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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년만의 日 정권교체

세상보기---------/사람 사는 세상

by 자청비 2009. 8. 3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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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년만의 日 정권교체…의미와 향후 전망

 

그동안 일본 정치·사회 체제의 동의어이던 자민당 체제가 30일 총선을 기점으로 사실상 무너졌다. 이로 인해 그동안 자민당 체제가 함축하던 미-일 동맹, 고도성장, 관료정치 등 동아시아 전체에 작용했던 질서의 버팀목들 역시 끝나고 새로운 질서를 맞이하게 됐다.

 

1955년 11월 자유당과 민주당 등의 합당으로 출범한 자민당 체제는 당시 사회당 등 일본 혁신세력의 성장과 소련·중국의 위협 등 일본 안팎의 사회주의 세력의 도전에 대한 미·일 보수세력의 대응이었다. 대외적으로는 미-일 동맹, 국내적으로 국가 주도 고도성장으로 상징되는 자민당 체제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후 동아시아 안보·경제 질서에 영향을 줬다. 한국은 미-일 동맹의 하위 체제인 한-미-일 동맹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안보체제를 확립했다. 경제적으로도 일본의 국가 주도 고도성장 전략을 충실히 복제하며 경제성장을 일구어냈다.

 

자민당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참의원 선거 때부터다. 이 선거에서 자민당은 야당인 사회당에 10석 뒤지며 창당 이후 처음 과반수 확보에 실패했다. 리크루트사가 자민당 거물 정치인들에게 공개 전 주식을 건넨 것이 폭로돼 자민당의 정경유착이 발가벗겨진 이듬해였다. 당시엔 보수정당에 더 없는 버팀목이었던 냉전체제가 막을 내리고, 자민당 최대 공적인 고도성장은 거품이 터지기 직전의 위태로운 절정을 맞고 있었다.


1993년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여전히 제1당을 유지했지만 반자민 연립의 호소카와(細川) 내각에 정권을 뺏겼다. 자민당 창당 후 첫 정권교체였다. 이듬해 사회당과 손 잡고 정권을 되찾았지만 자민당은 이제 예전같지 않았다. 단독 정권이 불가능해 사회당, 공명당과 손을 잡아야 정권 유지가 가능했다.


자민당 창당 이듬해부터 73년까지 일본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9.1%. 이후 거품경제가 꺼지기 직전인 1990년까지는 3.8%였다. 이 고도성장이 자민당 1당 지배를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잃어버린 10년'의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2007년까지 성장률은 0.3%로 추락, 자민당 입지를 좁혔다. '우정(郵政)민영화'로 대표되는 고이즈미(小泉) 정권의 작은 정부 지향은 그런 고민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경쟁과 능률을 우선시하는 고이즈미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양극화라는 사회적 고통을 수반했다. 일본 언론 조사에 따르면 자신이 중간층이라고 여기는 일본인이 1987년에는 75%였지만 2006년에는 54%로 줄었다.


자민당의 한계를 체감한 유권자들이 결정적으로 '정권교체'를 결심하게 만든 계기가 있다. 2006년 고이즈미 총리 퇴진 이후 3년 동안 계속된 자민당 정권의 리더십 부재다. 아베(安倍)에서 후쿠다(福田), 아소(麻生)로 이어가며 1년마다 총리가 바뀌었다. 자민당 '55년체제'를 지탱해온 파벌 정치, 선거구를 물려받는 의원 세습 등 자민당의 낡은 구조에 등돌리는 국민들이 갈수록 늘었다. 이는 곧 관료주도 정치의 낡아빠진 자민당 체제를 전면 부정하고, 개혁을 주장하며 1988년 창당한 민주당이 목표로 했던 '정권교체'를 실현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번 총선에서 예상대로 민주당의 압승이 이뤄졌고, 향후 일본 국내 뿐 아니라 동아시아를 둘러싼 국제정세에도 많은 변화를 예상케 하고 있다.


우선, 동아시아의 안보 질서가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민주당은 대외적으로는 ‘대등한 일-미 동맹 관계’ ‘아시아 중시 외교’를 내걸었다.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는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 기고 등을 통해 미국의 세계화 경제전략을 비판하면서, 동아시아의 화합을 내건 ‘우애정치’를 표방했다. 실력자 오자와 이치로 대표대행은 유엔 중시 등 다자주의를 표명하고 있다. 민주당의 승리는 아시아에서 북한의 핵 야망 및 점증하는 중국의 군사력과 함께 미국에 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어,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동아시아 안보환경 변화를 가장 주시하고 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한국은 초유의 외교안보 환경에 직면하게 됐다. 미국의 어느 역대 정권보다도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는 오바마 정부가 들어선 상황에서, 한-미-일 동맹에서 자민당 체제라는 상수가 사라졌다. 북-미 협상을 가로막는 가장 큰 상수이던 자민당 정권이 사라진 상황은 북핵을 둘러싼 미-중-일의 거래를 더욱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사형선고를 받은 일본의 신자유주의 개혁 노선의 대안도 주목된다. 자민당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시절 정부 예산을 전국 곳곳에 나눠주며 농민과 서민층의 지원을 확보했던 ‘이익 유도 정치’를 폐지했다. 고도성장이 종료되면서 재원이 고갈되자, 신자유주의 구조개혁 노선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빈부 양극화 현상인 이른바 ‘격차사회’를 심화시키며, 이번 총선 패배의 결정타가 됐다. 동아시아 성장 노선의 원조인 일본이 어떤 활로를 찾을지는 한국도 관심있게 지켜볼만한 대상이다.


하지만 이번 총선의 의미는 민주당의 승리가 아니라 자민당 체제의 붕괴이다. 이는 구체제가 끝났을 뿐이지, 새로운 체제가 마련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민주당 대표가 자민당 설립자이자 초대 총재인 하토야마 이치로의 손자이고, 실력자인 오자와가 자민당 최대 파벌인 다나카파의 적자 출신이라는 점이 이를 잘 드러낸다. 이런 점을 감안해서인지 미국은 미일관계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일본의 정권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자민당 이후의 체제가 일본과 동아시아를 새로운 안보·경제 질서로 밀어넣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한편 새로운 질서 창출을 시도하다가 주저앉은채 오히려 구체제로 회귀하려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에서는 사상 첫 흑인 대통령 탄생하고, 일본에서는 54년만의 정권교체-무혈혁명으로 일컬어지는-를 이루는 등 경제위기 속에 세계는 새로운 질서를 향해 급격하게 변화해가고 있다는 점은 우리가 무엇보다 각성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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