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현모양처의 대표적인 인물로 신사임당을 꼽습니다. 하지만, 신사임당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현모양처가 아닙니다. 당시는 이른바 남귀여가혼 (男歸女家婚)으로 여자 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고, 신랑은 자신의 본가와 처가를 오가는 형태였습니다. 따라서 조선 17세기 이전 부인들은 시집살이를 하지 않았으며, 또 딸도 제사를 지내고, 재산도 똑같이 상속받아서 며느리로서보다는 오히려 딸로서 더 많이 살았습니다. 게다가 신사임당은 남편에게 자신이 죽더라도 재혼은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신사임당은 우리가 생각하는 현모양처이기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능력을 당당하게 드러낸 여성입니다. 이런 그의 철학, 생활방식은 아들 율곡과 딸 매창이 스스로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여유를 주었는데, 그런 신사임당은 21세기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현모양처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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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740. 여름철의 전통술, 이화주와 과하주 (2006/07/16)
날은 덥고, 억수장마 지는 그런 계절입니다. 여름엔 쉽게 변질하기 때문에 술을 잘 빚지 않지만, 이런 때도 우리 겨레는 전통술을 빚어 마셨습니다. 봄철 배꽃이 피는 때에 빚었다가 여름철에 더위와 갈증을 씻기 위해 마시는 농축 유산균음료와 같은 형태의 이화주(梨花酒)도 사실은 여름술입니다. 또 여름철의 술로는 과하주(過夏酒)가 있는데 여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마셔서 여름을 건강하게 날 수 있는 뜻입니다. 유 두와 백중날에는 일꾼들을 위해 막걸리와 동동주로 잔치를 벌였다고 합니다.
우리의 좋은 전통술들이 이제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 까닭은 개화기 이후 술빚는 것을 천한 일로 생각한데다 맥주, 고량주 등 수입 술에 밀려 가내수공업 형태의 전통술은 점점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더더욱 한일합병 이후 조선총독부가 가정에서 술을 빚는 것을 금지하면서 전통술의 맥은 끊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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