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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 교수의 세상보기

세상보기---------/조리혹은부조리

by 자청비 2009. 7. 29.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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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는 죽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아
바보 노무현, 수만마리 부엉이로 비상할 것" 
[포스트 노무현-마지막회 ①]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인터뷰 

 

<오마이뉴스> 


  
  

▲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최고 지도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5천년 역사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개천에서 난 용입니다. 광주 민주화로 대표됐던 그 세대의 역사가 끝난 겁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돌아가신 곳이 부엉이 바위예요. 지혜를 상징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모든 것을 보고 와서 여신에게 얘기를 해줍니다.

 

이제는 용 한 마리가 승천하고 부엉이 시대가 열리는 것이 아닐까요. 수백, 수천 마리의 부엉이 떼가 다시 날아오를 것입니다. 용이 죽은 것은 슬픈 일이지만 용이 죽었기 때문에 부활할 수 있는 거죠. 촛불로 깨어 있는 부엉이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어서 슬퍼하는 부엉이들 말입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상징적으로 표현한 '포스트 노무현 시대'의 상이다.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역사학자인 그의 눈에는 분명히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꽂혀 있다.

 

따라서 그는 진보진영을 향해서도 "슬퍼하는 부엉이에게 어떻게 말을 걸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수많은 부엉이한테 진보진영의 언어를 배우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냐"는 것이다. 결국 진보진영은 부엉이들의 울음 소리를 익혀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진보진영은 이제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

 

 

진보 진영과 노무현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 있는 평화박물관에서 만난 그는 최근 한 토론회에 나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사람들이 집단 죄의식에 걸렸다고 분석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이것이 '포스트 노무현 시대'의 출발선이다.

 

"저도 집단 죄의식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많이 비판했고 여전히 그 비판의 근거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안타깝고 슬픕니다. 저런 각오로 재임 중에 역할을 했었으면 하는 안타까움도 있고, 진보의 가치를 완전히 내버렸다고 한때 의심했던 미안함도 있죠."

 

이라크 파병, 한미 FTA, 대추리…. 진보진영이 참여정부를 비판했던 상징적인 사건들이다. 그는 이에 대한 진보진영의 비판 역시 단순한 '의심'이었다고 뒤늦게 판단하고 있는 것일까?

 

"제가 평화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파병문제에 특히 더 민감해요. 이 몸으로 버스 위에 기어 올라가서 연설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었겠다는 마음도 들어요.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하면 현실의 정치 문제에서 파병하지 못 한다고 잘라 말하기 어려운 상황일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대추리나 한미FTA, 이건 아니지 않나요. 특히 한미FTA나 노동문제에서 노무현 정권이 신자유주의를 채택한 것은 맞지 않습니다. 때론 노무현이기 때문에 거기까지만 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어떻게 노무현이 그럴 수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진보 진영의 노무현 비판은 이유 있는 비판이었어요. 물론 과도한 부분도 있었지만."

 

한 교수는 이어 "진보진영은 노 전 대통령에게 너그럽지 못했지만, 노 전 대통령도 진보와의 소통에 문제가 많았다"면서 "한미FTA 같은 경우 진보 진영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고 대연정은 청와대 안의 참모들조차도 반대가 많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미숙한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 전체가 잘못 생각한 것도 있는데, 우리가 이룬 민주화의 제도에 대해서 과대평가한 것과 그 내용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한 측면"이라면서 "제일 가슴 아픈 것 중에 하나는, 그리고 진보 진영이 가장 잘못한 점 중에 하나는 우리가 이룬 민주화의 좋은 점을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계속 전진만 외쳤어요, 지금 정신없이 뺏기니까 이제 알게 된 거죠"라고 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애증을 갖고 있는 진보진영과 일반 대중들의 정서에는 차이점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진보 진영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해 화도 내고 비판도 했지만 일반 대중은 그런 사람이 대통령을 할 수 있는 세상이 참 좋았던 것"이라며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세상, 사실 대한민국 서민 모두 개천에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야 말로 개천에서 용이 난 사례인데 개천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무엇을 계승할 것인가 
 

한 교수는 최근 한 토론회에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이 역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애증이 섞여 있는 진보진영을 향한 발언이기도 하다. 그는 우선 단서를 달았다.
 

"노무현 유산의 계승을 얘기할 때 어떤 가치는 계승하고 뭐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상속이란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속을 받는다면 그 자산으로 부채를 갚는 것이고 부채가 너무 많으면 상속을 안 하는 것이에요."

 

그는 이어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대중의 가슴에 이렇게까지 불을 지핀 정치인이 노무현 말고 누가 있습니까, 이를 계승하려면 전면적으로 계승해야 한다"면서 "그 핵심적인 내용은 과거청산과 민주주의"라고 잘라 말했다.

 

우선 그는 검찰 개혁을 꼽았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은 검찰에 대한 제도적 개혁을 하지 않은 것이죠. 검찰 개혁은 몇 가지 측면이 있는데 과거사를 정리해서 토양을 만들고 제도적인 개혁, 즉 공소권을 갈라놔야 견제가 됩니다. 그래서 공수처를 만들려고 했지만 실패했죠. 딱 하나 한 것이 뭐냐면 경찰, 국세청 등 권력기관을 사유화하지 않은 겁니다. 이것은 굉장히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그는 5공 청문회 때 과거청산으로 데뷔한 뒤에 지역감정과 맞선 '바보 노무현'도 계승해야할 주요 키워드라고 강조했다.

 

"80년대에도 바보가 많았잖아요. 바보란 게 셈을 안 해서 바보잖아요. 노무현은 떨어진다고 해도 가서 출마했죠. 그래서 노무현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팬이 생긴 거 아니에요. 나는 바로 광주의 아들이어서 그랬다고 생각해요. 광주의 자식이란 게 뭡니까? 광주 때문에 인생에 삐딱선 탄 사람 많은데 그 중 하나죠. 노 전 대통령은 그 중에서도 종손입니다.

 

병신되고 학교에서 짤리고 수천 수만 명이 데모를 한 시기였습니다. 두둘겨 맞으면 아프고 감옥 가면 힘들다는 것을 누가 몰랐겠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한 것이 바보인 것입니다. 광주 도청에서 마지막까지 총을 든 것을 보면 광주 세대는 계산이 멈춘 세대예요. 그것이 바보인데 노무현은 바보 중 바보입니다. 그런데 노무현은 정치판에 들어가서도 바보 짓을 계속하니까 지지를 받은 것이고 바보처럼 사는 삶에 대해 국민들이 승인을 해 준 것입니다. 그 바보도 족보 있는 바보입니다."

 

살아 있는 자의 슬픔 시즌 2는 과거청산으로부터

 

그러면서 한 교수는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승해야 할 핵심은 과거 청산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노무현의 지난 동영상을 보면서 많이 느꼈습니다. (동영상을) 보니 맞아! 맞아! 이래서 저놈들이 죽였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뭐냐? 과거 청산이에요.

 

노무현의 어머니 얘기를 하더라고요. 노무현에게 '나서지 마라', '모난 돌이 정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고 늘 얘기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노무현은 젊은이들에게 정의를 말하지 못하는 사회, 그걸 바꾸자는 것이었어요. 힘 있는 자가 약한 자를 부당하게 짓밟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과거 청산이라는 것입니다."

 

한 교수는 이어 노 전 대통령 이후 정국을 '살아있는 자의 슬픔 시즌 2'라고 규정한 뒤 과거 청산을 이 시기 진보진영의 주요 화두로 던졌다. 우선 '시즌 1'에 대한 설명부터 들어보자.

 

"영화 '화려한 휴가'의 마지막 장면 보면 '광주 시민여러분, 우리를 기억해 주십시오. 우리는 폭도가 아닙니다'라고 외칩니다. 그런데 마이크를 잡은 것은 시민뿐이 아니었어요. 군인들도 '광주 시민여러분, 도청이 폭도들에게 장악되어 있습니다. 이제 작전을 개시하오니 절대로 집 밖에 나오지 마십시오.' 광주 시민들은 이 소리를 다 들었을 겁니다. 총소리가 나고 30분만에 멎었는데 그걸 집에서 들으면서 보낸 것이지요. 30분의 총성이 멎은 뒤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그 시절의 빚을 진 것이, 그 빚을 간직한 지난 10년간의 시대가 살아남은 자의 시대 정신이고, 살아있는 자의 슬픔 시즌 1입니다."

 

그는 이어 "우리 역사가 죽음을 헛되이 보낸 적이 없다, 역사적으로 큰 사건은 죽음과 연관이 있다"면서 '시즌 2'가 진행될 수밖에 없는 역사적 사실을 예로 들었다.

 

"고종 황제의 죽음이 없었으면 3.1운동이 없었을 것이고, 순종 황제의 죽음이 없었으면 6.10 만세 운동이 없었을 것이고, 김주열의 시신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4.19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광주에서 돌아가신 분들이 없었다면 80년대의 민주화 운동이 그렇게 안벌어졌을 것이고 박종철의 죽음이 없었다면 6월 항쟁이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죽음을 흘려 보낸 적이 없어요. 장기적으로 보면 오래 갈 것입니다. 촛불 때 이미 한 번 내뿜었습니다. 87년이나 탄핵 사태 때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선거가 얼마 안 남았었기 때문입니다. 이 정권은 위기를 넘겼다고 좋아하고 있지만 진짜로 대중들이 아주 차갑게 등을 돌린 것 같아요."

 

촛불이 옮겨붙지 않있다고? 진보진영은 무엇을 했나

  

이 대목에서 궁금한 게 있어서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촛불은 왜 용산 참사와 언론장악 음모, 4대강 사업 등으로 옮겨붙지 않았을까? 이에 대해 한 교수는 진보진영의 자성부터 촉구했다. 
 

"용산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미어집니다, 촛불도 그렇고 용산도 그렇고 진보 진영이 대중의 선택을 너무 모르고 못 따라 잡은 것 같아요. 대중이 움직이는 걸 봤는데 진보진영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너무 몰랐습니다.

 

용산 참사 시기와 같이 나온 것이 영화 워낭소리 아니에요. 소 한 마리 죽는 것에 300만영이 몰려드는데 5명이 타 죽었습니다. 이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에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집회해서 3000명 모으는 것도 너무 버거웠잖아요."

 

그는 이어 "나의 책임이 있기도 하고 진보진영의 책임이기도 한데, 너무 싸움을 하지 못했다"면서 "용산에서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뜨거웠을까, 얼마나 가족이 보고 싶었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보여주지 못한 것, 좀 더 섬세하게 그들의 분노와 슬픔을 (국민과) 나누었어야 했는 데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이명박 정권부터 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혹자는 또 촛불은 이미 꺼진 게 아니냐고 예단하기도 한다. 민주주의적 가치가 붕괴되는 현실에서도 속수무책 당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분노이자 한편으로는 자포자기이고 무기력감이다. 하지만 한 교수는 "촛불의 영향력은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면서 3.1운동의 예를 들었다.

 

"3.1운동 뒤에는 당장 독립이 될 것 같았지만 그러지 못했어요. 지금보다 더 패배감이 컸을 것입니다. 일제가 정책을 바꿔서 <조선>, <동아>를 만들고 새로운 공간이 열리기도 했지만 좌절감도 컸을 것입니다.

 

하지만 독립운동 관련한 공판 조서, 취조 조서를 보면 '너 왜 독립 운동하냐'는 질문에 대부분 3.1운동이라고 답변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3.1운동은 한 세대에 대한 영향력이 있었죠. 가령 3.1운동을 1년 뒤에 평가한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긴 역사에서 봐야 그때가 결정적인 순간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촛불이 꺼져서 사람들이 실망했지만 노제 때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습니까? 이걸 계기로 뭔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한 교수는 살아있는 자의 슬픔 시즌 2가 어떤 양태로 진행될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정말로 슬퍼하는 부엉이에게 다가가서 왜 노무현이 죽었는가, 그리고 왜 노무현이 바보처럼 살았는가, 바보 노무현은 내력이 있는 바보라는 이야기를 역사가의 한 사람으로서 80년대를 산 사람으로서 하고 싶다"면서 다음과 같이 맺었다.

 

"노무현 시대를 복기해보니 과거사 문제가 핵심이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광주에서 태어난 족보 있는 바보 노무현의 유산을 계승하고 향후 10년 정도는 그가 남긴 유산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입니다. 솔직히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제일먼저 과거사에 올인했잖아요. 뉴라이트도 그렇고요. 결국 노무현의 죽음의 원인을 제공한 과거사 청산 문제를 대중적으로 알리고 특히 이를 지방선거에서 쟁점화시켜야 합니다."
 
 
"백범까지 빨갱이 낙인... 일제보다 더 지독" 
[포스트노무현-마지막회 ②]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인터뷰 
  
 

- 역사학자의 눈에 비친 이명박 정권의 통치철학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없죠."

 

- 그럼에도 정권은 굴러가지 않습니까. 그 작동 기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익이죠. 정권 담당자와 그들이 대변하고 있는 '강부자', '고소영'의 이익입니다."

 

지난 22일 평화박물관에서 만난 역사학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거침이 없었다. 그는 특히 "이런 집단들로 이루어진 한국 보수주의의 가장 큰 맹점은 이념을 위해 싸워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라면서 "이익을 위해 추잡하게 싸웠다"고 일갈했다.

 

그는 이어 "자본주의의 정상적인 룰 속에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투기 같은 것, 그리고 특히 삽질에 매달리는 것 등 국론과 대의를 볼 때 나쁜 짓이지만 명백하게 떼돈을 버는 놈들이 있다"면서 "그런 놈들과의 싸움에서 대의에 입각한 다수가 번번히 패배했다"고 말했다.

 

그럼 왜 우리는 그런 질곡의 현대사를 갖고 있는 것일까?

"죽기 살기로 덤비는 놈한테는 이길 수 없나 봅니다.(웃음)"

 

 

"이명박 보다 노무현이 더 많은 표를 얻었다"

 

- 그럼 그런 사람들에게 표를 몰아준 국민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죠?

"국민들도 혹했죠. 그래도 다수가 표를 줬다고는 생각하진 않아요. 이명박 정권이 입만 뻥긋하면 530만 표 차이로 이겼다고 말합니다. 역대 최다 표 차이였고 이런 대승이 다시 일어나는 것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굉장히 많은 표를 얻었을 것 같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얻은 표보다 적어요.

 

노무현 대통령이 1201만 표를 얻었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1149만 표란 말이에요. 52만 표를 덜 얻었어요. 이명박 대통령은 전에 이회창 후보보다 5만 표 정도를 더 얻었는데,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는 260만인가 늘어났어요. 그러니깐 이회창보다도 훨씬 적게 얻은 거죠. 또 노무현을 지지했던 사람들 중에 600만 명 가까이 투표를 안 한 겁니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이 지지층을 늘린 게 아니에요."

 

그는 이어 "그 사람들(600만 명)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문하면서 제일 서럽게 울었을 것"이라면서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지못미'로 대표되는 거대한 정서가 이 사람들에게서 연유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지난 대선에서의 득표 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지난 대선을 우리사회 보수세력의 승리로 받아들여야 할까? 한 교수는 엄밀한 의미의 보수가 이 땅에 있는가에 대해 근본 의문부터 던졌다.  

 

"저는 진짜로 보수당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는 전통적 기준이나 글로벌 스탠다드로 비추어 봐도 보수가 없어요."

 

그는 이어 "한국은 역사적으로 유교국가였고, 보수적인 나라"라면서 "조선 시대에 왕이 뭔가 개혁을 시도하면 신하들이 막 들고 일어났죠, 사극 보면 '전하, 전례가 없는 일이옵니다', '아니되옵니다' 이러지 않습니까, 진보 혁신이 나오기 어려운 풍토"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는 2000년 동안 왕조 2번 바뀌어 봤잖아요, 신라에서 고려로 거쳐 조선으로 500년마다 한 번씩 바뀌는 보수적인 전통이 있다"면서 "왕조를 오랫동안 유지하려면 나름대로 노하우도 있고 책임감, 도덕성, 리더십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보수세력에게 그런 도덕성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역사학자인 한 교수의 눈에 비친 '진짜 보수'는 누구일까?


"민족적 가치를 내세우는 진짜 보수는 백범 선생같은 분입니다. 그런데 백범을 빨갱이로 모니 오죽한 놈들이겠습니까. 우익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냥 '수구'입니다. 이런 인사들이 집권을 하니 도덕적으로 읽힐 수가 없어요. 대한민국에 진보라고 여겨지는 장준하 선생님이나, 함석헌 선생님, 문익환 목사님 등이 모두 이념적 기준으로 보면 보수였던 분들이에요. 그런데 이 분들은 양심적인 보수입니다. 친일파 나부랭이들과는 어울릴 수가 없었던 거지요."

 

그는 이어 "지난 몇 년 동안 과거사 위원회에서 일하면서 보니 과거에 멀쩡한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쏴 죽인 일들이 많았다"면서 "진실을 밝히는 것이 진보진영의 일입니까? 이건 인간의 도리"라고 성토하기도 했다.

 

보수의 개념조차 왜곡된 상황. 그런데 최근 이명박 정권은 '중도'를 주창하고 나섰다. 이 것은 또 어떻게 보아야 할까?

 

"추모 민심에 놀란 부분이 있습니다. 이 정도 민주주의에서 군사쿠데타를 다시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선거를 해야 하는데, 강부자만 찍어서는 승리를 못하죠. 사돈에 팔촌까지 찍어도 400만명일 테니 선거를 위해서 중도를 들고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서민중도를 표방하면서 부자감세를 하는 것은 양립할 수 없죠."

 

"파시즘은 아니지만, 그리로 가는 궤도"

 

하지만 주요 매체들이 세뇌 수준으로 이를 홍보하려 든다면? 언론악법 날치기와 인터넷 재갈 물리기 등을 통해 실제 그런 우려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형국이다. 따라서 일부에선 파시즘이 도래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지금이 파시즘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리로 가는 궤도라고 생각합니다. 이 정권이 가장 답답한 점은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단 것입니다. 그냥 삽질만 하잖아요. 대운하는 그나마 명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마저 벗어 던지고 무조건 (4대강) 삽질만 합니다. 하고 싶은 것은 삽질이지 운하 파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운하가 됐건 산을 옮기건 삽질만 하면 돈은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결국 3년 동안 무작정 빨대 꽂고 쪽쪽 빨기만 하겠다는 겁니다. 사실 지금 한국경제가 좋은 것은 예산을 다 풀어서 그렇죠. 이 약발이 하반기에 떨어지면 어떻게 될 것인지 두고 봐야 합니다. 지금까지 파국적 상황이 오진 않았지만 넘겼다고는 할 수 없어요. 장기적인 계획은 없고 자기네 집권할 때 지표만 잘 나오면 되는 거죠.

 

만약에 그렇게 됐을 때 청년실업자들이나 해고자들이 어떤 방향으로 갈까요?. '이명박 대통령을 뽑은 것이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선거를 잘해야겠다고 할지, 아니면 그 쪽에서 들고 나온 뉴타운보다 더 센 공약을 선택할지... 이에 대한 선택의 시점이 오면 파시즘을 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이상한 독재입니다."

 

- 이상한 독재라니요?

"선거로 집권 했는데 자신감은 없고, 대화는 전혀 안하고, 하는 법도 모르는 정권입니다. 참모들도 문제예요. 이들이라도 목숨 걸고 간언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우리나라 옛날 선비 전통에 그런 것이 있잖아요. 이 정신이 있어서 조선이 500년 간 겁니다."

 

"3년 반만 쪽 빨아먹고 말려는 건가"

  
 

 

 

한 교수에게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과 비견될 수 있는 역사 속의 인물이 누구인지를 물었다. 그는 비슷한 인물보다는 차이를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면서 '일제'를 예로 들었다.
 

"이번에 대한문 빈소 앞에 차벽이 쫙 서 있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혔습니다. 그 곳은 고종황제가 돌아가신 곳이기도 합니다. 연구자마다 평가가 다르겠지만 저는 고종이 무능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국민들은 슬퍼하지 않았습니까. 죽으니까 슬프죠. 일본인들은 슬피우는 백성을 안 건드렸어요. 장례 치르는 동안 거기서 울게 내버려뒀어요.

 

또 일제는 3.1운동을 더 잔혹하게 짓밟았지만 사람을 다 잡아다 죽일 수 없으니 정책을 바꿨어요. 그래서 무단 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바뀐 겁니다. 대중이 폭발하지 않게 정책을 바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정권은 어때요? 촛불 끝나자마자 경찰 공안을 전면에 내세우고 유모차 끌고 나온 엄마를 아동학대죄로 잡아들이고 미네르바를 잡아들였습니다.

 

차이는 뭘까요? 일제는 조선을 영원히 지배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 정권은 3년 반만 쪽 빨아 먹고 말려는 것이에요. 그거 아니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요. 일본 제국주의자들 보다 더 지독한 짓을 하잖아요."

 

마지막으로 역사학자인 그에게 '후대의 사가들은 이 시기를 어떤 시대로 기록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아직 이 시기가 끝이 안 났고 변수가 많지만 경제 위기에서 파시즘으로 들어가는 초기 단계 성격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어요. 나치도 선거로 집권했잖아요. 그런데 촛불에서 가능성을 본 거 아닙니까. 촛불은 전 세계 민주주의사에서 굉장히 큰 가능성을 보여 줬어요."

 

2시간여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기자에게 한 교수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요즘 과로사할 지경입니다. 워낙 벌이는 일이 많아서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노무현 정권 때는 태평성대였던 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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