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마라톤에 얽힌 일화

건강생활---------/맘대로달리기

by 자청비 2008. 11. 16. 00:01

본문

어떤 스포츠든 간에 숨겨진 이야기나 일화들이 있기 마련이다. 마라톤의 경우는 대부분 감동적인 일화가 많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일화도 있다. 여기저기서 많이 알려져 있는 마라톤에 얽힌 일화를 모아놓았다.


에티오피아의 전설 '맨발의 영웅' 아베베 비킬라(1932-1973)

1935년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를 침공 , 1년6개월간 점령한다. 이탈리아에게 처참히 짓밟혔던 에티오피아는 1960년 아베베비칼라에 의해 그 한을 풀게 된다.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아베베는 아프리카 국가로는 처음으로 마라톤에서 우승을 하게 된다. 변변한 운동화조차 준비못했던 아베베는 42.195km를 맨발로 달려서 이전까지 20분대를 넘지 못하던 마라톤 기록을 5분 가까이 단축하면서 2시간15분17초라는 최고기록으로 우승했다.

 

그의 신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4년후인 1964년 도쿄올림픽 마라톤 대회를 6주 앞두고 맹장수술을 받게 됐다.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그는 출전을 감행했고, 2시간12분12초의 기록을 세우며 우승하면서 마라톤 사상 최초의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3연패를 노리지만 레이스도중 다리가 골절되어 17km지점에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한다. 그러나 이 대회에서 우승후보 아베베를 추격하던 다른 선수들은 오버페이스로 지치는 바람에 에티오피아 선수인 마모 월데가 우승해 그는 올림픽 마라톤에서만 조국에 금메달을 3차례나 안겼다.

 

그리고 1년후  아베베는 빗길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고 말았다. 하지만 아베베는 굴하지 않았다. 1970년 노르웨이 장애인올림픽에 양궁선수로 출전, 다시 한번 금메달을 따내며 전 세계를 감동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나는 남과 경쟁하여 이긴다는 것보다 자신의 고통을 이겨내는 것을 언제나 생각한다. 고통과 괴로움에 지지않고 마지막까지 달렸을때 그것은 승리로 연결되었다."


인간한계의 도전
1904년 런던 올림픽에서 이탈리아의 피에트리 도란도(Pietri Dorando) 선수의 일화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도전과 안타까움을 보여준다. 도란도 선수는 경기의 마지막 1마일 지점에서 선두에 나섰다. 마침내 도란도가 경기장으로 들어서자 관중들을 환호와 박수를 치다가 이내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다. 이유인즉 도란도 선수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머리와 팔 다리를 흔들거리면서 트랙 반대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관중들은 흥분하여 'No!'를 외쳤고 잠시 주춤하다가 주위를 살핀 도란도는 방향을 바꿔 걷더니 그만 주저앉아 버렸다. 다시 힘을 내 걷고 다시 쓰러지기를 몇 차례 반복하다가 결승선 1백m를 남겨두고 체력이 전부 소진돼 버린듯 허물어졌다. 관중들의 안타까운 탄식이 이어졌다. 곳곳에서는 도란도를 도와주어야 한다고 외쳤다.

 

그 때 본부석에서 의사와 임원들이 도란도에게 다가가도록 지시를 내렸고 이들 앞에서 필사적으로 일어서려고 노력하던 도란도는 더 이상 서지 못하고 있는데 경기장으로 두번째 선수가 들어섰다. 경기임원장이던 잭 앤드류는 도란도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서 달려가서 부축해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러나 2위로 들어선 19세의 미국 선수 존 헤이즈(John Hayes)가 이러한 심판들의 행동에 항의했고, 어쩔수없이 심판들은 도란도의 우승을 무효로 선언했다.

 

결국 그는 시상식에서 금메달은 못땄지만 다음날 금메달 보다 더 값진 상을 받을 수 있었다. 이탈리아 마라토너의 올림픽 정신에 감명받은 알렉산드라 여왕(Queen Alexandra)이 도란도에게 금 트로피를 수여한 것이다. 영국 여왕은 도란도가 받았던 조금은 가혹했던 대접에 대한 위로의 뜻으로 이런 말을 건넸다. "이건 금으로 된 컵이죠. 우리 나라에 대한 나쁜 기억만 가진 채 귀국하지는 않기 바랍니다"


마라톤 최장기록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 마라톤에서는 일본의 '시조 카나쿠라' 선수가 갖고 있다. 이 선수는 경기 당일 찌는 듯한 폭염에 탈진해 20km지점에서 쓰러져 이웃에 있던 스웨덴 부부의 집으로 실려갔다. 그들의 간호로 저녁 무렵에야 깨어난 카나쿠라 선수는 당황한 나머지 아무도 몰래 배를 타고 고국으로 귀국해 버렸다. 올림픽위원회는 이 사실을 모른채 카나쿠라 선수를 실격대신 실종으로 처리해 버렸다. 그렇게 54년이 세월이 흐른 1966년 진실을 알아낸 위원회측은 일본에 생존해 있던 카나쿠라 선수를 찾앗다. 하지만 당시 고령이던 그의 건강을 걱정한 위원회 측은 트랙을 한 바퀴를 도는 것으로 완주를 인정해주었다. 그리하여 카나쿠라 선수의 공식기록은 <54년 2일 32분20.3초>가 됐다. 현재 기네스북에도 올라 있는 마라톤최장시간 기록이다.


불멸의 투혼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는 78개국 122명의 선수가 달렸는데 111명이 완주했다. 한국의 이봉주 선수가 남아공의 투과니에 이어 은메달을 딴 대회이기도 하다. 이 마라톤 대회에서 110번째 선수가 들어오고 난 후 시상식도 끝났고 올림픽 요원과 자원봉사자들이 올림픽 폐회식을 준비하는 어수선한 시간이었다. 거기에다가 주경기장 문도 닫혀진 상태였다. 그런데 한 선수가 뛰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자원봉사자가 급히 문을 열어주고 악대에게 선수가 뛰어오고 있는 것을 알렸다.

 

결승선을 향해 고통으로 표정이 일그러진채 다리를 심하게 절룩거리며 트랙을 돌고 있던 선수는 아프가니스탄의 압둘 베사르 와시키 선수였다. 관중석에 남아 있던 모든 관중이 그에게 기립박수를 보내며 응원을 보냈다. 그는 1위 투과니(2시간11분41))에 무려 2시간 이상, 바로 앞선 111위 선수에도 1시간30여분 뒤진 4시간24분 17초의 올림픽 마라톤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부상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올림픽 정신을 보여줌으로써 전세계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안타까운 죽음
일본이 마라톤에서 메달을 최초로 얻어낸 것은 1964년 도쿄 올림픽 경기 때 '고키치 쓰부라야'의 동메달이었다. 일본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그는 최선을 다했지만 '맨발의 영웅' 에티오피아의 '아베베 비킬라'에게 밀려 2위로 경기장에 드어왔지만 결승선을 눈 앞에 두고 다시 영국선수에게 추월을 허용하면서 3초 차이로 동메달을 목에 걸게 됐다. 단 3초 차이로 3위를 했으니 일본인들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시상식이 끝난 뒤 쓰부라야는 신문기자들 앞에서 금메달을 따내지 못한 것에 대해 모든 일본 국민에게 용서를 빈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가 겪게된 모욕에 대해 마음 깊이 뉘우치고 있다고 말했고, 멕시코시티에서 열리는 다음 올림픽에서 부진을 만회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결승전 다음날부터 다음 멕시코 대회를 준비했다. 약혼녀와의 결혼도 미룬채 훈련에 들어간 그에게 일본 전 국민은 위로와 격려를 하면서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67년 가을, 그는 부상을 당했고 3개월간 병원에 입원해야했다. 의사가 완치됐다며 퇴원시키자 다시 뛰기시작했지만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몸이 약해졌다는 것을 절감했다. 68년 1월 9일 퇴원 2개월 후, 올림픽 개막 9개월 전 그는 면도날로 오른팔 동맥을 자르고 생을 마감했다. 옆에는 달랑 한 문장만 적혀 있는 유서가 발견됐다.

 

그러던 67년 가을, 그는 두군데 부상을 당했고 3개월간 병원에 입원해야했다. 의사가 완치됐다며 퇴원시키자 다시 뛰기시작했지만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몸이 약해졌다는 것을 절감했다. 68년 1월 9일 퇴원 2개월 후, 올림픽 개막 9개월 전 그는 면도날로 오른팔 동맥을 자르고 생을 마감했다. 책상위에 그가 남긴 간략한 말이 파랑색 잉크로 쓰여 있었다. "나는 지쳤습니다. 더 이상 달리고 싶지 않습니다."


전화위복(?)
1904년 센트루이스 대회 때 미국의 프레드 로츠(Fred Lorz)라는 선수가 1위를 했다. 그러나 그는 더운 날씨 관계로 목이 타서 뛸 수가 없었다. 그래서 9마일쯤 달리다가 마라톤을 포기하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걸어가는 동안 다른 선수들에게 열심히 뛰라는 격려까지 하면서 차를 타고 가는데 결승점에서 5마일 못미치는 곳에서 차가 고장 나버렸다. 이젠 기력도 회복돼 슬슬 몸풀기 삼아 다시 뛴 그는 내친 김에 그대로 달려 버렸고 결과는 1위였다. 그러나 차를 타고 간 사실이 밝혀져 금메달 박탈과 함께 징계를 받았으나 그는 1년후 보스톤 마라톤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견공(犬公)은 마라토너가 싫다
1904년 센트루이스 올림픽에서는 아프리카에서 2명의 선수가 참가했는데 남아공의 렌토우라는 선수는 달리는 중에 개에게 쫓겨서 옥수수밭을 이리저리 도망다니다가 겨우 결승선을 통과했는데 9위에 머물렀다고 한다. 서윤복 선수도 보스톤 마라톤대회에서 달리는 도중 개의 습격을 받고 혼난적이 있다.


억울한 죽음
탄자니아에서는 마라톤 연습으로 골프장에서 달리기를 하던 도중 도망치는 도둑으로 오인한 경관이 쏜 총에 맞아 목숨을 잃어버린 예도 있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