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천재소년 김웅용 그 이후 | ||||||||||||
경향신문 2005년 11월 21일 | ||||||||||||
#‘실패한 천재’라니… “저는 결코 실패하지 않았고 열심히 연구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무슨 연유로 언론에서는 저를 ‘실패한 천재’라고 하나요.” 1960년대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천재소년’ 김웅용씨(42)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이런 하소연을 쏟아냈다. 특히 언론에 강한 불신과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최근에 또 한번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다름 아닌 8살 나이에 인하대에 입학한 송유근군을 언론이 보도하면서 김씨를 다시 언급했던 것. 김씨는 왜 자신이 실패한 천재냐고 반문한다. 그는 자신이 실패한 인생을 살지도 않았고 지금은 자신이 추구하는 길을 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공학박사에 기술사이면서 국토환경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또 연세대와 충북대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치수와 수리학 분야에서 90여편의 논문을 국내외 저널에 발표하는 등 학문적 연구도 활발하다. 이러한 연구로 저명한 학자들이 오를 수 있는 국제인명사전 ‘후즈 후(Marquis Who’s Who in the World)’ 2006년판에도 등재될 예정이다. 그런데 왜 언론이나 사회에서는 툭하면 자신을 ‘실패한 천재’라는 낙인을 붙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김웅용씨는 그 누구보다 천재소년의 길을 걸었고, 지금은 수리학 분야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다만 어린 시절 목표도 없이 이끌려 떠났던 미국 생활을 접고 처음부터 자신의 목표를 다시 세워 자신의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선입견이 천재의 앞길을 막고 그가 가는 길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박사는 “교수를 뽑는다고 해서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하면 과거의 ‘천재소년’이라는 이유로 기피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면서 “이제는 교수가 되려는 계획을 포기하고 더이상 지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잃어버린 10대, 불행했던 시절 8살에 시작된 미국 유학, 남들은 부러워했지만 어린 나이에 홀로 된다는 것은 외로움을 넘어 두려움이었다. 매일 쳇바퀴처럼 꽉 짜여진 일정 속에서 연구소와 대학원 공부를 해야만 했다. 당초 미국 유학은 자신이 어떤 목표를 세우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나사(NASA)측의 초청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었다. 주어진 연구과제…. 김박사는 “나사 연구실에서 일하면서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회의감이 수없이 몰려왔다”면서 “목표도 없이 나사측이 주는 연구과제를 수행하는 지옥같은 나날의 연속이었다”고 회고했다. 당시에는 컴퓨터 이용의 초기 단계여서 그가 하는 일은 결국 컴퓨터가 하는 일을 대신했던 것. 나사측에서는 ‘계산과 예측’에서 천재성을 발휘하는 그의 재능이 필요했던 것이다. 결국 그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목적’없이 이루어진 미국에서의 ‘특권’을 포기하고 그냥 귀국하는 길밖에 없었다. 그에게 보통아이들이 누리는 개구쟁이 시절의 10대는 없었다. ‘박제된 생활’속의 천재. 그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했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졸업장이 없었기 때문에 초등학교부터 다시 다녀야 했던 것. 미국에서의 물리학 박사학위과정 수료도, 나사에서의 선임연구원 근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졸업장이 없으니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 김박사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위해 검정고시를 봐야 했다.
#뒤늦게 찾은 보통사람의 행복 김박사는 미국에서 귀국한 78년을 기점으로 전혀 다른 두 인생을 살았다. 전공도 물리학에서 토목공학으로 바꾸었다. 또 서울에서 공부할 수 있었지만 지방대를 택했다. 그것은 어쩌면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사회에 대한 항의’의 표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당시 저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지방대에서 다시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언론에서는 ‘천재소년이 지방대에 들어갔다’는 식으로 보도를 했어요. 지방대가 뭐 어떻습니까.” 그에게는 ‘간판’보다는 친구가 필요했고 보통사람들의 대인관계가 절실했다. 처음으로 제대로 맛본 대학생활은 그에게 숨통을 터주었다. 그는 어릴 적 누리지 못했던 친구들과의 관계를 찾기 위해 동아리란 동아리엔 모두 가입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과 우정, 그에게는 그 모든 것이 눈물겹게 다가왔다. 영재는 ‘특별한 관심’을 준다고 해서 천재적 재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영재나 천재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을 갖추고 이들이 천재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필요하다. 김박사는 “천재나 영재에 대해 ‘원숭이’ 취급을 해서는 안된다”면서 “자신들의 잣대로 한 인간을 평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누구나 인생은 고독하다지만, ‘천재소년’ 김웅용씨가 살아온 지난 40여년간의 삶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고독한 삶이었다. 이제라도 그를 향한 지나친 관심과 막연한 편견을 거두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김웅용이 걸어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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