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문서에 글씨를 정성 드려 쓰는 “사자관(寫字官)”이란 직책이 있었습니다. 사자관은 외교문서를 관장한 승문원(承文院)에 40명, 임금의 어제(御製)·어필(御筆) 등을 모시고 이를 펴낸 규장각(奎章閣)에 8명이 있었고, 규장각의 자매기관으로 유교 경전의 인쇄 등을 관장한 교서관(校書館)에도 있었던 기술직 관리였습니다.
특히 승문원은 나라의 외교문서를 쓰는 중요한 관청이었는데 외교문서는 정3품 이상의 당상관이 아니더라도 글씨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 쓰도록 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사자관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자관은 지방 고을을 맡아 다스리는 수령을 거치지 않았더라도 4품 이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특권을 주었습니다. 그 사자관의 시작은 추사 김정희와 쌍벽을 이루는 조선시대 명필 석봉 한호(韓濩, 1543~1605)가 그 시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자관들의 서체를 별도로 “사자관체(寫字官體)”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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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734. 일본 술의 신이 된 백제인과 전통주 2006/07/09
보통 사람들은 시바스리걸 따위의 서양술만 고급술처럼 생각하고, 맥주나 와인을 즐겨 마십니다. 상대적으로 우리의 전통술은 거의 맥이 끊겼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전통술은 작은 나라인데도 조선시대엔 650여 종이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또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고구려인들은 스스로 장과 술 등 발효음식을 만들어 즐긴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에 백제인 인번(仁番)이 술 빚는 기술로 일본술의 신이 되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런 우리 술들이 일제강점기 이후 이름도 거의 잊혔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전통술은 향기와 맛이 정말 뛰어나고, 뒤끝이 없으며, 몸에도 아주 좋은 술입니다. 현재 그나마 맥을 잇고 있는 문배주, 송절주, 두견주. 소곡주, 송순주, 이강주, 홍주, 교동법주, 호산춘, 안동소주들을 한번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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