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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숙 "여자프로농구 감독 왜 여자는 안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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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07. 8. 25.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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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숙 "여자프로농구 감독 왜 여자는 안되나요”

한국 여자 농구계를 주름잡은 박찬숙 전 국가대표선수가 검정 정장에 굳은 표정으로 여성 정치인들과 나란히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을 낯설게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두 달 전, 그녀는 우리은행 여자농구단 감독 선임 과정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고용차별을 받았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냈다.
 

농구 감독과 성차별, 박찬숙과 정치인의 ‘불편한’ 조합은 많은 뒷말을 낳았다. 격려와 냉소적 반응들도 잠시, 그녀의 싸움은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인권위 조사는 현재 진행 중이고, 프로농구계에서 박찬숙은 그녀 표현대로 ‘왕따’가 됐다.

 

30여년 농구 인생을 걸 만큼 그 싸움은 농구인 박찬숙에게 의미가 있는 것일까. 농구계와 ‘맞장’을 뜬 뒤 세상은 달라진 게 없고, 오히려 스스로 발목만 잡은 건 아닌지.

 

지난 16일 서울 서초구 서울벤처 정보대학원 사무실에서 그녀를 만나 ‘싸움, 그 이후’를 들어봤다.

“허무맹랑한 오해가 많데요. ‘네가 뭔데 나서서 그러느냐’ ‘네가 무슨 정치인이냐’ 그런 거죠. 선배들도 야단치더라고요. 이런 일 있기 전에는 ‘야, 박찬숙 아니면 누가 (여자감독) 하냐’던 분들도 다 뒷짐 지고 물러나는 게 섭섭하데요. 후회요? 그거 아무나 못하는 거잖아요. 얼마나 용감해요. 나는 속이 다 시원하더라고요.”

정말로 속 편한 표정이었다. “면접에 떨어지니 정치인 끼고 해코지하는 거 아니냐는 말도 나왔을 법한데요”, 속 뒤집는 말을 던졌다. “여성민우회 행사장에서 처음 만난 분(민주노동당 심상정, 열린우리당 유승희 의원)들인데 ‘박 감독, 요즘 뭐하냐’고 묻기에 우리은행 면접봤는데 떨어진 거 같다고 했죠.

 

사실 면접볼 때 피부로 느꼈어요. 나한테는 구색맞추기로 감독 선발 면접보라고 제안해놓고 (박명수 전 감독) 성추행 사건을 넘어가려 했던 거예요. 박찬숙이 이렇게 안 나왔으면 그냥 넘어갔을 거예요. 나야 속상한 마음을 감추려고 했는데 그분들이 이건 아니다, 난리가 났어요.”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시간이 흐르고 보니 괜찮아요. 프로 농구계에 여자 지도자 한 명 나오려면 누군가 해야 할 일이고, 박찬숙이 한 거죠. 나는 (프로감독) 안 될지 모르지만 다 만족할 수는 없잖아요. 그죠? 최근 신한은행에서 감독 공개채용하기에 지원했어요. 지도자 경험이 짧아서 매일 공부해요. 나는 ‘준비된 감독’이라고 자부하거든요. 그래서 계속 도전할 거예요. 농구인이니까, 농구와 관련된 일이라면 뭐든지요.”

 

 

◇박찬숙씨가 지난 18일 서울 동일여고 체육관에서 열린 ‘박찬숙의 농구교실’에서 한 수강생에게 슛 동작을 가르치고 있다.

 

◇박찬숙씨가 우리은행 여자농구단 감독선임과정에서 탈락한 뒤 국가인권위를 찾은 사연과 그 이후 활동에 대해 설명한 뒤 “그래도 오뚝이처럼 다시 도전하겠다”며 활쫙 웃고 있다.

 

# “도전하고 싶어 열불이 나요, 나 이거 비정상 아녜요?”

지난 18일 서울 금천구 동일여고 체육관. 초등학교 1, 2학년 꼬마들 속에 박찬숙씨가 ‘인간 장대’ 처럼 보인다.

“주엽아, 발은 가만히 바닥에 붙여야지. 공은 똑바로 보구”, “홍구, 민경이는 장난하는 거야? 다리 벌리고 아래로 공을 패스해야지”. 6명의 꼬마들이 줄지어 조막만 한 손으로 자기 키보다 한참 먼 골대를 향해 공을 던질 때마다 “그렇지, 아주 잘했어” 박씨의 후렴구가 붙었다.

 

지난 4일부터 문을 연 ‘박찬숙 농구교실’ 수업 풍경이다. 초등학생과 중학교 1학년생을 대상으로 한 방과후 생활체육 활동이다. “너무 재미있어요. 학부모들 얘기가 아이들이 수업이 있는 주말만 기다린대요.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귀엽고 이쁘죠. 이게 나이 먹는 거라니까.”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엄마’다. 1, 2학년생 수업이 끝나니 바로 고학년 수업반 학생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몸풀기를 한 뒤 드리블하는 모습이 수업 시작한 지 한 달이 안 됐는데도 꽤 안정적이다.

 

프로 감독에 도전했던 박씨가 어린 학생들과 씨름하는 건 어딘지 어색해 보였다. “일종의 홀로서기죠. 농구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지기도 하구요.” 박씨와 농구교실, 농구과학연구소를 함께하고 있는 한필수 교수(서울벤처정보대학원 레포츠경영학과)의 말이다. 그는 박씨와 숭의초등학교 농구반에서 같이 뛰었던 친구다. ‘박찬숙 감독 만들기 모임’의 책임자다. 농구과학연구원생들이 참여하는 이 모임은 매주 세 번씩 박씨와 농구 전략을 공부하고, 주말에는 농구교실에서 수업을 함께 진행한다.

 

“방과후 활동이긴 하지만 꿈나무를 키울 수도 있잖아요. 내가 애들 가르쳐보면 운동신경이 뛰어낸 애들이 딱 눈에 띄어요. 우리 때만 해도 서울에 농구부 있는 초등학교가 많았는데 지금은 두 군데뿐이에요. 농구 현장에 있는 느낌도 좋고, 꿈나무도 키울 수 있고, 또 하나 애들이 박찬숙 이름을 기억하게 되잖아요.”

 

 

정작 박씨의 딸(22), 아들(12)은 농구에 관심이 없단다. “운동신경이 없는 거 같더라구요. 내가 집에 있어도 가만 있지 못하는 성미거든요. 지난 광복절에도 모처럼 하루 집에서 쉬는 건데 이불 네 채를 빨아 널고 밥반찬 준비하느라 부산을 떨었네요. 애들이 운동신경은 안 닮았어도 성격은 나 닮은 거 같아요. 아주 씩씩하게 돌아다녀요.”

 

그러면서 “나, 비정상 아녜요? 뭐든지 도전하고 싶어 (속에서) 열불이 나거든요. 이거 이상한 거 아냐?”고 묻길래 대답했다. “그거 일중독이거든요. 술 담배처럼 고치기 힘들어요. 아주 중증이네요.” 기자의 ‘진단’에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오뚝이처럼 도전하는 게 너무 좋거든.”

 

#“눈을 감아도 길이 다 보여요”

돌이켜보면, 지도자 경력을 더 쌓지 못한 게 아쉽기도 하다. 1993년 3년간 ‘친정’이었던 태평양화학 플레잉 코치를 한 뒤 1년간 염광여중 코치를 했고, 2005년에는 제4차 동아시아대회 국가대표 여자농구팀 감독을 맡았다. 은퇴로 공백기간이 있었던 데다 대표단 감독도 단기 계약이어서 꾸준한 경력 관리를 못했다.

 

◇2005년 마카오에서 열린 동아시아대회 남·북한 여자농구 경기에서 박찬숙 감독이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다.

 

“농구가 너무 힘들고 지겨워 은퇴했어요(1985년). 그때는 결혼하면 은퇴하는 게 관행이기도 했구요. 근데 딱 3년 지나니까 농구가 그리워지더라구요. 마침 대만에서 불러 펄펄 뛰어다녔죠. 농구 경기 보세요, 같은 팀 선수끼리 부딪치던가요? 안 부딪치죠. 골을 넣는 과정은 여러 가지 길이 있어요. 처음에는 골대에 골 넣는 거만 중요했죠. 지금은 골을 넣기까지, 그 길이 보여요. 눈을 감으면 길들이 보이는 거예요. 지금 체력이 뒷받침된다면 진짜 농구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옛날 내가 시합했던 거 생각하면 창피하다니까요.”

 

두 달 전 우리은행 면접에 갈 때도, 최근 신한은행에서도 남들은 이력서 한 장 제출했지만 박씨는 두툼한 ‘감독제안서―박찬숙의 프로구단 코칭 스태프의 역할론’을 냈다. 두 군데에서 모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지만, 면접 통과에는 도움이 못 됐다. “지도자 경력이 짧다고 하니까, ‘나는 이렇게 준비했으니 봐달라’고 낸 거죠. 근데 안 먹히더라구요. 지도자 경력 얘기하면, 나는 영원히 안 되는 거잖아요. 누구 못지않은 화려한 선수 경력, 농구 전략 공부한 거 소용없는 거죠. 여자들은 결단력이 없다구요? 여자들이 더 독한 거 아시잖아요. 기회도 안 주고 자기들 밥그릇 뺏길까봐 그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여자프로농구 역사가 10년이에요. 여자 지도자가 나올 때도 됐죠. 나중에라도 내 후배 중 누군가 내가 이렇게 한 거 덕을 봤으면 좋겠어요.” 약 1년 반 연구원생들과 연구한 전략자료집은 올해 안에 책으로 나온다.

 

‘인권위 파동’을 겪으면서 그녀의 꿈은 하나 더 늘었다. 돈을 버는 거다. 최근 ‘국제선수평가그룹’이라는 스포츠 평가회사 대표이사를 맡았다. “요즘은 프로화되면서 돈이 있어야 힘이 생기더라구요. 대한농구협회, 한국농구연맹회장 자리도 돈이 있어야 되잖아요. 돈 많이 벌면 구단주가 될 수도 있구요. 옛날에는 운동만 열심히 하면 됐는데 세상이 변했어요. 그러니 얼마나 마음 아프고 억울하고 약오르는 지 아세요? 그래도 다 참고 이해하죠,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구요. 저 이러다 조금 있으면 머리 깎고 절 들어갈지 몰라요.” 긴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그녀는 밝게 웃었지만, 도전 실패 후의 씁쓸함이 입꼬리에 묻어났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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