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오바마의 짐과 과제
백악관에 들어간 버락 오바마는 ‘흑인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라는 영예에 도취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그는 1981년 1월부터 1989년 1월까지 8년 동안 로널드 레이건이, 그 뒤 4년 동안 아버지 부시가, 2001년 1월부터 8년 동안 아들 부시와 ‘네오콘’, 그리고 부도덕한 자본가들과 보수세력이 불가사리처럼 분탕질을 친 미국, 로마제국처럼 무너질는지도 모른다는 미국을 살려야 하는 짐을 안고 있다.
이것은 오바마와 민주당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짐이다. 거기에는 빌 클린턴의 대통령 재임기간(1993년 1월~2001년 1월)에 (공화당 정권보다 정도는 덜하더라도) 빚어진 정치, 경제, 사회적 모순들도 포함되어 있다.
오바마가 어깨에 걸머진 짐 가운데 가장 무거운 것은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미국의 경제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민오락’이라는 고스톱에 비유하자면, 오바마는 부시 패거리들이 ‘노세, 노세’를 외치면서 즐기다가 수백점이나 잃어버린 고스톱 판을 “이제, 당신이 해봐”라는 말과 함께 물려받은 셈이라고나 할까?
1. ‘문제는 경제야, 버락’
1992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의 클린턴 후보가 공화당의 ‘아버지 부시’에 맞서 내세운 대표적 구호는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economy, stupid)였다. 이 촌철살인의 세 마디는 클린턴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바마는 당선이 확정된 뒤 취임식날까지 밤마다 ‘문제는 경제야, 버락’이라고 자신에게 잠꼬대를 하지 않았을까?
1930년대의 대공황 이래 최악이라는 미국의 경제는 2008년 대통령선거에서 버락 오바마가 공화당 후보를 누르는 데 크게 기여했다. 2007년 4월에 시작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비우량주택 담보대출) 파문으로 붕괴의 초기 단계로 들어선 미국 경제는 초대형 투자회사인 리먼브러더스가 2008년 9월 14일(오바마는 6월 4일 민주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되었음) 법원에 파산신청을 한 것을 결정적 계기로 수습이 불가능한 듯한 위기에 빠졌다. 대통령 예비선거에서 가장 큰 쟁점이었던 ‘이라크 파병 미군 철수’는 경제의 뒷전으로 밀리고, ‘누가 미국 경제를 살리기에 가장 적임인가’가 대선의 초점이 되었다. 부시와 공화당을 경제파탄의 주범으로 본 다수 유권자들은 오바마를 지지했다.
부시의 감세정책은 엄청난 빈부격차와 재정적자를
조지 부시 2세의 임기 8년 동안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자 나라’라는 허울 좋은 이름뿐, 국가재정과 경기가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부시가 제43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두 달만인 2001년 3월에 정보기술(IT) 거품이 꺼지면서 시작된 경기 침체는‘100년만에 최악’이라는 경제 위기를 후임자에게 떠넘겼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게서 2,360억 달러의 흑자재정을 물려받은 부시는 2008년 기준으로 4,550억 달러의 재정적자를 기록했다. 무려 7,000억 달러 가까이 후퇴를 한 것이다.‘부시의 유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아서 2009년 재정적자가 1조 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오바마시대와 한국 10 (0) | 2009.02.26 |
---|---|
오바마시대와 한국 9 (0) | 2009.02.21 |
오바마시대와 한국 7 (0) | 2009.02.16 |
'충분한 민주주의'이뤘다는 주장은 반민주적 (0) | 2009.02.14 |
행복은 지금 여기에 (0) | 2009.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