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통치와 언론악법, 국가 총체적 위기 부른다
[기고]언론장악 시도 중단해야
<미디어오늘>
1. 폭력적인 진실 탄압이 위기의 본질이다
우리나라 헌법의 최고 이념과 가치는 민주주의와 인권이다. 법이나 공권력의 정당성이 민주와 인권에서 비롯됨은 너무나 자명하다. 이 정당성을 상실한 법이나 공권력은 이미 폭력일 따름이다. 그러함에도 ‘법치’를 앞세운 야만적인 폭력사태가 횡행하는 작금의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고귀한 생명들이 희생된 용산 참사에서도 정부와 관계 당국은 사죄와 반성은커녕 오로지 철거민들에게 모든 잘못을 뒤집어씌우려는 데만 급급했다. 생존을 위해 절박하게 몸부림치다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 진압으로 소중한 생명을 잃어버린 철거민들에게 어찌 그럴 수 있는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정부 당국으로서 너무나도 무책임한 반국민적 도전의 행태다. 오죽하면 사태의 진상을 왜곡해 국민을 기만하는 범죄행위라는 규탄까지 나오겠는가.
▲ 민생민주국민회의 소속 단체 대표들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KBS를 비롯한 방송3사가 검찰의 경찰봐주기식 용산참사 수사를 무비판적으로 전달만하고 있다고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한마디로 총체적인 위기의 상황이다. 특히 경제위기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수출둔화, 경기침체로 대기업의 위축은 물론 중소기업 파산, 자영업 폐업, 고용축소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부동산 버블 붕괴의 위험성에다 금융불안 등의 요인들까지 겹쳐 실업대란의 위기 국면을 맞고 있다. 정치, 사회 부문에서도 혼란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걱정되는 것은 한반도 서해에서 높아지고 있는 남북한 간의 군사적 긴장이다. 북한은 남북한 사이의 정치, 군사적 합의사항들의 무효화 선언과 함께 남북기본합의서와 부속합의서의 서해 해상분계선에 관한 조항들을 폐기한다고 발표했다. 남한 당국은 북한의 북방한계선 침범시 단호한 대응을 강조했다. 자칫 무력충돌, 나아가서는 그 이상의 불행한 사태까지도 벌어질지 모를 심각한 위기다.
이명박 대통령은 적대적 대결로 북한을 자극하기만 한 끝에 파국적 전쟁 위기를 몰고 온 대북정책의 핵심 구상인 ‘비핵 개방 3000’을 철회하고, 한반도 평화를 모색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그는 이 구상의 입안자인 현인택 고려대 교수를 통일부 장관으로 내세움으로써 북한에 대한 적대적 대결 기조를 밀어붙이겠다는 입장을 노골적으로 보이고 있다. 적대적 대결로 조성된 안보위기를 빌미삼아 독재탄압을 자행한 과거 공안통치의 행태다. 위기의 끝이 보이지 않는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국민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총체적 위기의 상황에서 정부는 그야말로 책임을 통감해야 하지 않겠는가. 비판과 지혜를 겸허하게 받아들여 자기들의 잘못을 반성하고 정책적 오류를 바로잡아 위기를 해소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 진력해야 옳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와 정반대로 자신들의 잘못과 오류를 오히려 남의 탓으로 뒤집어씌우거나 왜곡하며, 국민들의 진실한 주장을 폭력으로 탄압, 은폐하려는 데만 골몰할 따름이다.
개탄할 노릇이다. 문제의 진실을 덮는다고 문제가 사라지거나 해결될 리가 없다. 호미로 막을 일이 가래로도 막지 못할 사태로 터지듯이, 위기가 걷잡을 수 없는 재앙으로 오히려 커지기만 할 것이다.
정부 당국은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를 가차 없이 구속했다. 표현의 자유를 말살하려는 반민주적 폭거다. 또한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정부가 시키는 대로 나팔수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금융연구원 위원장을 물러나게 했다. 국책연구소는 물론 민간연구소, 금융회사 등 민간부문까지 정부의 탄압과 강요는 확산되고 있다.
국민의 여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진실을 폭력으로 탄압하는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공안통치가 진정한 위기의 본질임을 거듭 강조한다. 이런 맥락에서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안통치 행태를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언론을 장악해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시키려는 정부의 ‘언론 학살’ 기도에 대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현 정권의 언론 장악으로 언론이 권력의 나팔수로 전락하게 된다면, 그들의 무능과 오만, 잘못을 감추려는 폭력이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고 거침없이 자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2. 언론 악법은 소수 특권층을 위한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2월 임시국회에서 언론 악법의 통과를 강행할 움직임이다. 한나라당은 “미디어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방송 분야만 당장 2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겨나고, 연관 산업의 생산유발효과도 수십조 원에 달한다”며 “언론 장악 운운은 시대착오적인 주장으로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누가 어떻게 언론을 장악할 수 있느냐”고 강조하고 있다. ‘언론 다양성의 신장’, ‘미디어 시장 활성화’, ‘콘텐츠 산업 육성’ 등의 달콤한 말로 입법 취지를 포장하고 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 언 론사유화저지 및 미디어 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미디어행동), 민생민주국민회의(준)는 6일 오전 조선일보사 앞에서 'MB악법’, 언론법 개악, 제야의 종소리 보도 등 조중동의 보도 행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가장 심각한 문제가 신문방송 겸영이다. 7개 언론악법에 따르면, 자산규모 10조 원 이상의 재벌과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에게 지상파 방송의 지분 20%까지, 10조 원 이하의 재벌들에게는 49%까지 지분을 허용하게 된다. 자산규모에 관계없이 종합편성채널은 30%까지, 보도전문채널은 100%까지 지분을 가질 수 있다. DTV전환 특별법의 경우, 지역방송에게 매우 불리한 독소조항 때문에 지역방송들은 생존의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신문법은 조중동을 위한 법이다. 독자 권익보호조항을 삭제하여 조중동이 무가지와 불법 경품으로 독자를 매수하고 지역신문의 유통을 방해해도 이를 제재할 아무런 방법이 없다. 조중동에게 영업행위의 자유를 노골적으로 무제한 보장해 주려는 것이다.
이런 언론악법이 통과되면, 그 결과가 조중동과 삼성 등 재벌의 언론 독과점과 지배로 나타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종합편성채널은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77%가 가입된 케이블, 위성방송, IPTV로 자동 송출되기 때문에, 사실상의 전국적인 지상파가 이들에게 넘어가게 된다. 만약 재벌과 조중동 같은 거대 신문들이 지상파 방송과 보도전문채널, 종합편성채널마저 갖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우리 사회의 여론은 이미 기존 신문시장의 70% 이상을 독과점해 절대적 여론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중동과 재벌의 절대적인 지배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1%의 상위 특권층을 위한 정보만이 범람하게 되고, 언론의 정의와 공익성은 사라질 것이다. 오죽하면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신문방송 겸영 등 그동안의 미국 언론정책에 반대했겠는가.
우선 지역방송이나 신문, 군소 언론들이 도산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게 뻔하다. 한나라당은 무슨 언론의 다양성이니 미디어 시장 활성화니 허황한 말로 국민을 기만하는가. 한나라당은 언론악법이 ‘지역언론을 살리는 법’이라고 억지 주장을 하지만, 정반대로 ‘지역언론 말살법’이다. 도산 위기에 놓일 지역언론에 조중동이나 재벌이 투자할 턱이 없기 때문이다.
광고시장도 신문권력과 방송권력을 동시에 갖게 될 조중동과 막강한 자본을 가진 재벌이 장악하게 될 것이다. 열악해진 광고시장에서 생존을 건 시청률경쟁이 벌어져 선정적인 저질 프로그램들이 판을 치게 될 것이다. 콘텐츠 산업 육성도 허울 좋은 구호에 불과하다.
정부와 여당은 건듯하면, 언론악법이 ‘경제 살리기 법’이라면서 ‘일자리 창출’의 산업논리를 앞세운다. 우리는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로 미디어 환경이 많이 달라져 이런 변화에 적절하게 대등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언론이 갖고 있는 막중한 중요성과 기능은 고려조차 하지 않은 채 불확실한 추정에 근거한 ‘일자리 창출’등의 산업논리에 언론을 종속시키려고만 하고 있다.
일자리와 생산유발 효과가 말 그대로 된다면 그나마 좋은 일이겠지만, 그조차도 빛좋은 개살구처럼 기대할 내용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방송, 신문법을 개정하면, ‘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는 근거없는 가설은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강력한 반론에 부딪쳐 설득력을 잃고 있다.
조·중·동에게 뉴스채널이나 종합편성채널을 주면, 몇 백 명 정도의 신규 고용 창출이 될지 모른다. 재벌과 거대 신문의 방송 진출이 ‘대한민국의 다음 세대를 먹여 살릴 미래 산업’이라지만, 지나치게 과장된 거짓 논리다. 국민을 기만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정보통신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법 개정안의 문제점이 심각하다. 언론의 자유와 인권에 치명적인 독소 조항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일상적으로 인터넷을 감시하다가 모욕죄로 간주되면 피해자의 고발이 없어도 곧바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천만 원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등 처벌 형량도 매우 무겁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삭제 요청을 했을 때 24시간 이내에 조치 통보를 해 주어야 한다.
인터넷 언론의 감시와 비판 기능을 크게 마비시킬 반민주적 언론 탄압법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법을 굳이 제정하지 않더라도 불법, 부당한 피해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는 법률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반민주적 악법을 굳이 제정하려는 저의가 무엇인가.
3. 제2의 ‘언론 학살’ 기도를 즉각 중단하라
우리는 지난날의 기나긴 군사독재 정권 아래서 여론의 다양성이 죽어버린 획일화된 언론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뼈저리게 체험했다. 권력과 자본의 부정부패와 비리를 파헤치는 언론의 비판적 기능이 완전히 사라지고 독재권력의 홍보기관으로 전락한 상태에서 기나긴 암흑시대가 얼마나 혹독한 것인지 우리 국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작금의 언론 상황 전개를 지켜보면서 지난 1980년의 언론 대학살을 떠올리게 된다. 1979년 12·12 군사쿠데타로 등장한 군부 독재권력이 여론 조작을 통한 공안통치를 위해 언론 장악을 목적으로 언론 대학살극을 벌였다. 독재권력은 1980년 광주민주항쟁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뒤 사실과 진실의 보도를 외치며 제작거부 운동을 벌인 언론인들을 대상으로 대량 강제해직 사태를 일으켰다. 이어 총칼로 신문과 방송사를 강탈하며 강제적인 언론 통폐합의 만행을 저질렀다.
▲ 월2일 오전 7시30분 서울 남대문로 YTN사옥 후문에서 출근하려는 구본홍 YTN 사장에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 조합원들의 성토가 쏟아졌다. ⓒ김수정 기자
언론 대학살을 자행한 독재권력은 언론사의 생사여탈권을 쥔 언론기본법을 제정하고, 언론제작에 사사건건 개입할 문화공보부 홍보조정실을 신설했다. 독재권력이 언론을 장악한 결과로 나타난 언론이 ‘보도지침 언론’이었다. 언론은 독재권력의 나팔수로 전락했다. 권력이 작곡한 악보대로 연주만 하는 과거 나치 독일의 ‘피아노 언론’처럼, 언론은 기사의 제목과 크기, 방향, 심지어 사진 설명에 이르기까지 권력의 지시대로 언론을 제작했다. 매일 밤 9시 ‘땡’ 하면 ‘전두환 000’으로 시작하는 ‘땡전뉴스’라는 희한한 방송뉴스가 날마다 나타났다.
현 정권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보도지침 언론’의 부활을 꾀하고 있는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과 특수 관계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언급한 ‘언론 빅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인가. 작금의 언론 상황 전개를 보면, 과거 1980년의 ‘언론 대학살’이 다시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현 정권은 모든 권력기관을 총동원하고 경찰까지 투입하며 정연주 KBS 사장을 쫓아냈다. 이병순 KBS ‘청부사장’은 취임하자마자 낙하산 사장에 반대한 기자나 PD를 산간벽지나 오지로 ‘유배’보냈다. 대선후보 특보를 지낸 구본홍 YTN 낙하산 사장은 6명의 해고를 포함해 33명을 중징계했다. 이병순 사장은 지난 1월 16일 공영방송 수호에 앞장선 언론인 3명을 파면, 해임했다. 언론 장악의 사전 정지작업인 ‘언론 학살’이 이미 시작된 것인가.
조중동과 재벌 중심의 ‘언론 빅뱅’은 지난 전두환 정권의 언론 통폐합 이상의 언론 조작과 폐해로 나타날 것이다. 사이버 모욕죄는 과거 언론의 비판기능을 마비시킨 언론기본법처럼 인터넷에 재갈을 물리는 반민주적 역할과 기능을 자행하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의 근본적 위기를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현 정권은 과거 ‘보도지침 언론’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땡전뉴스’식 편파방송 보도에 대한 범국민적 시청 거부와 KBS시청료 납부 거부운동의 저항과 응징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일반 시민들에게 요원의 불길처럼 번진 이 저항운동이 군사독재를 종식시킨 6월 민주항쟁의 시발이었음을 거듭 강조한다.
현 정권은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폭력적 언론 장악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언론 장악이 아니라 소통을 통해 일반 국민의 여론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고통과 희망을 나눔으로써 국난 극복의 힘을 모으는 데 진력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언론의 자유와 독립, 자율을 존중하여 역사 발전의 원동력인 진실의 힘이 발휘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언론 관계법의 개정은 국민적 토론과 이해의 과정을 거쳐 민주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언론은 민주주의의 본질이자 마지막 보루며 성역이다. 언론의 자유와 독립, 자율은 민주주의의 기본적 전제로서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사실과 진실은 언론의 자유와 독립, 자율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위기와 재앙, 정치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서도 현 정권의 언론 장악 기도를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정상모 전 MBC 논설위원, 평화민족문화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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