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1일부터 8월 6일까지 핀란드와 노르웨이, 스웨덴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북유럽은 여간해서는 가보기가 정말 쉽지 않은 곳이다. 하기야 뭐 돈만 많이 있다면 못갈 것도 없겠지만… ㅜㅜ. 3개국을 불과 일주일의 짧은 일정에 돌아본다는 것은 주마간산격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일이겠지만 그렇게라도 볼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정말 더없이 소중한 기회였다.
7월 31일 당초 예정시간 10시15분보다 20분 지연된 10시35분쯤 핀에어를 타고 핀란드로 향했다. 서울에서 헬싱키까지 거리는 7039㎞. 종전에는 직항노선이 없어 핀란드까지 가는데 15시간이 소요됐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6월부터 핀에어가 취항하면서 핀란드까지 소요시간이 8시간으로 줄었다. 우리나라와 핀란드의 시차는 6시간이 난다. 현지시간으로 오후 2시쯤 핀란드 반탁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핀란드는 그야말로 물 반 숲 반인 세상이었다. 곳곳에서 호수가 보였고 땅은 침엽수림으로 뒤덮여 있다.
핀란드는 ‘산타클로스’로 유명하다. 스칸디나비아반도 북동쪽 끝에 자리하고 있으며 면적의 1/3이 북극권에 속하는 빙하의 나라다. 공식 명칭은 핀란드 공화국(Republic of Finland)이고, 핀란드어로는 수오미(Suomi)이다. ‘핀란드’의 뜻은 원래 ‘호수의 나라’란 의미를 담고 있다. 아이슬란드 다음으로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육지의 71%가 울창한 냉대림으로 뒤덮여 있고, 그 사이로 6만여 개의 크고 작은 호수가 산재해 있다. 세계적으로 물이 맑은 나라로 손꼽는다.
핀란드 헬싱키
수오멘린나 요새(Suomenlinna sveaborg)
핀란드에 도착하자마자 방문 목적지로 향했다. 그곳에서 1차 시찰과 방문토론 등을 벌인 뒤 주최측이 초청한 만찬에 참여하게 됐다. 만찬은 핀란드의 해상요새인 수오멘린나를 둘러본 뒤 돌아오는 선상에서 이뤄졌다.
수오멘린나에 대한 안내는 현지인인 안네 마린 린드버그 여사가 맡았다. 이곳은 핀란드가 스웨덴의 통치를 받고 있던 1748년 스웨덴 국왕 프레데릭 1세가 러시아의 공격에 대비해 요새를 건설하도록 지시해 만들어졌다. 당시 최첨단 기술을 투입한 끝에 1772년 여섯 개의 섬을 연결해 총길이 7.5㎞에 이르는 화강암 성벽 등을 갖춘 요새가 구축됐다. 성 안에는 이 요새를 처음 만든 아우구시트 에렌스 아워의 조형물이 여전히 남아 있다.
▶수오멘린나를 만든 아우구시트 에렌스 아워 조형물
▶수외멘린나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
▶수오멘린나 감옥. 좌우 양 옆으로 사람키보다 조금 더 깊이 파여져 있어 그 안에 감금했다.
▶해상요새였던 수오멘린나는 지금은 평화로운 공원으로 바꿔져 있다.
그러나 이 해상요새는 1808년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 1세는 바다가 아니라 육상으로 치고 들어오는 바람에 금방 함락돼 러시아령으로 바뀌었다. 이후 이 섬은 크림전쟁 등을 겪으며 러시아의 방어 기지로서 역할을 했다. 이후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같은 해 12월 핀란드가 독립을 선언하면서, 이 요새는 핀란드어로 '무장해제'를 뜻하는 수오멘린나로 바뀌었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돼 있는 수오멘린나 요새에는 요새와 연안 방위에 관련된 자료를 모아 전시하고 있는 에렌스바트 박물관을 비롯, 잠수함과 해상무기를 전시하고 있는 암펠트 박물관 등이 있다. 이 요새는 역사가 말해주듯 큰 화강암을 이용한 스웨덴식 건축과 붉은 벽돌을 활용한 러시아식 건축양식이 공존한다. 스웨덴식 건축물 위에 러시아식으로 쌓아올린 건축물도 있었다. 바위섬인 이 곳에는 오래전부터 여전히 9백여명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한 때 최고의 군사요새였지만 지금은 관광명소로 레스토랑과 카페 우체국, 공원 등이 조성돼 있어 관광객 뿐 아니라 많은 헬싱키 시민들이 이곳에서 산책을 즐기거나 햇빛을 쪼이며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시벨리우스 공원 (Sibeliuksen Pulsto)
이튿날 방문 목적을 위한 일정은 오후에 잡혀 있기 때문에 오전에는 현지인(수오메린느와 마찬가지로 60대 할머니였는데 성명 미확인)의 안내로 헬싱키 시내 관광에 나섰다. 버스는 오페라하우스와 올림픽공원을 지나 헬싱키시내 북서쪽 바닷가에 위치한 시벨리우스 공원에 멈춰섰다.
시벨리우스 공원은 핀란드가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시벨리우스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원이다. 시벨리우스는 조국 핀란드에 대한 사랑과 민족의식 고취를 주제로 한 곡들을 작곡해 핀란드인에게 국민음악가로 추앙받고 있다. 모두 6개의 교향곡과 80여개의 가곡을 남겼다. 특히 1899년 작곡한 '핀란디아'는 러시아 지배를 받던 핀란드인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한 작품으로 그의 대표작이다.
이 공원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파이프오르간 모양의 시벨리우스 기념 조형물과 바로 옆에 있는 시벨리우스 두상이다. 핀란드의 대표적인 여류 조각가 에일라 힐투넨이 1967년 시벨리우스 사후 10주년을 기념해 만들었다. 핀란드의 상징인 자작나무를 연상시키는 600여개의 은빛 강철 파이프로 이뤄진 이 조형물은 전체무게 24톤에 이르며, 시벨리우스의 음악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공원은 헬싱키 시민들에게도 쉼터나 조깅코스 등으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암석교회 템펠리아우키오(Temppeliaukion kirkko)
이동하는 동안 핀란드가 스웨덴과 러시아의 지배를 4백 년 동안 받으면서 핀란드어가 보존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참고로 핀란드는 핀란드어를 사용하고 공용어로 스웨덴어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에서 스웨덴어 사용은 6% 정도에 그치고 오히려 영어가 81%, 러시아어는 31%, 프랑스어는 11%가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해설사의 대답은 스웨덴 지배를 받을 당시 국민들이 스스로 핀란드어 교재를 만들어 자체적으로 교육을 시켰다고 한다. 스웨덴이 이를 금지하지 않았으나 이후에 핀란드를 점령한 러시아는 핀란드어를 금지시켰으나 국민들은 끊임없이 언어를 지키기 위해 갖은 수단방법으로 그들의 언어를 지켰고 그로인해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고 했다. 언어가 그 나라의 혼을 지키는데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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