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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찐머리 뒤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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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청비 2007. 8. 9.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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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찐머리 뒤에는 머리꾸미개 뒤꽂이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2007. 08. 09.
 
 

어제 편지에 잘못이 있었습니다.

"장영실은 ~ 세종이 특별히 발탁한 덕분에"라고 했는데

장영실은 태종이 발탁하고, 세종이 키웠습니다.

지적해주신 김슬옹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지난 편지에서 "내일은 입추~"라는 대목에서

지난해 보낸 편지를 그대로 보낸 탓입니다만 올해 입추는 어제입니다.

착오없으시기 바랍니다.

 

       

       조선시대 쪽찐머리 뒤에 덧꽂는 비녀 외의 머리꾸미개(장신구)를 “뒤꽂이”라고 하
       는데 끝이 뾰족하고 다른 한 끝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장식이 딸려 있어 뾰족한
       곳을 쪽에 꽂아 장식합니다. 재료나 장식의 모양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일반에서 사용한 뒤꽂이는 과판이라 하여 국화 모양의 장식이 달린 것, 연봉이라
       하여 막 피어오르는 연꽃 봉오리를 본떠 만든 장식이 달린 것을 썼습니다. 이
       밖에도 매화 ·화접 ·나비 ·천도(天桃) ·봉(鳳) 등의 모양을 장식한 것이 있고, 산호 ·
       비취 ·보석 ·칠보 ·파란 진주 등으로도 꾸몄지요.

       

       장식과 함께 실용적인 면을 겸한 것으로는 귀이개 ·빗치개·뒤꽂이 등이 있는데
       빗치개는 가르마를 갈라 머리를 정리하는 데 쓸 뿐만 아니라 밀기름을 바르는
       도구였고, 빗살 틈에 낀 때를 빼는 데도 썼습니다. 원래는 귀지를 파내는 귀이개를
       꾸미개로 써서 쪽찐머리에 꽂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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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148. 입고, 입고 또 입고, 여자 속옷  (2004/11/24
)

    

       조선시대 여자들은 어떤 속옷을 입었을까요? 요즈음은 치마 속에 ‘속치마’만 입지만

       이는 개화기 이후부터입니다. 그 전에는 두 가랑이로 된 속곳 따위를 입었습니다.

       먼저 겉저고리 안에는 ‘속적삼’, ‘속저고리’를 입었고, 속옷도 아닌 것이 속옷처럼

       쓰인 ‘허리띠’가 있습니다. 이 ‘허리띠’는 조선 후기로 오면서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자

       겨드랑이 밑의 살을 가리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래에는 겉치마를 풍성하게 보이기 위해 허리 부분을 부풀리는 3, 5, 7층의

       무지개빛 ‘무지기’를, 허리 아랫도리를 부풀려 보이게 한 ‘대슘치마’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이 무지기와 대슘치마를 벗기면 그 안에는 ‘너른바지’가 있습니다. ‘아니

       너른바지를 벗으니 그 속엔 또 ‘단속곳’이 나오고, ‘속바지(고쟁이)’가 나옵니다.

       끝일까요? 아닙니다. 그 속엔 또 ‘속속곳’과 ‘다리속곳’까지 있습니다. 보온보다는

       맵시 때문입니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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