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심장마비로 타계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57, 실제나이 59)씨가 4일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조오련씨를 올해 1월 서귀포펭귄수영대회에서 잠깐 만난 적이 있다. 조 씨는 그 때 자신의 대한해협 횡단 30주년이 되는 내년에 광복절을 전후해 다시 대한해협 횡단에 나설 것이라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조 씨는 60이라는 나이에도 이날 눈발이 휘날리는 추운 날씨에 태극기를 들고 펭귄수영대회를 선도했다.
그러나 이날 조 씨의 모습은 '아시아의 물개'라는 별명에 어울리지 않게 전체적으로 늘어진 살과 약간은 튀어나온 듯한 배, 그리고 약간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말투 등을 보면서 세월은 속일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나이 60에 그동안 선수로서 몸을 혹사해온 점 등을 감안한다면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그래서 '대한해협 횡단이 다소 힘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수영으로 독도 33바퀴를 완주했던 것을 상기하며 그의 계획이 순조롭게 이뤄져 다시 한번 대한민국의 기개를 알리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
그러던 그가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숨졌다. 아직 신체적으로 이상이 있을 나이는 아닌데 갑작스런 죽음이 다소 의아스럽다. 그는 수영을 통한 대한해협 횡단 의지와는 달리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좋은 컨디션은 아니었던 것 같다. 조 씨는 수면제와 우울증 치료제를 복용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만약 우울증이 사실이라면 전 부인과의 사별이후 불안정과 대중에게 잊혀진 영웅이라는 점이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언론 보도를 보면 조 씨는 대한해협 횡단 30주년인 내년 8월15일께 다시 횡단에 도전하기로 하고 제주도에 캠프를 차려놓고 준비하다가 1주일 전부터 자택에 머물며 올해 초 재혼한 부인과 함께 지내왔다. 하지만 조 씨는 내년 횡단 도전을 앞두고 훈련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데도 후원자가 나서지 않아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내 수영 인생의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온몸을 던지겠다”던 생전의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한 채 고인은 ‘천국의 바다’로 헤엄쳐 갔다. ‘수영영웅’ 그의 미니홈피에는 ‘2010년 대한해협을 향해’, ‘2010년 마지막 도전’이라는 글이 올라와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제 그의 두번째 대한해협 횡단 꿈은 천국의 바다에서나 시도해볼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불모지-최근 박태환이라는 걸출한 선수가 있긴 하지만-인 수영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선수가 사라진 것이다.
조오련 프로필
전남 해남에서 5남5녀 중 막내로 태어난 조씨가 수영과 인연을 맺은 것 중학교 1학년 때다. 여름방학 때 집안 심부름으로 제주도에 갔다가 우연히 수영 경기를 본 것이 그를 수영 선수의 길로 이끌었다. 동네 개천에서 헤엄을 치며 수영을 익힌 조씨는 해남고 1학년 때인 1968년 말 자퇴서를 내고 무작정 상경했다. 오직 수영 하나로 이름을 떨치겠다는 일념에서였다. 구두닦이, 간판집 점원 일 등을 하며 서울 종로2가 YMCA에서 수영을 강습받았다. 1969년 전국체전 대학일반부 서울예선에 수영복 없이 사각팬티를 입고 출전, 우승한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이를 계기로 서울 양정고에 스카우트돼 수영선수로서 본격적인 수업을 받았고, 당시 대한체육회장이던 민관식씨의 특별지시로 태릉선수촌에 입촌하는 혜택을 받기도 했다.
양정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70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6회 아시안게임 남자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우승하면서 ‘아시아의 물개’라는 애칭을 얻었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 수영에 새 역사를 쓴 것이다. 고려대에 입학한 그는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도 남자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아시안게임 2연패를 이뤄 수영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자유형 장거리가 주종목이었지만 접영, 배영 등 ‘건드리지 않은 종목’이 없었다. 신기록 행진을 벌여 1978년에는 수영부문 한국신기록을 50번째로 작성했다. 수영선수로는 환갑을 넘은 나이에 출전한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 접영 200m에서 동메달을 따낸 뒤 선수 생활을 접은 그는 이후 여러 사업에 손을 댔으나 실패와 좌절을 겪기도 했다.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다시 물로 돌아왔다. 89년 서울 압구정동에서 조오련 수영교실, 93년 조오련 스포츠센터 등을 설립해 후배들을 가르치며 한국 수영계의 버팀목으로 활약했다. 1980년 8월11일 사상 최초로 대한해협을 13시간16분 만에 횡단하고, 2년 뒤엔 현지 가이드가 체재비를 몽땅 갖고 달아난 와중에서도 32㎞의 도버해협을 건너 화제를 모았다.
2002년 대한해협, 2003년 한강 700리 종주, 2005년 독도 횡단 등에 성공하는 등 조씨의 도전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지난해에는 3·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을 기리는 의미에서 ‘독도 33바퀴 헤엄쳐 돌기’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고인은 대한해협 횡단 30주년을 맞는 내년 8월에 수영 인생의 마지막 도전으로 세번째 대한해협을 횡단할 작정이었다.
▶◀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지난 1월 그와 만났을 때 찍었던 사진과 Daum TV 팟에 올라온 그의 영상을 포스팅한다.
조오련씨가 바다에 뛰어들기 전 주위 사람들과 한담을 나누고 있다.
태극기를 들고 방송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당시 인기프로그램이었던 '우리결혼했어요'의 마르코가 찾아와 인사를 하고 있다.
바다에 뛰어들기전 태극기를 들고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바다에 들어가기 전 태극기를 들고 잠시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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