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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칭 눈으로 쓰는 ‘자서전적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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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08. 12. 30.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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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칭 눈으로 쓰는 ‘자서전적 일기’
객관적인 눈으로 자신 바라보며 상처 보듬는 효과

 

<한겨레>

» 조금도 진보하지 않는 자신이 못마땅하다면 ‘치유하는 일기쓰기’를 통해 문제의 뿌리를 찾아야 한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못마땅한 자신을 반성하는 일기를 쓴다. 새롭게 다짐하고 각오하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달라지는 건 없고 늘 똑같은 내용의 ‘반성문’만 쓰게 된다. 무엇이 문제일까. “나 자신을 부모나 교사처럼 야단치고 비난해서는, 지금 문제라고 생각하는 상황을 극복할 내면의 힘이 생기지 않는다. 한발짝 멀리 떨어져서 나름대로 애쓰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나를 찾아 스스로에게 용기를 줘야 한다.” <치유하는 글쓰기>의 저자 박미라씨의 말이다. 그래서 사춘기 청소년한테는 ‘자서전적 일기쓰기’가 필요하다.

자서전적 일기쓰기는 복잡한 감정과 막연한 결심으로 채워지는 평범한 일기에 객관적인 관찰자를 개입시키는 일이다. 흔히 자서전은 자신이 직접 쓰기 때문에 주관적인 글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일기와는 달리 나를 관찰하는 3인칭의 눈이 필요한 글이다. 일기쓰기는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는 글이므로 ‘우물’ 안에 갇혀 감정에 빠지기 쉬운 반면 자서전은 남과 공유하는 글이므로 객관적인 자기 해석과 해명이 필요하다.

박미라씨는 “매일 쓰는 일기를 자서전처럼 쓸 필요는 없지만 생일이나 해가 바뀔 때처럼 중요한 계기가 있을 때 한번씩 써보면 지금 겪고 있는 문제의 뿌리를 발견하고 근본적인 치유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예비 고3 수험생처럼 중요한 고비를 맞았다고 느끼는 학생이라면 시도해 볼 만하다.

가장 쉽게는 지난 한 해 동안 내가 겪은가장 행복한 일과 불행한 일을 10가지 정도 정하고 각각에 대한 일기를 써 볼 수 있다. 여러 개를 꼽는 이유는 그 안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기 위해서다. 박미라씨는 “10가지로 꼽은 불행했던 순간들을 살피면 성적, 부모, 친구 등 공통적으로 나를 불행에 빠뜨리는 큰 문제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며 “내가 몰랐던 나의 상처를 발견하는 것은 치유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문제를 발견했다면 이제 그 문제를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박미라씨는 이때 ‘셀프 인터뷰’ 형식의 일기쓰기를 추천한다. ‘열등감’ 탓에 힘들었다면 ‘열등감’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식이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을 인터뷰할 때처럼 나 자신한테 충분한 공감을 표현하는 게 먼저다. 스스로에게 ‘그동안 많이 힘드셨지요’ 하는 말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그밖에 ‘열등감 탓에 현실적으로 손해를 본 게 무엇이냐’, ‘만일 열등감이 찾아오면 내가 당신한테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냐’는 식으로 열등감을 느끼는 나를 객관화해 질문을 던지면 된다.



 

한해살이 글쓰기로 돌아볼까
일단 시작이 반…내 안의 나 술술술
악수하고 보내고 다시 만나면 내면의 힘 뭉클

한겨레

 

 

 

어김없이 한 해가 또 간다. 시끌벅적한 송년회도 거의 다 끝났고, 이제는 조용히 올 한 해를 되돌아볼 때다.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마무리는 어떻게 할까? 지나간 열두 달 동안 나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차분히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돌아보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글쓰기를 권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어린 시절 일기 쓰기 숙제를 하느라 끙끙대던 추억에 고개를 젓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자신을 성찰하고 새로운 앞날을 다짐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을 찾기란 쉽지 않다. ‘글쓰기는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벗고, ‘내 손에 잡히는 글쓰기’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보자.

 

어떻게 시작할까

올 한 해는 누구에게나 ‘숙제’였다. 글쓰기는 나의 과거를 돌아보게 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도구다. <치유하는 글쓰기>의 저자인 박미라씨는 “글을 써보면 내 문제가 무엇인지 명료하게 풀린다”고 강조한다. 그는 “옛일 때문에 스스로 괴로움에 시달리는 ‘과다기억증’이 글쓰기로 치료되는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일상에서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기억들은 대개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 올해 들어 나를 불편하게 만든 감정들이 있었다면 그것에 대한 글을 써보자. 자신의 내면에 똬리를 튼 문제가 글을 통해 나오고, 언어화 작업을 거치면 해법이 보인다.

 

글쓰기는 머리와 가슴, 그리고 손이 움직여 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또 하나 필요한 것이 있다. ‘엉덩이 힘’이다. 대개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을라치면 갑작스레 먼지가 눈에 띄고, 냉장고를 청소하고 싶고, 책상 위 필기구를 정돈하고 싶어진다. 자신의 내면을 똑바로 응시하기 어렵고,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두려움의 무의식적 작용이다. 이럴 땐 책상 앞에서 눈을 감은 채 심호흡을 해본다. 그리고 한 해 동안 있었던 사건들을 떠올려 한해살이를 써보자. 1월부터 12월까지 있었던 사건들을 나열해보거나 계절별로 나에게 닥친 큰 시련에 대해 간략하게 써보는 것도 괜찮다. 일기 형식이 어렵다면 편지 형식으로 쓴다. 한 해 동안 지친 내 몸과 마음에, 그리고 나를 힘들게 한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다.

 

일단 쓰기 시작하면 말의 타래가 자연스럽게 풀릴 때가 많다. 마음을 편히 하고 펜이 저절로 움직여준다고 생각한다. 한 해의 중요한 사건과 그에 따른 마음의 높낮이를 ‘자동기술법’으로 적는다. 사무치게 미웠던 사람에 대한 감정, 나 자신에게 실망했던 사건, 하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았던 일, 내년엔 꼭 하고 싶은 계획 등 주제를 잡아도 좋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시인 기형도는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글을 쓰려고 하면 너무 많은 생각이 떠올라 나는 공포에 질리곤 한다.” 천재적 시인이 이럴진대, 일반인은 오죽하랴. 누구나 글을 쓰려면 갖가지 생각이 떠올라 혼돈을 겪을 때가 있다. 평소의 나는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기를 쓰면서 ‘자기검열’을 하기도 한다. 좀더 근사하게 자신을 포장하거나 억압하려고 하는 탓이다. 박씨는 “글을 쓰면서 ‘이건 솔직하지 않아’ 싶을 땐 괄호를 적극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나는 당근을 싫어한다”고 쓴 뒤, 문득 오이도 좋아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괄호 안에 ‘(그렇다고 꼭 당근만은 아니잖아)’라고 쓰는 식이다. 이렇게 적다 보면 다양한 나 자신을 인정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고통받은 일도 과감히 들춰보자. 고통은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는 데서 나온다. 글쓰기를 통해 여러 개의 나를 돌아보기, 거리두기, 인정하기 등의 과정을 거치면 진짜 옹골찬 내면의 힘을 가진 내 모습이 정체를 드러낸다. 몇 개의 내가 하나의 나에 합체된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올 한 해 힘겹게 살아온 나 자신을 떠나보낼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생긴다.

 

타인과 함께 써보자

중장기적으로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면 사이버 공간을 염두에 두자. 인터넷도 훌륭한 ‘고백의 공간’이 될 수 있다. 단, 희망과 상처가 공존하는 곳이니만큼, 뜻하지 않은 비난에 함께 대처할 수 있는 ‘동지’들이 버글거리는 곳을 찾는 것이 좋다. 얼굴 없는 타인의 비방을 걱정하지 않고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함께 애도하고 격려받을 수 있다. 타인들은 글쓴이를 위로해주고,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내면의 자신을 일깨워준다.

 

주부라면 검증된 주부 사이트를, 글쓰기를 배우고 싶다면 문학 동호회를 방문해보자. 여성주의 사이트 ‘언니네’(unninet.net)와 주부 커뮤니티 ‘줌마네’(zoomanet.co.kr)가 대표적이다. 회원들의 글쓰기를 책으로 펴내기도 한다. 줌마네의 ‘글쓰기로 돈버는 힘 기르기-자유기고가 과정’은 특히 인기다. 이 과정을 수료한 한 50대 주부는 글쓰기로 ‘내공’을 기른 뒤 중고등 검정고시를 거쳐 만학도로 대학에 진학했다. 불혹의 주부가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학위를 받기도 했고, 아이들에게 묶여 있던 ‘천생 엄마’가 후배들을 이끄는 웹진 편집장이자 글쓰기 강사가 되었다. 40대 후반에 춤을 추기 시작해 춤 세라피스트가 된 아줌마도 있다. 로리주희 줌마네 부대표는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원천이 책상머리에서 나온 셈”이라며 “자기성찰은 주변의 지지자들과 함께할수록 더욱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기왕 쓰는 것, 기획해보자

스스로 글쓰기를 기획해 인생의 전환을 이룬 사례도 있다. 이은하(42)씨는 평범하고 가난한 주부에서 고액연봉 세일즈우먼으로 성공한 드문 경우다. 어느 해, 자기의 인생을 돌아보고 싶었던 이씨는 만화가인 동생에게 이야기를 제공했고 두 사람은 <오마이뉴스>에 만화를 연재했다. 2006년 동생이 그림을 그리고 자신이 스토리를 쓴 책 <꽃분엄마 파이팅!>이 세상에 나왔다. 내년에 이씨는 비로소 무대에 올라 노래하는 사람이 되고자 했던 자신의 ‘꿈’을 이루게 됐다. 한 뮤지컬 오디션에 응시해 주인공으로 발탁된 것이다. 그는 “글을 쓰면서 내 인생을 정리한 것이 많은 힘이 되었다”며 “무턱대고 도전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고 말한다.

 

 

편지…유언장…다양한 글쓰기 형식

 

나에게 편지 쓰기 <안네의 일기>는 편지글 형식이다. 10대 소녀 안네 프랑크가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을 진심으로 지지해주고 협력해주는 일기장 친구가 있다고 가정한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는 글쓰기의 핵심은 얼마나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느냐다. 특히 내가 잃어버린 사람이나 사건에 대해 편지를 쓰는 것은 효과적이다. 상실을 겪었을 때 반드시 애도의 과정을 거쳐야 그에 대한 문제가 풀리기 때문이다. 지금 나의 고통을 담아 한 해 뒤의 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는 것도 좋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예약편지 서비스를 해주는 업체를 찾을 수 있다.

 

유언장 미리 쓰기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유명하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차일피일 미루다 자신의 인생 돌아보기를 놓친 이들은 얼마든지 있다. 꼭 죽음을 앞둔 사람만 유언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유언장을 미리 써본 이들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나 자신과 가족·지인들에 대한 애틋함으로 눈시울을 붉힌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유언장 서식을 내려받을 수 있다. 법적 효력은 없지만 유언장 서비스를 해주는 업체도 있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전할 글이나 사진·동영상, 계좌, 보험, 자산, 인터넷 아이디와 비밀번호 관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자서전 쓰기 유명인들만 자서전을 쓰는 것이 아니다. ‘내 인생을 글로 쓰면 책 한 권은 나올 것’이라는 얘기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행하는 이들이 있다. 자서전 쓰기를 도와주는 책들도 다양하게 출간돼 있다. 평생교육원, 종합복지관, 문화센터 등에 일반인 대상의 자서전 쓰기나 글쓰기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컴퓨터로 자서전을 작업하면서 사진, 그림들을 다양하게 첨부해놓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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