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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웹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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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09. 8. 9.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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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웹의 불편한 진실>

김기창 지음, 디지털미디어리서치 펴냄, 1만5000원

<전자신문>

 

‘액티브엑스(ActiveX)는 무조건 ‘설치’, 혹은 ‘OK’를 누른다.’ ‘파란 보안 경고창이 나오면 무조건 ‘예’를 누른다.’

 

한국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무조건 ‘예’를 눌러야 한다. 감히 이 지시를 거부하고 ‘아니오’를 선택하는 자에게는 모든 서비스가 거부되고 말로만 ‘권장’이지 인터넷익스플로러 사용을 강제하는 화면을 만나게 된다. IT 강국 대한민국 인터넷의 ‘이상하지만’ 한 번도 의심한 적 없는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왜 수많은 웹브라우저 중에서 유독 마이크로소프트(MS)의 인터넷 익스플로러(IE)를 통해서만 인터넷 뱅킹을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웹 서비스는 왜 전 세계 보안 전문가들이 거의 채택하지 않는 액티브엑스 플러그인을 통해서만 가능하도록 설계됐을까.

 

‘한국 웹의 불편한 진실’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과 함께 대한민국 인터넷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정부가 이미 왜곡된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각 분야의 유력업체와의 공생 관계 속에서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채 ‘전문가’라고 자칭하는 업체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함으로써 기형적인 구조를 공고히 하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무분별한 액티브엑스 남용으로 인해 보안 불감증이 심화하고 공인 인증서를 둘러싼 기관 간 책임 떠넘기기 문제도 고질적인 병폐라고 그는 신랄하게 비판한다.

웹캠 '200만 화소·클립형'이 저자 김기창 교수(고려대 법대)는 지난 2006년 5월 네티즌들과 함께 ‘웹페이지 국제표준화를 위한 행정 소송’을 준비하면서부터 오픈웹(www.openweb.or.kr) 활동을 시작했다.

 

개방성을 기본으로 하는 웹의 정신과는 무관하게 거꾸로 가는 한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교수이자 법률가로서 법의 심판에 의한 한국 웹의 올바른 ‘교정’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책 속에 수록된 ‘상고 이유서’에서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이 사건 청구는 원고와 같은 일반 소비자들의 소프트웨어 선택권이나 개인적 불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국내의 자생적 소프트웨어·솔루션 산업의 사활이 걸린 문제입니다.”

 

 

[북 칼럼]한국 웹의 불편한 진실  

<inews> 


인터넷 사이트를 방문하다보면 '액티브X'를 깔라는 성가신 메시지를 접해본 경험이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런 메시지가 뜨면 반드시 '예'를 선택해야만 한다. 그래야 그 사이트에서 필요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그 뿐 아니다. 익스플로러 이외의 브라우저로 인터넷 뱅킹을 이용하려고 하면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이트들이 마이크로소프트(MS)의 익스플로러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려대 김기창 교수가 쓴 '한국 웹의 불편한 진실'은 이런 관행에 대해 강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책이다. IT 강국이란 환상에 젖어 있는 한국이 사실은 폐쇄적이고 독점적인 웹 문화에 젖어 있다는 통렬한 비판을 담고 있다.

 

저자인 김기창 교수는 지난 2006년부터 '오픈웹 운동'을 주도하면서 국가를 상대로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 개방성이란 웹의 기본 가치를 되찾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김 교수는 최근엔 파이어폭스 같은 브라우저에서도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소송을 전개하고 있다.

 

이 책은 국내 유수 대학의 법과대학 교수가 왜 정부를 상대로 오픈웹 소송을 벌일 수밖에 없는 지에 대한 생생한 설명이 담겨 있다.

 

그가 보는 한국 웹은 한 마디로 공정경쟁이 불가능한 공간이다. 은행과 정부, 보안업체의 삼각 동맹 때문에 사실상 익스플로러 이외 다른 브라우저를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금융 거래를 할 때 필수적으로 사용하도록 되어 있는 공인인증서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공인인증서 자체가 사실상 사유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 다른 기관에서 금융거래를 할 때마다 플러그인을 깔아야 하는 것도 공인인증기관이 법령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현재 전자서명법에 따르면 은행이나 쇼핑몰이 아니라 공인인증기관이 가입자 설비를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데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 그러다 보니 국내 컴퓨터 사용자들은 성가신 보안 경고창에 시달리게 되고, '파블로프의 개'처럼 기계적으로 OK 버튼을 누르게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말도 안 되는' 관행이 자리잡게 된 데는 공인인증기관과 국내 보안업체들 간의 유착 관계에서 비롯됐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는 또 이런 관행이 현재와 같은 안일한 보안 상태로 이어지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융결제원은, 법 규정이 버젓이 있는 데도, 공인 가입자 설비를 제공하지 않고, 은행, 카드사 등은 보안업체들로부터 사제 가입자 설비를 제각각 구입하도록 강제당하는 현 사태는 거의 어거지로 강매하는 장사 수법이나 마찬가지다. 그 와중에 사람들은 자기 컴퓨터에 이미 여러 개의 사제 가입자 설비들을 차곡 차곡 쌓아두었지만, 오늘도 "이 소프트웨어를 설치하시겠습니까?"라는 보안 경고창에 한 두 번 "예"를 누르지 않으면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 지경이 되었다." (67쪽)

 

저자인 김기창 교수는 특히 웹 표준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 익스플로러 점유율 99%로 세계 1위에 달하는 현실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가 오픈 웹 소송을 주도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문제 의식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 시장에서는 최근 들어 익스플로러 점유율이 꾸준히 떨어지고 있다. 특히 오픈소스 브라우저인 파이어폭스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익스플로러 점유율은 60% 대까지 내려간 상태다.)

 

이 책 후기에 첨부되어 있는 "나는 왜 오픈 웹 소송을 하는가"는 그가 왜 계란으로 바위치는 것과 다름 없는 소송에 뛰어들었는 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는 또 김기창 교수가 오픈웹 소송에서 패소한 뒤 대법원에 제출한 상고이유서도 첨부되어 있다.

 

익스플로러를 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많은 사람들에겐 김 교수의 오픈웹 소송이 다소 엉뚱해 보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방과 공유를 지향하는 웹 2.0 시대에 여전히 폐쇄적인 인터넷 환경이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 한국의 인터넷 환경이 얼마나 폐쇄적인 지를 알 수 있다. '상고이유서'를 꼼꼼히 읽다보면, 이런 왜곡된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자는 몇 년 전 로렌스 레식 교수(스탠퍼드대학 로스쿨)의 '코드' '자유문화' 같은 책들을 읽으면서 신선한 충격을 맛 본 경험이 있다. 정도는 다르지만, 김기창 교수의 '한국 웹의 불편한 진실'에서 그 때와 유사한 감동을 경험했다. (로렌스 레식 교수는 마이크로소프트(MS) 반독점 소송이나 영화, 음반업계들의 저작권 남용에 반대하는 소송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픈웹을 향한 저자의 힘든 행보에 멀리서나마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그리고 그가 이 책을 통해 제기한 많은 문제의식들이 현실 세계에서 하나 둘씩 결실로 이어지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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