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 18권 3년 5월 26일에는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 윤석이 와서 아뢰기를, ‘지금 최경과 안귀생이 선왕의 얼굴을 받들어 그렸다고 하여 특별히 당상관(堂上官, 정3품 이상)을 제수하였으나, 신은 생각건대 최경과 안귀생은 본래 미천한 자이므로 당상관으로 올려 제수하는 것은 언짢으니, 청컨대 명을 거두소서.”라고 주청합니다.
이후 지평 김이정, 장령 허적, 대사헌 김지경, 대사간 성준 등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떼 같이 달려들어 주청을 하고, 대왕대비에게까지 아뢴 끝에 결국 성종은 명을 거둬들였습니다. 그들의 논리는 미천한 화공(畫工)이 당상관에 제수된 전례가 없었으니 당상관이 아닌 말을 하사하거나 녹을 후하게 주는 것으로 대신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이렇게 예술가들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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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502. 고종의 황룡포와 청와대 (2005/11/13)
조선시대에 임금은 노란색 곤룡포(衮龍袍:임금이 입던 정복) 즉, 황룡포를 입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음향오행 사상에 따른 오방색과 중국에 대한 사대사상이 있어서입니다. 오행 철학에 따르면 동쪽은 파랑, 남쪽은 빨강, 서쪽은 흰색, 북쪽은 검정, 가운데는 노랑인데 이중 천지의 가운데인 중국만 노랑을 쓰고, 조선은 동쪽에 있으니 파랑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고종은 처음으로 황룡포를 입고, 스스로 황제라 부르면서 건양(建陽), 광무 (光武) 등의 독자적인 연호(年號)를 쓰면서 독립국임을 선포합니다. 고종이 황룡포를 오래 입지는 못했지만 조선의 어느 임금보다도 자주정신이 강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지금 청와대는 푸른 기와를 얹은 집이라 해서 청와대로 부르는데 그렇다면 스스로 중국의 변방 또는 속국임을 표시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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