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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시대와 한국 13

세상보기---------/사람 사는 세상

by 자청비 2009. 3. 16.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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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기독교 보수파라는 철옹성


우리나라에서 전철을 타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만나는 ‘전도사들’이 있다. 전동차의 맨 앞칸부터 뒤칸까지 차례로 걸어가면서 “예수를 믿으세요, 그러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집니다”라고 외치거나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고 영생을 얻는다”고 말하는 이들 말이다. 나는 그들이 기독교의 어떤 종파에 속하는지 알 수 없다. 내가 본 그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나는 어떤 교회에서 나온 누구인데 내 말을 듣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질문을 하라”고 말하지 않고 전철 승객들에게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상대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일방적 전도(?)


그들의 특징은 여러 가지이다. 시간에 쫓겨서 그런지 말을 듣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지 않고 허공에 대고 하듯이 어휘들을 쏘아댄다. 그 중 심한 사람은 아예 전철 안의 ‘청중’을 위협한다. “지금 당장 예수를 믿지 않으면 ‘불의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승객들은 대체로 무덤덤하다. 그런 광경을 하도 많이 보아서일까? 나는 어떤 남자 노인이 벌컥 화를 내며 소리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당신이나 예수 믿고 천당 가지 왜 시끄럽게 떠들어요?” 그 말을 들은 ‘전도사’는 그를 잠깐 노려보더니 아무 말도 않고 다음 칸으로 넘어갔다.


여기서 전도사라는 말을 쓰면서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많다. 그들은 도대체 기독교의 어느 교단에서 어떤 자격을 주어 내보낸 이들인가? 그들은 유급인가, 자원봉사자인가? 선교의 효율을 위해서라도 전동차 한 칸에서 시간을 넉넉히 갖고 승객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상대로 기독교의 교리를 전하면서 예수가 가르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진리를 이웃과 함께 나누자고 해야 할 텐데 왜 그리도 섬뜩한 말들을  일방적으로 외치고는 사라지는가?


2008년 5월 초부터 한 여름까지, 서울 광화문 네거리 부근과 시청 앞 광장에서 벌어진 촛불집회에 나타난 일부 기독교인들이 쓴 모자나 등에 멘 글자판에 적힌 내용은 너무나 자극적이었다. ‘예수 천국/불신 지옥’이라는 여덟 글자가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뜻임은 알겠는데, 왜 그렇다는 설명은 없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것을 읽은 사람들은 ‘아, 나는 예수를 믿지 않으니 꼼짝없이 지옥에 가겠구나’라고 느끼지 않았을까? 그리고 불교나 다른 종교의 신도들은 어떤 심경이었을까?


‘기독교 보수파’라 불리는 개신교의 일파


나는 전동차 안에서 전도하는 사람들 중에서 천주교의 신부나 수녀, 불교의 승려나 보살, 원불교의 교무나 정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어째서 유독 ‘개신교’의 일부 교직자 아니면 신자들만이 자기들의 신앙과 신념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일에 그렇게 열성적일까? 이런 점에서 우리는 그들을 기독교의 특이한 보수파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버락 오바마는 2007년 2월 10일 대통령 출마를 선언한 이래, 아니 멀리는 일리노이주에서 의원 생활을 하던 때부터 기독교 보수파에게 심하게 시달림을 당했다. 특히 오바마가 일리노이주 연방 상원의원 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뒤 그들은 동성애와 임신중절을 비롯해서 많은 쟁점들에 관해 자기들의 반대편에 서 있던 오바마를 끈질기게 공격했다.


진보적인 기독교도들의 반대편에 서 있다는 의미에서 ‘기독교 우파’라고도 불리는 그들은 1990년대부터 미국의 권력 구도를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레이건 행정부 시절(1981~88년)에는 정치적 영향력이 그다지 크지 않던 기독교 보수파는 1992년 대선에서 빌 클린턴이 승리해서 진취적인 정책을 펼치기 시작하자 크게 불만을 품게 되었다. 이런 시대적 기류를 타고 역사학 교수 출신인 공화당의 뉴트 깅그리치(Newt Gingrich)는 “민주당이 의회를 지배하면서 행정부와 유착해서 비대한 관료주의를 굳히고 세금을 낭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기독교 보수파를 중심으로 공화당 지지자들은 물론이고 민주당의 온건보수층까지 끌어들이는 ‘쐐기와 자석’전략을 구사한다. 그것이 성공을 거두어, 1994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하원에서 58석, 상원에서 8석을 늘려 ‘여소야대’를 이룬다. 그는 그런 공로로 명실상부한 공화당 지도자가 되어 1995년부터 4년 동안 하원의장으로 일한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민주당의 40년 하원 지배를 끝장내는 ‘공화당 혁명’을 이끌었다는 이유로 1995년에 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뉴트 깅그리치의 ‘혁명’이후 1998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상하원에서 다수파가 되지는 못했지만 크게 약진했다. 그 선거에서 승자는 클린턴이었고 패배자는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정계 은퇴를 발표한 깅그리치와 클린턴 대통령의 탄핵에 강경한 태도를 취했던 공화당 지도부 및 기독교 우파였다. 당시 기독교 우파는 그들이 그토록 싫어했던 1960년대 반문화와 마약, 성적 방종의 상징적 인물인 클린턴이 대통령의 지위에 있다는 것에 심한 혐오감을 느꼈다. 그들은 르윈스키 사건을 통해 탄핵을 추진했으나 낙태의사에 대한 살해 등으로 대변되는 우파의 과격하고 파괴적인 행동에 위기감을 느낀 자유주의 세력의 단결과 온건보수세력의 이탈, 언론의 비우호적 태도로 선거에서 패하고 탄핵도 실패하고 말았다. (<송광익의 앞산자락>, ‘부시는 기독교 우파와 시오니즘의 포로(2)’에서)


‘기독교 보수파’, 부시의 집권에 결정적 기여


2000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미국의 기독교 보수파는 그야말로 ‘총력전’을 준비한다. 빌 클린턴의 재임기간을 ‘잃어버린 8년’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보수파는 애초에 아들 부시를 두고 망설였다고 한다. 청년 시절 사생활이 문란했다는 평가와 함께 기독교 보수파의 ‘복음주의적’ 또는 ‘근본보주의적’ 교리나 정치적 이념에 대한 그의 견해가 모호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시는 종교적, 정치적으로 단호한 보수적 견해를 밝힘으로써 기독교 보수파와 전통적 공화당 지지세력의 지지를 받아 민주당의 앨 고어에 맞설 공화당 후보로 선택될 수 있었다.


공화당과 기독교 보수파는 2000년 대선이 다가오기 오래 전부터 승리를 위한 프로그램들을 착착 진행해 왔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언론, 특히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한 교묘한 선거운동이었다.


보수파에는 전국적인 ‘스타 전도사들’이 많았다. 그 전도사단의 얼굴은 팻 로버트슨(Pat Robertson)과 빌리 팔웰(Billy Falwell)이었다. 미국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텔레비전전도사(televangelist)라고 할 수 있는 로버트슨은 1986년에 공화당 대통령후보 지명을 받으려다가 좌절한 ‘정치적 목사’로서, 기독교방송네트워크(CBN)의 창설자였고, 국제가족엔터테인먼트회사를 설립한 사업가이기도 했다. 역시 텔레비전전도사인 팔웰은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에 있는 대형 침례교회의 목사였다. 이 두 사람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를 포함해서 보수파들이 총동원되어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또는 교회와 대중집회장의 ‘설교’를 통해 민주당과 여러 해 동안 클린턴을 공격해 댔으니 민주당의 상처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치러진 선거전에서 부시와 고어가 박빙의 승부를 벌인 끝에, 고어가 유권자 총득표 수에서는 앞서고도, 플로리다주의 ‘개표 부정’의혹 논란 끝에 지기까지 기독교 보수파가 몰아준 표가 결정적인 작용을 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대통령이 된 부시는 기독교 보수파와 대기업들, 부유한 특권층, 군수산업체들, 진보에 거부감을 보이는 다수 농어민들의 지지에 부응하듯이 대대적으로 세금을 줄여주고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했다. 그리고 9· 11테러를 빌미로 북한과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이라고 공격하면서 이라크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쪽으로 치달았다.


2004년 대선은 부시의 연임을 위해 다시 총동원 태세에 들어간 보수세력과 존 케리를 후보로 내세운 민주당 지지자들의 대결이었다. 2003년 3월 20일에 이라크를 침공하기 시작해서 확전 일로로 걸어간 부시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렸으나 이번에도 기독교 보수파의 열성적인 지지에 힘입어 재선에 성공했다. CNN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매주 교회에 가는 개신교 신자’의 68%가 부시에게 투표한 반면 31%가 존 케리에게 표를 준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은 2008년 대선을 ‘잃어버린 8년’을 되찾을 결정적인 계기로 보고, 비틀거리는 부시와 공화당을 겨냥해서 총력전을 시작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나간 미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명분도 없이 목숨을 잃고 경제가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2008년 가을이라는 절호의 기회에 보수파가 이미 두 차례나 성공한 ‘선거전략’에 맞설 방책을 찾지 못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었다.


오바마, 기독교에 진중하면서도 온건한 자세로 접근


예비선거 초기의 예상을 뒤엎고 힐러리 클리턴을 여유있게 앞서면서 민주당 후보가 된 버락 오바마는 기독교 유권자들에 아주 신중하게 접근했다. 그는 일찍이 연방 상원의원 시절에 미국의 기독교를 이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미국인이 종교적인 국민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 중 95%가 신을 믿고 3분의 2 이상이 교회에 다니며 37%는 독실한 기독교인을 자처하고 이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은 진화론보다 창조론을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교가 예배 장소에 국한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종말론을 내세우는 책이 나오면 수백만 권씩 팔리는가 하면, 기독교 음악이 빌보드 차트에 오르내리며, 모든 대도시 교외 지역에는 매일같이 대형 교회(megachurch)가 새로 출현해 탁아 시설부터 싱글 친목   회와 요가, 필라테스 강습에 이르기까지 온갖 서비스를 제공한다. (<담대한 희망>, 285~6쪽)


이렇게 ‘신을 믿는 미국인 95%’를 절대적 존재로 의식하고 예비선거 유세를 해야 했던 오바마에게 폭탄이 터졌다. 그가 ‘신앙의 사부’로 섬겨온 제레미아 라이트(Jeremiah Wright) 목사의 ‘빌어먹을 미국’(God damn America) 발언이 바로 그것이었다. 라이트는 시카고에서 8,500여 명의 신자가 다니는 대형 교회인 트리니티 연합그리스도 교회의 목사였다가 명예목사로 물러나 있었는데 오바마와 힐러리를 ‘정밀 검증’하던 ABC 뉴스가 라이트의 설교들을 뒤지다가 그 과격한 욕설을 집어 낸 것이다. 라이트는 오바마를 위해 변명을 하다가 또 실수를 저질렀다. 자칫하면 예비선거 과정에서 물러나야 할지도 모르게 된 오바마는 라이트의 언행에 ‘격분하고’ ‘비통한 심경’이라고 공개 발언을 한 뒤 그 교회를 탈퇴했다.


그 위기를 가까스로 넘긴 뒤 대통령후보로 확정된 오바마는 2008년 8월 16일 캘리포니아주의 한 도시에서 열린 ‘신앙 포럼’에 공화당의 존 매케인과 함께 불려나갔다. 거기서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원죄를 위해 죽으셨고, 나는 그를 통해 속죄를 받았습니다.”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이나 근본주의자들이 늘 하는 말을 따라서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바마와 매케인은 그날 CNN을 통해 생중계된 포럼에서 낙태(임시중절)를 비롯한 민감한 사회적 쟁점들에 관해 뚜렷한 견해 차이를 보였다. 기독교 보수파의 핵심적 논제인 낙태와 관련해서 매케인은 임신 초기의 중절부터 반대한다고 말했으나 오바마는 그의 지론인 ‘필요한 경우의 낙태’에 찬성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두 후보의 공통점은 결혼을 두 남녀의 결합으로 규정하면서 동성결혼에 반대한 것이었다. 오바마는 포럼을 보수주의적 고백으로 시작했으나 정작 토론에서는 진보적 견해와 중도적 의견을 적절히 조화시킴으로써 그 모임을 주관한 보수파의 릭 워런 목사한테서 “오바마와 매케인 두 후보가 미국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해 왔으며, 모두 애국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통령선거라는 중차대한 정치적 결전장에서 오바마가 기독교에 진중하면서도 온건한 자세로 접근한 것이 매케인 진영이 매달린 네거티브 공세를 이겨내고 압승하도록 한 동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바마, 개신교 표 45%, 천주교 표 54% 얻어 성공


2008년 11월 대선 결과를 분석해 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오바마가 흑인 표의 95%를 차지한 것은 그렇다 치고, 여성 표의 56%를 가져간 것도 예상된 일이었다. 그런데 두드러진 현상은 레이건과 부시 부자가 공화당 후보로 나서서 당선된 1980, 1984, 1988, 2000, 2004년에 민주당 후보들이 차지했던 기독교 신자들의 표에 비해 오바마의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그는 개신교의 표 45%(매케인은 54%), 천주교의 표 54%를 받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유태교 표에서 오바마가 78 대 21로 매케인을 압도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지표들로 판단하면 미국 기독교 보수파의 정치적 철옹성은 2008년 대선에서 일단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진취적 성향이 강한 오바마가 재임 중 기독교 보수파의 반격을 계속 막아 낼 수 있을지는 그와 민주당이 정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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