리기는 스트레스가 될 뿐이다. 긴장을 풀고 다함께 즐기며 달리자고 마음먹을 때, 마라톤은 스트레스가 아니라 즐거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라톤은 ‘적당히’라는 말과 맞지 않다”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있는 전용구 박사는 언제나 창조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운동뿐이었기 때문에 테니스·골프 등의 운동과 조깅을 하고 있었는데, 2001년 친구와 함께 하프코스 대회에 출전하면서 마라톤에 도전하게 되었다. 달리기는 자투리 시간을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혼자 있는 시간의 집중도를 높이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연구 생활로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 그에겐 안성맞춤인 운동이었다. 그는 2001년 춘천 마라톤에 참가했고, 3시간35분53초의 호기록으로 완주에 성공했다.

전용구님

고 고영우 박사를 만난 것은 2002년 3월 서울마라톤대회에서였다. 여러 매체를 통해 그의 얼굴을 알고 있던 터라 “얼마나 뛰실 겁니까?” 하고 말을 걸었더니 “최고기록을 내려는 욕심을 가지고 있다”고 대답했다. 자신은 3시간30분을 목표로 달리고 있으며, 동반주를 할 수 있겠느냐는 부탁에 고 박사는 흔쾌히 승낙했고 대화를 나누며 주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적극적이고 모범적인 생활 태도에 감동받은 전용구 박사는 ‘나 역시 강인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전 박사는 ‘적당히’라는 표현을 싫어한다. 적당히 한다손 치더라도 뭐든 할 수 있겠지만, 다른 많은 분야와 마찬가지로 연구 활동이란 창조적인 정신과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고 피나는 노력을 전제로 한다. 자기 분야에서 국내뿐 아니라 세계 제일이 되어야 인정받을 수 있다. 마라톤 역시 적당히 해서는 안 되는 운동이다. 42.195km를 완주하기 위해서는 술과 담배를 멀리해야 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하며, 동시에 꾸준히 달려야 한다. 항상 절제하고 인내하는 마음가짐. 마라톤을 대하는 자세는 그 자체로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요, 관건이다.

1백 회 완주 후 100회마라톤클럽에 가입한 그는, 클럽 내에서 기록 경쟁이 심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각기 신체 조건이 다르고 그에 따른 장·단점이 분명한데도 기록을 깨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정신력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해선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개인의 특성에 맞게 적절히 훈련하고 목표를 잡아야 할 것이다.

<포커스마라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