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레빗으로 빗는 하루”는 겨레문화 가운데서 유익한 것들을 골라 짧고 재미있게 쓴 글로 2004년 6월부터 날마다 들려드리고 있습니다. 글 가운데서 지적할 내용은 꾸짖어 주시고, 주위 분들에게 추천도 부탁합니다.
하루 늦게 알려드려 죄송합니다. 어제는 24절기의 마지막인 대한으로 절분(節分)이라 하여 한 해의 마지막 날로 여겼습니다. 절분날 밤을 해넘이라 하여, 콩을 방이나 마루에 뿌려 악귀를 쫓고 새해를 맞았고, 절분 다음날인 오늘은 정월절(正月節)인 입춘의 시작일로, 절월력(節月曆)의 새해초가 됩니다.
이때 하루 한 끼는 꼭 죽을 먹었었는데 크게 힘쓸 일도 없고 나무나 한두 짐씩 하는 것 말고는 대부분 쉬는 때이므로 삼시 세 끼 밥 먹기가 죄스러워 그랬다고 전합니다. 제주도에서는 이사나 집수리 등 집안 손질은 언제나 ‘신구(新舊間)’에 하는 것이 풍습입니다. 이때 신구간이란 대한(大寒) 후 5일에서 입춘(立春) 전 3일 사이(1월 25일∼2월 1일)로 보통 1주일 정도를 말하지요. 이제부터는 한해에 가장 추운 계절인데 어려운 이들과 고통을 나누며,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고려말, 조선초에 향나무를 바닷가 개펄에 묻어두는 매향의식(埋香儀式)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때 자주 출몰하던 왜구의 침탈에 고통을 받던 민중들이 침향을 정성으로 준비하여 자신들을 구원해줄 미륵이 오시기를 비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묻은 향나무가 수백 년이 지나면 침향이 되고, 침향이 된 뒤에는 ‘서해 바다에서 용이 솟아오르듯이’ 스스로 물위로 떠오른다고 믿었습니다. 이는 민중들의 염원이 때가 되면 드디어 현실로 나타나게 됨을 의미하며, 당시 미륵신앙의 모습을 그대로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개펄에 묻힌 향나무가 수백 년이 지난 오늘에 최고급 향으로 알려진 침향 (沈香)이 된 것은 어쩌면 이 민중들의 염원이 이루어낸 결과가 아닐까요? 또 그때의 민중들이 어느 누구의 것이 될지도 모르지만 침향이 되어 누군엔가 도움이 되라는 마음으로 묻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