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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의 촌철살인

세상보기---------/사람 사는 세상

by 자청비 2009. 3. 16.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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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의 촌철살인, 역시 국민 예능답다! 
자막을 활용한 새로운 방식의 풍자 개그를 선보이는 <무한도전> 

오마이뉴스
 

우리나라 언론은 '수식어' 붙이기를 좋아한다. 만들기도 참 잘 만들고, 툭하면 가져다 붙인다. 숱한 수식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아마 '국민'이란 타이틀일 것이다. '국민 여동생' 김연아, '국민 배우' 안성기, '국민 가수' 조용필, 그렇다면 '국민 예능'은? 조금씩 의견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아마 많은 사람들은 MBC <무한도전>을 말하지 않을까?

<무한도전>이 그냥 재미있는 예능을 뛰어넘어 '국민'이란 수식어를 달 수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를 꼽자면 단연 '풍자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정치·사회 권력의 부조리를 풍자하여 시청자에게 웃음을 안겨주는 코미디가 사라진 요즘, <무한도전>의 정치·사회 권력에 대한 촌철살인의 풍자는 우리에게 통쾌함과 웃음을 선사한다.

그렇다면 그 풍자는 누가 하는가? 국민 MC 유재석이 할까? 만년 2인자 박명수나 돌+아이 노홍철, 식신 정준하가 할까? 아니다. <무한도전>에서 풍자는 출연진의 몫이 아니다. 바로 제2의 웃음 포인트, '자막'이 풍자에 쓰인다. 자막은 제작진이 만드는 것이니, 결국 <무한도전>의 풍자는 전적으로 제작진의 주관이 깃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무한도전>을 즐겨 보는 시청자들은 다들 아는 사실이지만, 이 자막이야말로 <무한도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이다. <무한도전>의 자막은 단순히 출연자들이 뱉는 말을 글로 옮겨 전달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적절한 상황 설명과 새로운 설정으로 시청자에게 큰 웃음을 준다.

 

적절한 정치·사회 풍자로 큰 웃음 준다

  
ⓒ MBC 화면캡쳐  무한도전 
 

ⓒ MBC 화면캡쳐  무한도전 

특히 지난 14일 방영된 '육남매'편에서 <무한도전>의 자막은 그 어느 때보다 빛났다. 특유의 감각으로 출연진들의 개그를 한껏 살리는가 하면, 적절한 정치·사회 풍자로 시청자에게 큰 웃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상황은 이랬다. <무한도전>의 여섯 멤버들이 흔히 '제로'라고 불리는 게임을 하는 상황, 게임에서 진 사람은 이긴 사람에게 손목을 맞는 벌칙을 받아야 한다. 노홍철이 게임에서 이겨 다른 멤버들의 손목을 때릴 기회를 잡았고, 박명수를 때리려는 찰나, 유재석이 옆에서 "맞는 순간 소리 지르면 한 대 더 맞는 거야!"하면서 급하게 '룰'을 추가한다.

처음부터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게임의 룰을 잘 모르고 시작했던 박명수는 멍하니 있다 결국 한 대 맞고 비명을 내질렀고, 당연히 한 대 더 맞아야 했다. '졸속 제정 법률의 피해자!'라는 자막은 그런 박명수를 지칭함과 동시에 지난 2월 25일에 벌어졌던 한나라당의 미디어관련법 날치기 상정을 풍자한 것이다.

여야 합의 없이 한나라당 소속 고흥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이하 문방위) 위원장이 미디어관련법을 국회 문방위에 기습 상정한 이 사건을 두고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는 파업을 결정하고 조합원들이 나서서 강도 높은 비판의 날을 세웠다. 여기서 급하게 룰을 추가한 유재석은 한나라당을 상징하고, 그 룰에 피해를 본 박명수는 MBC를 상징한다.

단 한 줄 자막으로 세태 풍자, '까불면 더 세게... 진압의 법칙!'

 

ⓒ MBC 화면캡쳐  무한도전 
 

'그래도 법집행은 엄격히!'와 '다시 말하지만 그래도 법집행은 엄정하게!', 그리고 '법치 만세'는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부쩍 강조된 법치주의를 풍자한다. 지난해 촛불정국 이후 정권은 틈만 나면 '법치국가'와 '엄정한 대응', 그리고 '법질서 확립'을 외쳤다. 최근 들어 용산참사, 언론법 날치기 상정 등으로 국민들의 반감이 높아져 제2의 촛불정국이 도래하지 않을까 하는 위기의식 속에 이러한 법치주의 발언은 더욱 늘어났다.

특히 며칠 전 용산참사 추모집회에서 경찰관들이 시위대에게 폭행당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정부와 여당, 보수단체 등에서는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공권력에 대한 조롱의 정도가 한계를 넘어섰다"며 사법부의 엄정 대처를 강조했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과 강희락 신임 경찰청장 역시 엄정한 법집행 강조를 언급한 바 있다.

 

ⓒ MBC 화면캡쳐  무한도전 
 
 

 

ⓒ MBC 화면캡쳐  무한도전 
 

'까불면 더 세게… 진압의 법칙!' 역시 강조된 법치주의와 일맥상통한다. 용산참사에서 확인되었듯이 공권력의 진압 수위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촛불집회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에도 공권력은 경찰특공대를 투입하고, 색소분사기를 발사해 채증을 하고, 사복체포조를 투입해 마구잡이로 시민들을 연행했었다. <무한도전>은 단 한 줄의 자막을 통해 이런 세태를 풍자한 것이다.

'독재시절보다 더하다'는 말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는 시기이다. 과거 그 힘든 시절, 우리를 웃게 만들었던 고(故) 김형곤과 같은 코미디언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정치·사회 권력에 대한 풍자 개그도 찾아보기 어렵다. 몇몇 코미디언들은 시사 개그의 어려움을 이유로 들며 난색을 표한다. 하 수상한 정국 아래에서 이제 유일하게 웃을 수 있는 풍자 개그는 <무한도전>의 자막뿐이다. 앞으로도 촌철살인의 자막을 계속해서 볼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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