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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탄생/번역출판

읽고쓰기---------/좋은책읽기

by 자청비 2009. 2. 14.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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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제대로 하니 우리말에 눈 트이더라
외국어 논리 숭상 풍토 지나쳐
우리말 새 개념 만들기 공포증
지나친 직역에 번역 질 떨어져
한국어 개성 살린 능동적 번역을
   한겨레 
» 〈번역의 탄생〉〈번역출판〉

〈번역의 탄생〉
이희재 지음/교양인

 

〈번역출판〉
강주헌 외 지음/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우리나라 출판물 가운데 약 1/3이 번역서라고 한다. 세계 1위다. 인문사회과학서의 약 2/3, 해마다 베스트셀러 상위에 오르는 책의 절반 가까이가 번역서라니, 독자의 ‘체감 번역서 비중’은 더욱 뜨거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많은 번역서의 번역 상태는 어떨까? “외국 문학 전공 교수들이 보내온 원고를 원서와 대조하면서 글을 다듬다 보니 책과 활자에 대한 경외감과 환상이 많이 무너졌다.” <번역의 탄생>의 지은이 이희재씨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할 무렵의 경험담이다. 번역서에 불신이 생긴 이씨는 책을 멀리하고 영어는 물론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익혔다. <번역의 탄생>은 그 뒤 전문 번역가가 된 이씨가 20년 넘게 현장에서 여러 책을 옮기며 뽑아낸 번역 원칙, 번역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번역을 하면서 나는 한국어에 눈떴다. 작가가 되어 한국어 자체만을 놓고 씨름했더라면 한국어의 개성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어, 일본어, 독일어 같은 외국어와 한국어를 넘나들다 보니 한국어의 남다른 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번역 제대로 하니 우리말에 눈 트이더라.

머리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책은 ‘번역의 기술’을 가르쳐주는 단순한 안내서가 아니다. 다른 언어와의 관계 속에서 더욱 도드라지는 우리말의 개성을 살리면서 외국어의 겉껍데기가 아닌 속살을 옮기는 번역을 하자는 주장을 담았다. 책은 이제까지 “한국어의 논리보다는 외국어의 논리를 너무 숭상하는 풍토” 가 팽배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19세기 말부터 일본을 거쳐 서양 문화를 받아들인 탓에 근대어의 대부분이 일본에서 건너왔고, 영한사전도 영일사전에 기대어 만들었다. 또 “영어에 대한 경외감이 너무 심해서인지” 의역보다 직역을 중시했다. “스스로 제 갈 길을 헤쳐 나가고 사유하는 데 서투”르고, “제 손으로 새 말을 만들기를 두려워”하는 한국의 지식인들은 ‘어른애’와 다름없었고, 이 때문에 번역의 질은 형편없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지은이는 출발어(원문)에 얽매이는 직역을 ‘들이밀기’, 원문을 자연스러운 도착어(우리말)로 다듬는 의역을 ‘길들이기’라 이르고, 자신은 ‘길들이기’를 택했다고 밝힌다. ‘뜨거운 감자’,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직역 덕분에 우리말을 살찌운 경우도 많았지만, 이제 지나친 직역에서 벗어나 한쪽으로 치우친 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말이기에 무조건 살려야 한다는 민족주의적 당위가 아니다. “번역은 저자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를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번역의 본질을 살리자는 소박한 이유다. 삶에 녹아들어 있는 토박이말, 우리말의 논리와 개성을 살린 번역이 독자들 머리에도 쏙 들어온다.

 

한글은 정적인 영어보다 변화하는 상황을 구체적이고 개별적이며 동적으로 나타낸다는 특성을 지닌다. 명사와 형용사가 발달한 영어와 달리 부사와 접사, 어미가 발달했고, 높임말과 낮춤말의 뉘앙스도 다양하다. 지은이는 다양한 번역 사례를 보여주면서 이러한 한국어의 개성을 살리는 번역 원칙을 제시한다. 다양한 원칙들을 ‘살빼기’, ‘좁히기’, ‘덧붙이기’, ‘짝짓기’, ‘뒤집기’ 등 우리말로 개념화해 한눈에 들어오게 정리했다. 번역은 외국어와 한국어를 단순히 ‘짝짓기’하는 게 아니기에, 필요하다면 말을 만들어 외국어와 한국어 사이에 이제껏 뚫리지 않은 무궁무진한 회로를 뚫는 것도 번역가의 몫이다. 이런 번역이라야 단순히 번역의 차원을 넘어 문화·경제·정치·역사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처한 현실을 우리 눈으로 능동적으로 분석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우리말의 쓰임새를 20년 넘게 고민해 온 필자답게 존대어가 발달한 한국어 입말의 개성을 살려 높임말로 풀어간 서술투가 독특하다. 자신의 번역 철학을 한꺼번에 ‘들이밀기’하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감칠맛 나게 실례들 사이에 끼워넣어 독자를 ‘길들이기’하는 서술 방식도 인상적이다.

 

<번역의 탄생>이 현장 번역가 한 명의 생각의 결정을 진득하게 경청하는 책이라면, 비슷한 시기에 나란히 출간된 <번역출판>은 비슷한 내용을 번역가, 편집자, 출판기획자, 해외저작권 에이전시 대표 등 번역출판 현장의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듣는 책이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제대로 된 번역비평’을 내걸고 지난해 2월 창간한 계간 <번역출판>에 실었던 글을 새 글과 함께 묶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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