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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아작' 내고도 여전히 '남 탓'

세상보기---------/조리혹은부조리

by 자청비 2008. 11. 23.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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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아작' 내고도 '남 탓'…존경스런 IMF 주범들
9개월만에 성장률 1/3, "과거10년간 나라가 상해있어서…"

 

<데일리 서프라이즈>


 

초나라 장왕에게는 병적으로 아끼는 애마가 있었다. 왕은 말에게 비단옷을 입히고 좋은 침대에서 재우고, 대추와 마른 고기를 먹였는데 ‘말 같지 않은’ 대우를 받던 말은 결국 비만으로 죽고 말았다. 슬픔에 빠진 왕은 대부의 예로 장사할 것을 명했고, 그동안 많이 참았던 신하들은 부당함을 간했다. 하지만 왕은 “더 이상 간하면 사형”이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보다 못한 악인(樂人 어릿광대) 우맹(優孟)이 대성통곡을 하며 입을 열었다. “폐하, 대부의 예는 너무 초라합니다. 청컨대 임금의 예로 장사를 지내셔야 합니다. 옥을 다듬어 관을 짜고, 무늬가 새겨진 나무로 외부를 만들며 단풍나무 등으로 장식한 뒤 군사를 동원해 제나라와 조나라, 한나라와 위나라 사신이 호위하게 하고 제사를 받들 1만호의 땅을 내리십시오.”

 

이어진 말이 하이라이트였다. “그렇게만 하시면 제후들이 이를 듣고서 모두 대왕께서 사람을 천하게 여기고 말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시 중국을 좌우하던 인물이라 장왕도 그 정도를 알아들을 말귀는 있었다. 왕은 깨끗하게 인정하고 되물었다. “과인의 잘못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단 말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겠소?”

 

국장(國葬)을 제안했던 우맹은 기다렸다는 듯이 ‘육축장(六畜葬)’을 제안했다. “부뚜막을 바깥널로 삼고, 구리로 만든 솥을 속널로 삼으며, 생강과 대추를 섞고, 목란을 넣어, 볏짚으로 제사 지내고, 타오르는 불빛으로 옷을 입혀, 그것을 사람의 창자 속에 장사지내십시오(請爲大王六畜葬之 以壟灶爲槨 銅歷爲棺 齎以薑棗 薦以木蘭 祭以糧稻 衣以火光 葬之於人腹腸).”

 

“개 팔자가 상팔자” 개보다 못한 취급받는 사람들

 

지난 2004년 2월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의 애완견 스팟(Spot)이 죽자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대통령 부부와 모든 부시 가족들이 스팟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그해 6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G8정상회담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일본총리가 조의(弔意)를 표해 다시 ‘퍼스트 독(Firstdog)’이 국제적으로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강아지에 대한 부시의 순수한(?) 사랑과 고이즈미의 진실한(?) 위로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토록 개를 아끼던 부시는 하필 이라크전쟁을 일으켜 130만명에 육박하는 민간인을 죽음으로 몰았던 인물이었다. 전 세계인들은 이라크 민간인 130여만명이 부시의 개 한 마리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며 냉소를 띄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시 동아일보는 ‘개(犬)를 위한 조의(弔意)’라는 글에서 “고이즈미 총리는 이 일로 구설수에 올랐지만 개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심정을 모른다”며 “중요한 것은 더 돈독해졌음을 보여준 양국 관계”라고 강조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두 번째 미국 방문 계획이 잡혀 있는지 모르나 혹 있다면 고이즈미의 조의가 참고가 됐으면 한다”는 조언까지 남겼다.

 

양상은 조금 달랐지만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전북 익산시는 이명박 대통령의 사가에서 기르던 진돗개 새끼를 분양받고 감읍(感泣)한 나머지 200여만원을 투자해 CCTV가 설치된 20㎡ 크기의 ‘노들이의 집’을 짓는다고 지난 19일 밝혔다. 개의 스트레스를 줄여주기 위해 바닥에 황토까지 깔기로 했단다. 정말 ‘개 팔자가 상팔자(上八字)’다.

 

돌아온 IMF주역들, 또 다시 위기 맞고도 ‘남 탓’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이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 중후반까지 낮췄다고 한다. 굳이 이 대통령의 ‘747공약(연간 7% 성장, 10년 뒤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달성, 세계 7대 강국 도약)’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난 9월말에도 5%를 주장하던 정부였다. 이달 초까지도 4%였다. 출범 9개월 만에 성장률이 3분의1로 줄었지만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여기에 우리의 여당은 21일 축하받을만한 창당 11주년을 맞아 “10년 만에 정권을 되찾아오니 많이 상해있더라”며 “경제도 상했고, 국가시스템도 잘못된 게 많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말 이런 말을 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IMF 사태를 유발한 주역들이 10년 만에 돌아와 어렵게 회복시킨 경제를 단9개월 만에 ‘아작’냈다고 믿는 일반의 정서와 너무 다르다.

 

개 한 마리의 죽음에 안타까워하는 ‘여린 심정’의 소유자였지만, 타당성을 갖춘 조언을 무시하고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할 때 전쟁을 일으켜 130만명의 민간인을 학살한다. 개의 스트레스까지 배려할 줄 아는 착한 사람이라도 시대가 주는 메시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할 때 원목으로 개집을 지어 어려운 경제상황에 빠진 국민들의 스트레스 지수를 높이기 마련이다.

 
“과인의 잘못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단 말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겠소?”

‘사기(史記)’에 나오는 고사에서 장왕(莊王)은 한낱 광대의 불경한 발언을 두 말 않고 수용해 말 시체를 궁정요리사 태관(太官)에게 넘겼다. ‘세상에 두고두고 긴 말이 없도록(無令天下久聞也)’하기 위함이었다. 이 고사는 본래 ‘메시지에는 분명한 핵심과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때 사용되는데, 광대의 조롱마저 ‘통 크게’ 수용한 왕의 자세가 돋보인다.

 

장왕은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한 사람으로 이름을 남겼다. 우리 대통령은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하다. 국내외에서 쏟아지는 경제팀에 대한 타당한 조언에도 불구하고 왜 그토록 집착하는지 궁금할 뿐이다. 말이 좀 통하는 ‘통 큰 대통령’ ‘통 큰 정부여당’이 국민들에게 너무 사치스러운 바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세상에 두고두고 긴 말이 남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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