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오늘의 책>
세상을 놀라게 한 권이 1859년 11월 24일 출간되었다. 바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다. 이 책에서 그는 "호수에서 헤엄치며 입으로 곤충을 잡아먹는 곰이 거의 고래 같은 동물로 진화할 수도 있다."고 당시로서는 코페르니쿠스적 사고를 펼쳤다. 이를 두고 당대의 학자들이 "원숭이가 인간의 조상이라며" 다윈을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진화론이라는 대담한 학문은 이렇게 시작되었지만 오늘날 우리는 다윈 혁명을 여전히 진리를 받아들이고 있다.
올해 다윈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여 다윈의 진면목에 대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책 중에서
먼저 <종의 기원>에서는 진화론 대 창조론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풀어 쓰고 있다. 다윈의 주장을 빌리면 진화론은 모든 현생종이 하나의 조상에서 유래된 것이다. 반면에 창조론은 개별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연선택과 지적 설계라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가령, 생물체를 분류한다면 진화론은 가지치기 구조이며 창조론은 화학의 주기율표와 같다. 가지치기 구조는 계층적인데 고양이나 원숭이와 같은 작은 집단은 포유동물이라는 큰 집단에 포함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인간의 유래>에서는 이타주의와 문명 그리고 성 선택에 대해 살피고 있다. 이타주의는 적자생존이라는 자연선택에 의하면 오히려 역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자기 희생을 감수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서 일찍 죽을 확률이 높으며 후손을 남기지 않게 된다. 그런데도 이타주의가 자연선택이라는 것을 거듭 주장하는 데 있어 세 가지 가능성 때문이다. 첫 번째가 호혜주의이며 두 번째는 칭찬과 비난이라는 문화적 요인이다. 세 번째는 집단 선택이다. 이러한 이타주의는 문명화된 현실에서 자연선택을 느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고귀한 부분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성 선택에서 다윈은 이전과는 다르게 이차성징에 있어 암컷이 수컷을 선택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에서는 인간과 유인원의 안면 근육은 동일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곧 인간과 동물들 사이의 감정표현에 있어 진화적 연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다윈은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즉 실용적인 습성, 상반의 원리, 신경계의 직접작용이다.
이렇듯 이 책의 저자는 다윈 혁명에 대한 논란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다윈의 진화론에서 벗어나 좀 더 보편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다윈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틀에서 다윈 혁명을 파악하는데 큰 의미가 있다. 예컨대 21세기 진화론은 다윈의 자연선택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현실이다. 이유인즉 21세기 진화론은 DNA 변화에 따른 무작위 진화와 병행해야 한다. 그래야 다윈 혁명이 21세기에도 유효하게 진화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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