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학자 조재삼의 책 ≪송남잡지(松南雜識)≫ 12권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이아[爾雅, 중국 주(周)나라의 주공(周公)이 지은 것으로 전하는 자서 (字書)]≫에서 ‘중주(中州)에 기사(岐蛇)가 있다.’라고 하였는데 주석에서 ‘기사는 머리가 둘인 뱀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바로 손숙오가 숨어서 덕행을 하려고 죽인 뱀으로, 머리가 두 개에 꼬리가 하나다.”
손숙오(孫叔敖)는 춘추시대 초(楚)나라 사람입니다. 손숙오가 어릴 적에 이를 한번 본 사람은 틀림없이 죽는다는 머리가 두 개인 양두사(兩頭蛇) 곧 기사를 보고, 이미 자기는 양두사를 보아 어쩔 수 없이 죽겠지만 또 다른 사람이 보지 않게 하자는 생각으로 양두사를 땅에 파묻었다고 합니다. 그는 죽지 않은 것은 물론 어른이 된 뒤 유명한 어진 관리가 되었습니다.
참고 : ≪교감국역 송남잡지(松南雜識, 강민구 옮김, 소명출판, 2008)≫ 1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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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931. 나라에서 권장한 검은색 두루마기, 못 입겠다 2007/01/27
우리 겨레는 예부터 흰색옷을 주로 입었는데 물론 조선시대 양반들도 대부분 흰색 도포를 입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고종임금은 흰색이 비경제적이라는 까닭에서 검은색 두루마기를 권장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1903년에는 옅은 색 두루마기를 아예 못 입게 하고, 검은색만 입도록 했습니다. 포졸들이 길을 막고 검은 두루마기가 아니면 지나가지 못하게 했고 흰 옷에 먹칠을 하기도 했는데 이는 무리였지요.
결국, 이러한 조치는 단발령만큼이나 민심을 들끓게 했는데 곳곳에서 충돌이 빚어지고 소란이 일었다고 합니다. 급기야 "국모 명성황후의 원수도 갚지 못했는데 흰 상복을 벗는다는 것은 온당치 않다."라는 상소가 올라왔고, 그 뒤에 단속이 느슨해졌습니다. 이는 대한제국의 시인이며, 학자 ·우국지사 황현이 쓴 역사서인 '매천야록'에서 전하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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