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잘 써야 성공한다
내 인생에 글맛을 알기까지
글을 잘못 써서 좌천까지 당한 개인적 체험에 비추어 글쓰기는 내게 곧 공포였다. 그러나 약도 그리듯 간단히 쓰는 테크니컬 라이팅을 알고 난 후 내 인생의 글맛은 꿀맛으로 바뀌었다.
학창시절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과목이 어학이었다. 계산하는 것을 좋아해 수학과 과학은 재미가 있는데 국어는 도무지 적성에 맞지 않았다. 국어를 잘하지 못하니 영어는 더욱 한심해서 자연히 대학은 이공계를 지원했다. 기계를 선택하니 골치 아픈 국어·영어와 기분 좋게 결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싫은 것을 피해가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1973년 기술고시에 합격하고 과학기술처 원자력국에 발령을 받았다. 출근을 하니 근무 파트너 중에 미국인 1명이 있었는데 국제원자력기구(International Atomic Energy Institute; IAEA)에서 파견한 원자력안전 자문관이었다. 그를 소개받는 자리, 내 입에선 한마디 영어도 나오지 않았다. 이름조차 입에서 나오지 않을 정도였으니 참담한 첫 만남이었다. 당장 카세트를 장만했다. 휴대용 워크맨이라고는 일본제품밖에 없던 시절이라 방송기자나 들고 다닐 정도로 귀했지만 과감하게 봉급의 3배를 투자했다. 또 유명한 영어교재를 구입해서 낮이나 밤이나 6개월을 들었더니 귀가 트였다. 이로써 해외에서 공부하거나 근무하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영어문제가 해결됐다.
국어 문제는 조금 뒤에 닥쳤다. 사무관이나 과장으로 근무할 때에는 내가 글을 잘못 써도 상사가 알아서 고쳐 주니 글 때문에 꾸중 듣는 일은 있어도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앙부처 국장쯤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문제의 글은 방사성폐기물 처분 부지와 관련된 것이었다. 정부는 1990년 말 안면도를 방사성폐기물 처분 부지로 지정하기 위해 비밀리에 계획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 계획이 사전에 누설되어 안면도에서 격렬한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계획은 취소됐고 장관, 차관 및 원자력국장이 줄줄이 물러났다. 새로운 장관으로 언론계 출신이 임명됐는데, 이는 과학자 출신 장관이 방사성폐기물 처분 부지 확보와 같은 민감한 사회적 사안을 풀어내기 어렵다고 대통령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는 후임 원자력국장에 임명돼 1년 안에 폐기물 처분 부지를 확보하는 중책을 맡았다.
안면도에서 교훈을 얻은 정부는 폐기물 부지 선정 방식을 ‘정부 지정’에서 ‘공개 모집’으로 바꾸었다. 공개 모집이 성공하려면, 지방자치 단체와 지역주민들이 그들이 받는 혜택에 비해 방사능으로 인한 위험이 크지 않음을 이해하는 것이 관건이었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알리는 신문공고 문안은 매우 중요했다. 실무자였던 나는 공고문안을 유명작가에게 의뢰하고 주요 일간지들의 1면을 잡아 두었다.
그러나 신문에 싣기로 한 날짜는 다가오는데 나오기로 한 원고는 더디기만 했다. 독촉 끝에 받아 본 문안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시간이 없어 결국 직접 문안을 작성하기로 했고 밤을 새워 문안을 작성해 새벽녘에 장관에게 보냈다. 그러나 그 문안을 받아 본 장관은 크게 화를 냈고 그날 오전 나는 원자력국장에서 물러나 대전으로 내려갔다.
글을 못 써서 좌천당하다
과학기술처의 젊은 국장이며 원자력 전문가로 승승장구하던 나에게 이 사건은 충격이었다. 그때 나는 조직에서 벗어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확실히 맛보았다. 권력은 공무원에게 당연한 것이고 주위사람이 받들어 모시니 내가 똑똑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나의 진정한 경쟁력이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기회는 일찍 찾아왔다. 한국이 국제화를 지향하면서 중앙부처 국장급 공무원에게 해외에서 1년간 본인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나는 MBA가 하고 싶었다. MBA는 통상 2년이지만 다행히 영국 랭커스트대학에 1년 코스가 있었다. 먼저 학기가 시작되기 전 방학기간에 열리는 테크니컬 라이팅(Technical Writing·이하TW)을 수강했다.
첫 수업에서 눈이 번쩍 뜨였다. 그때까지 내가 배운 글쓰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사실 워낙 글쓰기에 자신이 없던 터라 나름대로 관심을 가지고 대학작문 교재, 논술 길잡이, 문장론, 보고서 작성법 등을 틈나는 대로 찾아보았으나 결과는 불만스러웠다. 내용이 지루하고 알아야 할 사항이 너무 많아 목차만 보아도 질렸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1년간 미국원자력규제위원회(US Nuclear Regulatory Commission) 파견근무를 하고 다시 빈에 있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2년간 일할 때도 점심시간을 이용해 3개월씩 TW를 배웠지만 효과가 없었다. TW교육이 미국 정부나 국제기구가 사용하는 문서 형식에 치우치다보니 글쓰기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첫 수업시간에 글의 구조와 논리 전개 방법을 듣는 순간 ‘바로 이것이다’ 하는 느낌이 왔다.
사무적인 글과 문학적인 글은 하늘과 땅 차이
그러나 글의 구조를 잡고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기법을 안다고 해서 글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실전이 필요했다. MBA수업에서 매주 한 번 정도 리포트를 제출해야 했는데 나는 한두 쪽도 채우기 힘들어 쩔쩔 맬 때 영국학생들은 15쪽 내외의 리포트를 잘도 적어냈다. 공부 자체에도 시간이 모자라는 판에 글쓰기에까지 시간을 뺏기는 것이 싫어 나는 대충대충 리포트를 써냈다. 결과는 나쁜 성적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마케팅 과목에서 낙제하여 재시험을 치러야 했다. 재시험이 하나라도 더 나오면 학교를 떠나야 했기에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더 이상 글쓰기를 미룰 수 없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물론 학교에서 배운 아마추어 글쓰기는 직장에서 요구하는 프로 글쓰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1994년 북한 핵문제가 심각한 국면에 있을 때 나는 오스트리아 주재 한국대사관에 과학관으로 발령을 받았다. 이곳에는 당시 외무부 내에서도 글 잘 쓰기로 소문난 이시영 대사(전 외무부 차관 및 유엔 대사, 현 전주대 총장)가 근무하고 있었다. 이 분은 내가 2장으로 써 올린 문서를 새빨갛게 고쳐 반장 정도로 줄였다. 나는 보고내용을 일어난 시간 순으로 장황하게 적었지만 대사는 중요한 것부터 간결하게 정리해 읽는 사람이 핵심내용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바꾸어놓았다. 글이 고쳐질 때마다 호된 꾸중이 뒤따른 덕분에 직장에서 글쓰는 요령을 비교적 짧은 시간에 터득할 수 있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전문 작가에게도 어려운 작업이다. 마치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그리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발로 걸어 다닌 것과 같다. 그래서 우리의 글쓰기 교육은 마냥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고 가르친다. 문제는 어디까지 읽고, 쓰고, 생각해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데 있다. 이러니 글쓰기 교육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특히 글쓰기에 소질도 없고 관심도 없는 이공계 출신 기술자나 과학자에게는 더하다.
우리는 그동안 글쓰기를 할 때 글은 아름다워야 하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고 배웠다. 이 또한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는 없다. 문학적인 글쓰기와 사무적인 글쓰기는 전혀 다른데 아무도 이것을 지적하지 않는다.
문학적인 글쓰기는 재미와 감동을 위한 글로 기-승-전-결이 있다. 영화 ‘디 아더스(The Others)’를 보면 마지막 순간까지 결과를 알 수가 없어 조마조마한 긴장감이 유지된다. 만약 미리 결과를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화를 낼 정도이다.
그러나 사무적인 글은 한마디로 먹고살자고 쓰는 글이다. 사무실에서 상사한테 보고를 할 때 중요한 결론을 끝까지 숨기다가 마지막에 “짠! 이게 결론입니다. 재미있지요?”라고 했다가는 목이 몇 개라도 남아나지 못할 것이다. 보고서나 논문을 작성할 때는 결론이 먼저 제시되는 TW기법을 적용해야 한다.
글은 아름다워야 하고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글쓰기가 어려워진다. 이런 문학적인 글은 잘 그린 그림처럼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그러나 그림이 아니라 약도라면 누구나 쉽게 그릴 수 있다. 기술자는 약도 그리듯 글쓰기를 하면 된다. 기술자가 사무적으로 쓰는 글은 감정에 호소하여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므로 ‘주요 사실을 알기 쉽고 간결하게’ 기술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TW기법의 핵심이다.
기술자도 글 잘 써야 대접받는다
얼마 전, ○○건설에서 강의요청이 왔다. 180여명이나 되는 청중은 전국의 건설 현장 소장들이었다. 건설 현장 소장들이 웬 글쓰기를 배우려 하나 궁금했다. 그래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두 가지로 압축됐다.
첫째, 전자결재제도 때문이었다. ○○건설은 본사와 현장 간의 업무효율을 높이기 위해 전자결재 시스템을 구축했으나 막상 ‘글로써 간결하고 정확하게 의사소통을 하는 데 준비가 미흡하다’고 판단해 전자결재를 당분간 보류했다.
둘째, 전자입찰제도 때문이었다. 정부는 대형 토목공사에 2004년부터 전자입찰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이때 입찰에 참가하는 회사는 기술의 독창성 등을 간결하게 작성해 제출해야 하는데, 그동안 토목현장 기술자들이 글쓰기와 담을 쌓았으니 걱정이 많다고 했다. 이 사례에서 보듯이 이제는 현장 기술자가 쓴 글이 곧 돈과 직결되는 시대다.
또 IT업계에서는 사용설명서인 매뉴얼을 쓸 일이 많다. 기술의 진보 속도가 빨라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술이 소개되다보니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 이 매뉴얼이 사용자 입장에서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말로 되어 있기 일쑤다.
벤처회사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그때 제출하는 사용설명서의 내용이 난해해 애써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인증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글쓰기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IT업계에서도 제법 글을 쓸 줄 아는 직원이 대접을 받는다.
이와 같은 경향은 앞으로 점점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도 2002년 7월부터 발효된 제조물책임법(Product Liability; PL법)에 따라 소비자가 사용설명서를 잘못 이해해 입은 손해도 제조업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약의 사용설명서에 ‘이 약의 부작용으로 간혹 입안이 마르거나 아주 드물게는 두드러기가 날 수 있습니다’라고 모호하게 표현해도 문제가 없었으나 앞으로는 ‘간혹’은 ‘5% 내외로’, ‘아주 드물게는 ‘0.1% 이내로’로 정확하게 기재하지 않으면 제조업자가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과 일본도 PL법이 발효되자 사용설명서를 전문적으로 쓰는 매뉴얼 제작 업종이 급속히 성장하기 시작했다.
문장력이 진급심사를 좌우하는 이유
지도자는 의사소통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기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능력은 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케네디 스쿨(정치·행정대학원)은 첫 시간을 의사소통에 관한 수업으로 시작할 만큼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한다.
이렇게 현대는 의사소통 능력이 경쟁력의 핵심이 되기 때문에 마르크스가 살아 있다면 ‘자본론’ 대신 ‘의사소통론’을 썼을 것이라는 말도 나왔으리라. 다음은 피아니스트에서 ‘탁월한 학교행정 전문가’가 된 이강숙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의 말이다.
“행정이 뭔지 아직도 모른다. 다만 학교도 사람이 얽힌 곳이라 얽힌 것을 상식선에서 풀어나간다. 이때 의사소통이 제대로 돼야 한다. 사무직원의 언어와 교수의 언어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들의 마음을 번역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산’이란 어휘만 해도 교수들은 ‘돈을 주면 쓰게 된다’라고 생각한다. 여기엔 ‘인격’을 믿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사무직원들은 쓰는 돈엔 반드시 영수증이 따라 붙어야 한다는 논리다. 공금이기 때문에 그 용처가 정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한국어를 사용해도 벽이 있으면 외국어가 된다. 소통이 안 되면 동일 언어도 적대언어가 되고 만다. 총장을 하다 보니 ‘절제된 언어’의 필요성도 느꼈다. 짧은 시간에 상대를 설득하지 못하면 될 일도 안 된다. 상대가 자기 이야기만 하거나 횡설수설하면 그렇게 황당하고 답답할 수가 없다. 말에도 프로와 아마추어가 있다는 것을 절감하였다.”
의사소통 능력은 정치나 행정에서만 경쟁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직장에서의 경쟁력이기도 하다. 우선 미국의 실태를 살펴보기로 한다. 미국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기술자는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 중 적어도 3분의 1을 쓰기, 편집, 프레젠테이션 준비 등 쓰기와 관련된 일에 할애한다. 승진할수록 그 비율은 더욱 늘어나 중간관리자는 40%, 그리고 매니저는 50%를 쓰면서 보낸다. 이렇게 쓰기가 의사소통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으니 직장에서 쓰기가 경쟁력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표1>은 성공한 직장인에게 문장력의 중요성을 물은 결과이다.
질문 1 : | 본인 업무에서 효과적인 문장력의 필요성은? | |
응답 : | 필수적임 | 11명(45%) |
매우 중요함 | 124명(50%) | |
조금 중요함 | 9명(4%) | |
질문 2 : | 부하의 문장력을 진급심사에서 어느 정도 고려하는가? | |
응답 : | 필수적임 | 63명(26%) |
많이 고려함 | 153명(63%) | |
조금 중요함 | 25명(10%) |
이렇기 때문에 미국의 경우 직장에서 ‘제출하는 보고서가 곧 승진 청원서’가 된다. 따라서 직장의 초급 간부가 되면 TW와 프레젠테이션을 반드시 배워야 한다.
순위 | 학과목 | 순위 | 학과목 |
1 | 경영학 | 11 | 컴퓨터 |
2 | 기술자 글쓰기(Technical Writing) | 12 | 열전달 |
3 | 확률과 통계 | 13 | 기기사용 및 측정 |
4 | 발표(Public Speech) | 14 | 데이터 처리 |
5 | 창의(Creative Thinking) | 15 | 시스템 프로그래밍 |
6 | 개인간 인화 | 16 | 경제학 |
7 | 그룹간 인화 | 17 | 미분학 |
8 | 속독(Speed Reading) | 18 | 논리학 |
9 | 대화(Talking With People) | 19 | 경제분석 |
10 | 영업(Marketing) | 20 | 응용프로그래밍(이하 생략) |
다음 <표2>도 의사소통이 기술자에게 경쟁력이 되고 있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표2>는 미국에서 성공한 기술자 4000여명을 대상으로 기술자가 직장에서 필요로 하는 학과목을 조사한 결과다. 10위권 안에 든 공대 전공과목은 ‘확률과 통계’ 하나밖에 없다. 10위 마케팅도 반 이상이 의사소통능력을 요구하는 점을 감안하면, 10위 이내 과목의 3분의 2 이상이 의사소통과 관련된 과목인 것이다. 공대 전공과목은 10위권 밖에서나 나타난다. 이 자료는 의사소통능력이 기술자에게도 경쟁력이 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논리적 글쓰기와 과학은 닮은꼴
과학자가 정부 연구비를 신청할 때 제출하는 연구계획서는 비전문가도 이해할 수 있는 형태와 문장으로 써야 한다. 이는 세금 납부자인 국민이 이해하지 못하는 연구를 국가가 지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구보고서가 아무리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너무 전문적이어서 내용 전달이 잘 되지 않으면 그 보고서는 실패한 것이 되고 책임도 작성자가 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아예 과학자의 글쓰기 의무(The Code of Ethical Conduct by the Society for Technical Communication)를 규정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새로운 개념의 개발만큼 이의 전달에도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라.
- 읽는 사람의 시간과 노력이 중요함을 인식하라.
- 기술적 사실을 진실하고, 명확하면서 경제적으로 전달할 책임이 있음 을 인식하라.
글은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적어 나갈 때 설득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사물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과학과 닮은 점이 많다. 그런 점에서 위대한 과학자들 가운데 위대한 작가가 많은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다윈이 5년 동안 남미와 갈라파고스를 둘러보고 쓴 ‘비글호의 항해’는 생생한 묘사로 문학사의 고전이 됐고 진화론을 체계화한 ‘종의 기원’은 출간되자마자 매진된 베스트셀러였다.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나 ‘시간의 역사’를 쓴 스티븐 호킹도 베스트셀러 작가에 오른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MIT대 부근에 있는 서점에서 ‘The Elements of Style’(Strunk & White)이라는 작문책이 지난 40년간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것이다. 본문이 100쪽도 되지 않는 이 책이 강조하는 바는 ‘문장은 간결하고 짧게, 단문으로, 수동형은 피하고, 불필요한 단어는 무조건 빼라’인데 이러한 원칙이 오랜 세월 공대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기술고시 합격 후 26년간 과학기술부에 근무하면서 나는 기술직 공무원들의 보고서 작성이나 보고요령이 행정직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것을 절감했다.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기술직 공무원의 수가 현저하게 적어지는 현상도 글쓰기나 보고능력 부족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약도 그리듯 써라
현대인은 하루종일 읽고 쓴다. 그러므로 의사소통 능력은 곧 경쟁력이 될 수밖에 없다. 글쓰기를 잘하지 못해 경쟁력이 약한 이공계 출신 기술자나 과학자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약도 그리듯 하는 TW기법’의 전파에 나섰다.
원자력연구소 감사로 있으면서 연구원을 위한 강좌를 만들었다. ‘약도 그리듯이 하는 글쓰기’ 방법에 더하여 한국의 기술자와 과학자들이 많이 틀리는 부분을 정리하여 4시간짜리 강의를 시작했다. 성과는 놀라웠다. 단 4시간 수강으로 글쓰기의 두려움에서 벗어난 연구원도 보았다.
이런 반응에 더욱 자신을 얻어 나는 아예 이공계 대학생을 위한 ‘의사소통기술’ 과목을 개설해 영남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학생들의 반응은 예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공대에서 이렇게 재미있고 유익한 강의를 들을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힘을 얻어 웹사이트 ‘임재춘의 과학기술자 글쓰기’(www.tec-writing.com)를 개설하는 한편, ‘한국의 이공계는 글쓰기가 두렵다’란 책을 썼다. 책의 반응도 매우 좋아서 주요 인터넷 서점들의 ‘창작론’ 분야에서 높은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제 우리 기업과 대학들도 TW교육에 눈을 돌리고 있다. 참고로 미국에는 TW관련 학과를 개설한 대학이 150여 곳이나 되고 TW를 직업으로 하는 프리랜서가 10만명이 넘는다. 이들의 협회격인 ‘The Society for Technical Communication’도 51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테크니컬 라이팅은 이제 막 씨를 뿌렸다.
<출처: 신동아 2003년 11월호 통권530호 특별부록 글쓰기의 쾌락>
임재춘 영남대 객원교수·테크니컬 라이팅 tec-writing@hanmail.net
영남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1973년 기술고시를 거쳐 과학기술부 원자력실장,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 오스트리아 주재 과학관, 한국원자력연구소 감사직을 역임했다. 미국 조지아대학 원자력공학 석사, 영국 랭커스터대학에서 MBA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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