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작곡 오페라 Die Zauberfl?te(마술피리)
Introduction
I. 서문
II. 본문
1. <마술피리>의 간략한 소개
2. 줄거리
3. <마술피리> 초연의 반응
4. <마술피리>의 탄생배경: 쉬타네더(J. E. Schikaneder) 에 대한 잘못된 전설
5. 프리메이슨 교단과 마술피리의 연관성
6. 복잡한 상징과 알레고리로 가득한 <마술피리>
7. 독일의 위대한 징슈필이자 모든 양식의 집적체
III. 추천하는 <마술피리> 음반
IV. References
I. 서문
들어가면서
이 보고서는 이번 수업에 감상할 <마술피리>에 대한 사전 지식을 정리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내용은 개인적인 생각이 담겨 있다기보다는 많은 자료들을 정리하는 가운데에서 발견한 일반적인 <마술피리>의 개요와 줄거리들, 그리고 나름대로 흥미롭게 읽고 또한 적게나마 다른 문헌들과 비교하면서 보았던 부분들을 추려서 정리하였다. 개인적인 의견이 거의 배제되어있기 때문에 참고한 책과 인터넷 사이트를 reference로 첨부하였고, 또한 검색하는 중에 실지로 좋은 오페라 감상을 위한 명반 3가지를 찾아서 그것을 첨부하게 되었다.
전체적인 보고서의 개요로는 먼저 들어가는 글 이후에는 간단한 표로 작성된 <마술피리>에 대한 개요를 보고, 2번에서는 줄거리를 길게 담았다. 3번에서는 <마술피리>의 초연시의 반응을 조사해 보았는데 이 초연을 조사하여 싣게 된 데에는 서로 상반된 의견을 접했기 때문이었다. 이 두 의견 중에서 좀더 자료의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것을 주된 반응으로 삼았다. 4번에서는 흔히 <마술피리>의 탄생배경에 있어 잘못 전해진 전설에 대해 짚었다. 이 부분에서는 오토얀이라는 "모차르트" 전기 작가의 의견이 나중 자료로 비추어 보았을 때 그 배경에 잘못된 부분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5번에서는 모차르트의 프리메이슨 학파 참여설에 따른 해석으로 <마술피리>를 해석하는 요사이의 주장들을 정리했고, 나아가 6번에서는 더 다양했던 상징과 알레고리 해석이 <마술피리>에 있었음을 지적했다.
5, 6번에서는 대본에 관련된 <마술피리>의 특징들을 살펴 보았다면, 7번에서는 <마술피리>의 음악적 특성을 살펴보면서 결국 모차르트의 <마술피리>가 오페라 세리아나 오페라 부파도 아닌 모든 양식의 직접체로서의 징슈필임을 드러냈다. 특히, 모차르트는 <마술피리>를 통해 콜로라투라 아리아에서 민요까지의 다양한 음악과 독일어의 레시타티브를 확립했다는 점도 지적할 만한 부분임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에서는 명반 3선과 참고문헌을 밝혀 놓았다.
II. 본문
1. 마술피리 (Die Zauberflote)
작곡 : 모차르트 (W.A.Mozart 1756-1791)
대본 : 시카네더 (J.E.Schikaneder) 독일어
등장인물 :
밤의 여왕 (소프라노)
파미나 (Pamina, 여왕의 딸) 소프라노
타미노 (Tamino, 이집트의 왕자) 테너
자라스트로 (Sarastro, 이시스와 오시리스신을 섬기는 대제사장)
파파게노 (Papageno, 새를 잡는 사람) 바리톤
파파게나 (Papagena, 그의 정해진 신부) 소프라노
3명의 시녀 (메조소프라노, 소프라노, 소프라노)
모노스타토스 (Monostatos,이시스 신전의 노예 우두머리로 흑인)
신전의 세 수호신 (메조소프라노,소프라노,소프라노)
두 제사장 (테너,바리톤) 무장한 두 사나이 (테너,바리톤) 연설자 (베이스)
때와 곳 : 고대 이집트 아시스와 오시리스의 신전 부근
초연 : 1791. 9.30. 빈 교외의 비덴 극장
주요 아리아 :
지옥의 복수심 내 마음속에 끓고(Der Holle RacheKocht in meinem Herzen)-밤의 여왕 아리아
2. 줄거리
Overture
제1막
제1장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밤의 여왕의 왕국이다. 막이 오름과 동시에 타미노가 커다란 뱀에 쫓겨 뛰어오다가 도와달라는 외침과 함께 바닥에 쓰러진다. 이때 궁전의 문이 열리고 배일을 쓴 세 명의 시녀가 나타나 마술을 부려 뱀을 죽이고는, 기절해 있는 타미노를 보고 그의 수려한 용모에 감탄한다. 서로 그의 용모를 찬미하며 바라보는데, 멀리서 파파게노의 피리소리가 들려온다. 그녀들은 이 사건을 여왕에게 보고하기 위하여 모두 그 자리를 떠난다.
Fritz Wunderlichs(1930.9.26~1966.9.17)-Tamino
http://www.andreas-praefcke.de/wunderlich/recital.htm
겨우 정신을 차린 타미노는 파파게노의 피리소리와 그 옆에 죽어 있는 뱀을 보고 놀란다. 그는 새털로 만든 옷을 걸치고 있는 파파게노가 뱀을 퇴치하고 자신을 구해준 것으로 생각하여 고마워한다. 그리고 자신은 건너편에 있는 한 나라의 왕자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파파게노는 왕국이라든가 왕자, 영토 등이 무슨 말인지 모르고 그냥 신이 나서 자기 자랑을 한다. 자신은 새를 잡는 사냥꾼으로 여왕과 시녀들에게 새를 갖다 바치고 식량과 바꾸어 생활하고 있으며, 이 뱀도 자신이 죽였다고 흥겹게 말한다.
얼마 후 궁정문이 열리고 세 시녀가 다시 나타나, 파파게노가 거짓말을 한 것을 꾸짖는다. 그리고 다시는 말을 못하도록 그의 입술에 자물쇠를 채운다. 그녀들은 뱀을 퇴치한 장본인이 바로 자신들임을 말한 후, 여왕의 딸 파미나의 초상화를 보여준다. 파미나는 지금 악마에게 붙잡혀 있으며 여왕은 딸의 구출을 위하여 무척이나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Dies Bildnis ist bezaubernd sch?n - Fritz Wunderlichs
타미노는 첫눈에 그녀의 미모에 반하여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Dies Bildnisist bezaubernd sch?n)" 라는 노래를 끓어오를 듯한 정열로 부른다. 이때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밤의 여왕이 나타난다. 그녀는 번쩍거리는 왕좌에 앉아 아주 하기 어려운 콜로라투라(coloratura)의 아리아를 부르면서 자기를 소개한다. 그리고 타미노에게 이시스와 오시리스의 두 신을 섬기는 고승 자라스트로에게 빼앗긴 딸을 구출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녀는 "너야말로 내 딸에게 자유를 갖게 할 자다 (Du du du wirst...)"라고 노래하며, 만약 자라스트로로부터 파미나를 되찾아올 수 있다면 그녀와 타미노를 결혼시키겠다고 약속한다. 타미노는 생명을 다해서 파미나를 구해 올 것을 맹세한다. 타미노가 신에게 기도드릴 때, 파파게노가 나타난다.
세 명의 시녀는 파파게노가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며 입에 잠궜던 자물쇠를 풀어주고, 한 시녀가 타미노에게 여왕의 선물인 마술피리(마적)를 전한다. 이 피리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주며, 불행한 사람에게는 행운을, 외로운 사람에게는 연인을 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파파게노에게 동행할 것을 명령하고는 그에게는 은방울을 준다. 소년 셋이 자라스트로의 성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제2장
무대는 이집트에 있는 자라스트로의 성으로 바뀐다. 파미나는 평소 그녀에게 흑심을 품고 있던 흑인 모노스타토스의 감시를 받고 있었는데, 지금 그녀는 탈출을 시도하다가 그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모노스타토스는 이번 기회에 그녀를 겁탈하려고 작정을 한다.
이때 파파게노의 소리가 들리고 마치 괴물처럼 생긴 새의 모습을 한 그가 나타나자 모노스타토스는 겁에 질려 줄행랑을 친다. 잠시 후, 기절했던 타미나가 정신을 차리게 되고 파파게노로부터 그녀에게 매료된 젊은 왕자가 그녀를 구하러 이곳에 왔다는 말을 듣는다. 그들은 "그야말로 나의 연인 (Bei Mannern welche Liebefublen)"라는 이중창을 부른다.
제1막
제3장
장면이 바뀌어, 자라스트로의 사원 앞이다. 세 소년의 안내로 타미노는 이 곳에 당도한다. 그는 자신 앞에 놓여 있는 세 개의 문을 발견한다. 그가 첫째, 둘째의 문을 두들기자 '물러서라'는 경고의 소리가 울린다. 그러나 그가 세 번째 지혜의 문으로 다가서자, 한 사제가 나타나더니 자라스트로에 대한 정보를 전해준다. 즉 그는 여왕이 묘사한 것과 같이 그렇게 사악한 괴물 이 결코 아니며 오히려 고귀한 이상을 갖고 있는 매우 고상한 성품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파미나는 안전하니 염려할 것 없다고 말해준다. 타미노는 그녀의 안전을 감사하며 피리를 부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플루트 아리아 (Floten Arie)"이다. 이 아름다운 선율에 숲속의 모든 동물과 새들이 노래를 하고, 파파게노도 이 피리소리를 듣고 그의 행방을 쫓아 급히 서두른다.
Tamino & Sprecher / Floten Arie
파파게노가 자유로이 "빠른 발걸음, 민첩하고 대담한 용기(Schnelle Fusse, rascher Mut! )" 라는 노래를 부르며 파미나를 데리고 들어온다. 그러나 이 노랫소리를 듣고 달려온 모노스타토스가 노예들을 불러 파미나를 결박하려 한다. 파파게노는 얼른 은방울을 꺼내어 그들을 향해 흔든다. 그러자 갑자기 그들은 그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사라진다. 두 사람은 안심하며 "착한 사람은 이 방울로 행복을 갖네 (Konnte jederbrave...)"라고 노래한다.
얼마 후, 군중들의 환호와 함께 자라스트로가 등장한다. 파파게노는 놀라 도망치려 하는데, 파미나가 그에게 상황을 설명해 보자는 제안을 한다. 그녀는 스스로를 낮추면서 겸손하게 도망가려고 한 것에 대해 용서를 빈다. 이때 모노스타토스가 타미노를 끌고 온다. 여기서 타미노와 파미나는 그들의 만남을 기뻐하고, 화가난 흑인은 타미노와 파파게노의 처벌을 부탁한다. 그러나 자라스트로는 오히려 모노스타토스가 매를 맞아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게 되고, 그들은 시련의 방으로 가야 하는 판결을 하지만 타미노는 그녀를 만난 기쁨에 그 시련을 참아낼 각오를 한다.
제2막
이시스 사원 밖의 묘지이다. 자라스트로는 엄숙한 표정으로 사제들에게 그 젊은 두 연인이 겪지 않으면 안될 험난한 시련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은 사악한 밤의 여왕의 교만을 좌절시키려 한다.
O Isis und Osiris
합창과 함께 "오, 이시스 오시리스 신이여 (O,Isis und O'siris)"를 노래한다. 타미노 왕자는 정의감과 덕이 있는 자로, 그의 혼은 먼저 시련을 받음으로써 깨끗하게 되어야 한다며 그들이 시련을 이겨내기를 기도한다. 사원의 출입문이다. 두 사람의 사제가 타미노와 파파게노에게 주의를 주면서 여자들의 유혹을 경계하라는 노래를 부른다. 얼마 후, 밤의 여왕을모시는 세 시녀가 들어와서 사제들 곁에 있는 타미노와 파파게노를 유혹한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그러자 사제들이 세 명의 시녀들을 쫓아낸다. 사제들은 두 사람이 첫번째 시험을 통과한 것을 축하한다.
다시 무대가 바뀌어, 아름다운 화원의 휘황한 달밤이다. 꽃이 만발한 가운데 파미나가 누워 자고 있다. 모노스타토스가 음탕한 생각으로 그녀의 아름다움을 훔쳐보고 있다. 그러자 그 때 갑자기 천둥과 함께 밤의 여왕이 나타나 "지옥의 복수가 내 마음을 불타게 한다 (Der H?lle Rache Kocht inmeinem Herzen)" 라는 아리아를 부른다. 이 노래는 매우 부르기 어려운 트레몰로 곡이다. 그녀는 잠에서 깨어난 파미나에게 단도를 건네주면서 어머니를 정녕 사랑한다면 자라스트로를 죽이라고 명령을 내리면서 그렇지 않으면 평생 의절하겠다고 위협한다.
Der H?lle Rache
밤의 여왕이 떠난 후, 파미나는 도저히 자라스트로를 죽일 수 없다는 생각에 잠겨 고민한다. 이때 모노스타토스가 그녀의 손에 있는 칼을 빼앗고는 이 음모를 자라스트로에게 알리겠다고 위협하면서 파미나의 사랑을 요구한다. 거기에 자라스트로가 나타나 모노스타토스를 쫓은 후, 그녀를 안심시킨다. 그리고 그는 부드럽게 "이 신성한 전당에서는 복수를 생각할 수 없어 (In diesen be il'gen Hallen kennt man die rache nicht)"라는 아리아를 부르며 파미나와 함께 퇴장한다.
In diesen heil'gen Hallen
제2막
장면은 넓은 방으로, 타미노와 파파게노는 아직도 가혹한 시련을 겪고 있다. 사제들이 침묵의 시련을 명령한 것이다. 이제 그들 둘만 이 남게 되고, 파파게노는 물 한 방울도 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는데 주름 투성이의 한 늙은 노파가 물이 든 쟁반을 들고 다가온다. 파파게노는 곧 말상대로 삼고 이야기하자, 노파는 자기가 파파게노의 애인이라면서 이름은 파파게나, 나이는 18살이라고 소개를 한다. 그러나 그때 천둥소리가 울리고 파파게나는 서둘러 달아나 버린다. 구제된 파파게노는 다시는 입을 열지 않아야겠다며 안도한다.
세 소년이 등장해서 음식과 마실 것을 가져와서는, 자라스트로에게 빼앗겼던 아적과 은방울도 돌려준다. 파파게노는 기뻐하며 음식을 먹기 시작하고, 타미노는 피리를 분다. 이 소리에 끌려 파미나가 등장하는데, 이것이 타미노의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었다. 침묵의 시련을 극복하고 있는 그로서는 그녀의 어떠한 질문에도 침묵을 지켜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아랑곳없이 그가 침묵만을 고집하는 것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고 슬픈 아리아 "아, 가버린 사랑이여 (Ach, ich f?hl's)"를 부르고 달려 나가버린다.
Ach, ich f?hl's
파미나, 타미노, 자라스트로의 아름다운 3중창이 어우러지는 장면이 짧게 연출되는 가운데 자라스트로는 시련을 견디어야 하는 타미노를 격려하고, 파미나는 사랑이 떠났다고 서러워한다. 타미노는 새로운 시련에 임하려 떠나고, 파파게노는 타미노를 찾기 위해 등장한다. 그는 자신의 소원은 사랑스런 아내라고 노래한다. 이때 그 노파가 다시 나타나서, 그것에 대한 대답을 하려고 든다. 무척 희극적인 장면으로, 그 노파는 그에게 자기 손을 잡고 사랑을 맹세하라고 요구한다. 파파게노가 그대로 따랐더니, 순간 그 늙은 노파는 통통하게 살이 찌고 예쁜 옷차림의 젊은 여자로 변한다. 이 또한 그에게는 가혹한 시련이 아닐 수 없다. 파파게노는 그녀를 보고 유혹을 받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때도 그녀는 한 사제에 의해서 아직 시련이 끝나지 않았음을 이유로 끌려가고 만다.
장면은 작은 정원으로 바뀐다. 파미나가 타미노의 냉정한 태도를 오해한 나머지 자살하려고 하는데, 하늘에서 날아온 세 소년이 그것을 말리며 타미노는 파미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전한다. 진정한 파미나는 소년들과 노래를 하고, 소년들은 그녀를 타미노에게 인도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무대는 어두운 굴속이다. 타미노는 마지막 시련에 대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있다. 두 사제가 나타난 후, 무장한 사람들의 허락을 받고 파미나가 등장한다. 두 연인은 기쁨의 해후를 한다. 그들은 포옹을 한 채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참으로 아름다운 장면이 연출된다. 여기서 파미나는 마적의 유래를 말하게 된다.
그녀의 아버지가 심한 폭풍이 몰아치던 날에 천년 묵은 떡갈나무를 찍어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마지막 시험 관문인 불과 물을 통과하는데, 아무런 해도 입지 않고 무사히 빠져 나온다. 그사이 파파게노는 자기의 은방울을 흔들며 파파게나를 애타 게 찾다가, 그만 실망한 나머지 목을 매려고 한다. 그가 나무에 목을 매려 고 할 때 세 소년이 나타나 그에게 마법의 방울을 흔들어 보라고 말한다. 방울소리와 동시에 파파게나가 나타난다. 그들 두 사람은 포옹을 하고는 "파- 파-파-파-파-게노"라는 경쾌한 이중창을 더듬거리며 부른다. 그들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아예 가족 계획까지 세우는 희극을 연출한다.
Papageno & Papagena
마지막 장면이다. 밤의 여왕은 모노스타토스와 그녀가 거느리고 있는 세 명의 시녀들을 대동하고 자라스트로의 사원에 침입한다. 복수를 하기 위해왔지만 항상 선은 악을 이기는 법인지, 갑자기 뇌성벽력이 일더니 이들 다섯 명은 지옥으로 떨어져 버리게 된다. 오페라의 승리를 찬양하는 합창이 울려 퍼지고, 태양이 빛나는 대사원에서 자라스트로는 "밤이 지나갔다"고 선포한다. 모두가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한다.
3. <마술피리> 초연의 반응
1791년 9월 30일, 빈의 교외에 있는 프라이하우스 테아터(Theater im Freihaus auf der Wieden)에서 작곡가 자신의 지휘로 막을 올린 이 오페라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엔 불행히도 오늘날과 같은 정규적인 신문의 리뷰가 시작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공연에 대한 공식적인 정보는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오페라를 관람했던 사람들이 남긴 <마술피리>의 공연이 빈의 관객들에게 얼마나 굉장한 사건이었던 가를 알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모차르트 자신이 오페라가 개막된 지 1주일 뒤 그의 처 콘스탄쩨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타낸 성공에 대한 지극한 만족감이 가장 생생한 증언이 되고 있다. "지금 마악 오페라에서 돌아왔소. 언제나처럼 만원이었소. 항상 그랬듯이 이중창인 <남자와 여자> 그리고 파파게노의 종(glockenspiel)소리는 되풀이해야만 했다오. 제 2막의 소년들의 트리오도 역시. 그러나 나를 가장 즐겁게 하는 것은 '침묵의 인정'이라오. 이제 당신은 이 오페라가 더욱 높은 평가를 받게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거요."
다음날도 극장은 여전히 만원이었다. "비록 토요일은 항상 나쁜 밤이지만 오페라는 또다시 만원인 극장에서 언제나처럼 대단한 갈채와 앙코르 속에서 공연되었소!"
한 달도 되기 전에 오페라는 결국 거의 매일 공연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모차르트는 당시 궁정의 음악감독이었던 안토니오 살리에리와 그 자신의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도주>에서 콘스탄쩨 역을 맡았던 살리에리의 연인 카테리나 카발리에리를 초청했다.
"그들이 얼마나 황홀했는지 당신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거요. 나의 음악뿐 아니라 리브레토와 그 외 모든 것을 그들이 얼마나 맘에 들어 했는가를 당신이 안다면! 그들은 이 작품이 가장 장대한 축제를 위해, 그리고 가장 위대한 군주 앞에서 공연할 가치가 있는 '그랜드 오페라'라고 말했소. 그들은 자주 공연을 보러 왔다오. 이보다 더 아름답고 즐거운 쇼는 여태 본 적이 없었노라면서. 살리에리는 최고의 주의력을 가지고 경청하고 지켜봤소. 그리고 서곡에서부터 마지막 코러스에 이르기까지 그가 "브라보!" 또는 "벨로(bello, 즉 멋져)"라고 소리치지 않은 곡은 하나도 없었다오. 그들은 나의 친절에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소."
이렇게 그는 콘스탄체에게 쓰고 있다. 살리에리와 모차르트의 적대관계에 대한 숱한 전설들에 익숙해 있는 독자들에게 이 대목은 참으로 흥미 있는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오페라가 얼마나 전례없는 성공을 누렸던가는 비교적 좋은 좌석을 얻기 위해선 개막 세 시간 전에 극장 앞에 와 있어야 했다는 당시의 보고에 의해서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처음 2주 동안 사람들은 7시에 시작하는 공연을 보기 위해 5시에 극장에 왔는데, 사실상 수백 명의 관객들이 표를 사지 못해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마술피리>의 대본작가로, 최초의 파파게노 역을 맡기도 했던 에마누엘 쉬카네더가 프라이하우스 테아터를 관리한 10년 동안 이 극장에서 <마술피리>는 223회의 공연을 기록했다. (주 - 빈의 공연 통계에 의하면 1879년 이전의 90년 동안 <여자는 다 그런 것>은 75회, <피가로의 결혼>은 331회, <돈 죠반니>는 호프테아터(hoftheater)에서 476회, 교의 극장에서 180회의 공연을 기록한 데 비해 <마술피리>는 호프테아터에서 354회, 교외 극장에서 376회를 공연했다.) 어떤 평자는 확실히 1790년대에 이 오페라의 피아노 - 성악 스코어가 마인츠와 만하임, 오펜바흐, 라이프찌히, 베를린, 그리고 브룬스비크에서 출판되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러므로 1년 안에 그리고 같은 해에 여섯 번이나 출판되었으니, 그야말로 음악문학의 역사상 여태까진 전례가 없던 기현상이었다."
그러는 동안 <마술피리>는 독일의 다른 극장에서도 재빨리 채택하게 되어 1800년 무렵엔 거의 65개 지방에서 공연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1801년엔 모스크바와 파리에 상륙했으며,(프랑스의 제작은 <이시스의 신비>란 제목의 무자비하게 손질된 불구형의 버션이었다.) 1811년엔 런던, 1812년엔 스톡흘름, 1816년엔 코펜하겐과 밀라노, 1829년엔 브뤼셀, 그리고 마침내 1833년엔 뉴욕에까지 선보이게 되었다.
물론, 아래와 같은 또 다른 평가도 접할 수는 있었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는 1791년 9월 30일, 즉 모차르트가 죽기 몇 주전에 비엔나의 교외극장에서 초연되었다. 공연 상과는 처음에 신통치 않았다. 베를린의 <음악주간지> 특파원은 "새로운 기계희극 <마술피리>를 궁정음악가 모차르트가 많은 수고를 하여 음악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는데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것은 작품의 내용과 언어가 지나치게 형편없기 때문이었다"라고 간결하게 보고하고 있다.
그후 <마술피리>가 애호되는 가극 레파토리 속에 들어갔을 때도 대본에 대한 비판은 그치지 않았다. 마술가극, 사치성 기계예술, 동양의 영롱한 분위기, 신비적이고 상징적인 표상 '프리메이슨' 비밀결사의 기본사상 등 많은 반론 때문에 의견이 통일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초연의 반응은 1991년 DECCA에서 녹음한 <마술피리>음반에 실린 소개지에 개재된 내용인데 신빙성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글을 쓴 이의 성명 표기조차 되어있지 않다. 이 음반은 Wienna Philharmoniker가 연주했고 지휘자는 Sir Georg Solti(쏠티 경)이다. 우리에게는 조수미가 밤의 여왕을 맡았기에 잘 알려져 있다.
4. <마술피리>의 탄생배경: 쉬카네더(J. E. Schikaneder)에 대한 잘못된 전설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로서, 그의 모든 오페라 가운데 가장 심오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마술피리>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 대해선 오랫동안 잘못된 전설이 유포되어 있었다.
즉, 전적으로 평판이 나쁜 인물로 극장계의 방랑자 생활을 영위해 온 에마뉴엘 쉬카네더는 빈의 교외에 있는 '목조창고보다 더 나을 게 없는' 극장의 더러운 극단을 통솔하는 디렉터였다. 거기서 그는 빈의 대중에게 가장 저급한 취향의 쇼를 보여주면서 그 자신 자주 극중의 어릿광대 역을 연기하곤 했다. 1791년 초에 그는 절망적인 재정적 곤경에 처하게 되자, 프리메이슨의 형제요 친구인 모차르트에게 와서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파멸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자기와 더불어 오페라 한 곡을 만들자고 간청했다. 언제나 친구를 도울 용의가 돼 있었던 모차르트는 마지못해 동의하고 거의 문맹에 가까운 쉬카네더에 의해 마련된 리브레토를 가지고 다른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 음악을 작곡했다는, 대강 이런 이야기였다.
이것은 모차르트 연구가 오토 얀이 그의 방대한 '모차르트 전기'에서 밝힌 것인데, 그의 기념비적인 저작의 권위가 너무나 막중했기 때문에 전혀 의심 없이 받아들여져서 널리 유포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이야기는 역사적으로도 진실이 아닐 뿐더러 쉬카네더를 위해선 참으로 불공평한 처우이며 통탄할 만한 불명예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최근까지 오페라를 논하는 글에서 자주 이같은 이야기가 아무런 검증 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최근에 이르러 모차르트 학자들의 집요한 추적에 의해 쉬카네더와 또 <마술피리>의 창조를 주도한 상황에 다른 빛을 던져주는 사실들이 거의 파헤쳐지게 되었다.
사실, 에마뉴엘 쉬카네더는 더할 수 없이 흥미진진한 전기의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는 인물이었다. 모차르트보다 다섯 살 연상이었던 그는 하인의 아들로, 일종의 만능 예술가라 할 만했다. 바이올리니스트로 이력을 시작한 그는 1773년에 극단원이 되었는데, 처음엔 음악가로 시작해서 다음엔 배우, 가수, 무대감독 그리고 시인도 겸했으며 작곡도 하고 발레 안무까지 했다. 그는 문맹이기는커녕 징슈필과 오페레타의 가사도 쓰고 작곡도 했으며, 햄릿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배역을 연기했다. 특히 그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능했으며, 사실 햄릿은 그의 가장 유명한 배역이었다. 1778년에 쉬카네더는 자신의 연극단 디렉터가 되어 그의 아내와 더불어 주역을 맡았는데, 1780년 9월 ∼1781년 2월에 이 극단은 잘쯔부르크에서 징슈필뿐만 아니라 셰익스피어와 괴테 및 보마르셰(<세빌리아의 이발사>) 등을 공연했다. 쉬카네더가 모차르트 가를 만나게 된 것이 이때였다. 그는 이 가족들과 너무나 친해졌기 때문에 레오폴트와 볼프강, 그리고 모차르트의 누나에게 자신의 모든 공연을 볼 수 있는 무료 입장권을 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모차르트는 쉬카네더가 제작한 코미디에 삽입되는 독일의 아리아를 작곡해주기도 했다.(지금은 남아 있지 않음)
1784년에 쉬카네더는 황제의 초청으로 빈에 와서 케른트너토어 테아터에서 제작 활동을 하게 되는데, 그의 첫 작품은 모차르트의 <후궁으로부터의 도주>였다. 그러나 얼마 안돼 그가 극단 여배우들과 복잡한 염문으로 인한 싸움에 휘말리게 되자 그의 극단은 해체되었다. 그의 처와 다른 단원들은 새 단체를 결성해서 빈을 떠났고, 그는 남았다. 그는<피가로의 결혼>을 각색해서 리허설에 들어갔지만, 마지막 순간에 황제의 금지로 공연은 좌절되었다. (아마도 모차르트가 보마르셰의 희곡에 친숙하게 된 것은 이 각색본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국립극장에서 배우 겸 가수로 활약한 후 쉬카네더는 새 극단을 조직해서 순회공연 길에 올라 1786년엔 어린 시절을 보낸 레겐스부르크에 정착했다. 성공적인 3년을 보낸 뒤 그는 여기서도 다시 고위층의 '보호자'를 가진 두 여배우에 의해 발생한 사건 때문에 곤경에 처하게 된다. 마침 이때 그와 사이가 틀어졌던 아내가 파트너인 배우 프리델의 죽음으로 인해 물려받게 된 테아터 아우프 데어 비덴으로 그를 초청해서 그는 빈으로 오게 된다. 여기서 그는 새 극단을 조직했다.
테아터 아우프 데어 비덴은 슈타르헴베르크 공에게 속한 면세 복합 건물인 '프라이하우스(Freihaus)'의 일부였다. 이것은 '목조 창고'라는 전설과는 거리가 먼 석조 건물로, 두 단의 칸막이 좌석과 두 줄의 회랑을 지닌 거의 1,000명의 관객을 수용하는 규모였다. 쉬카네더는 35명 규모의 오케스트라와 30명으로 된 코러스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는 빈 교외의 다른 인기 있는 극장과 경쟁해야 했기 때문에 코미디와 스펙터클물을 강조하고, 정교한 무대의 기계장치와 발연물 및 동물들까지 효과로 사용했다. 그는 상당히 성공적으로 극장을 운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그가 <마술피리>를 공동제작하기 위해 모차르트에게 접근했을 때 절박한 금전적 위기에 처해 있었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다.
5. 프리메이슨 교단과 <마술피리>의 연관성
당시 질병과 빚더미에 시달리고 있던 모차르트는 쉬카네더가 고안하고 있던 여흥물의 원시적 유형에 점차 참을 수 없게 되어 보다 고귀하고 깊은 관념, 특히 악에 대한 선의 승리와 인간의 형제애에 대한 프리메이슨적 신념을 도입할 것을 주장하면서 플롯의 변경을 강하게 요구했다. 그리고 이 견해에 쉬카네더는 쉽사리 동의했는데, 그 자신 이같은 진기함은 대중들을 즐겁게 하고 이러한 관념은 세력 있는 프리메이슨 단원들을 기쁘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까닭이다. 그에게는 결과적인 모순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쨌든 그들은 결국 동화적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이니 논리적 이야기의 일관성을 유지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대해 모차르트의 직접적인 의견이 밝혀진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충분히 근거 있는 견해가 아닌가 싶다.
동시대의 많은 다른 예술가들 및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모차르트 역시 프리메이슨 교단의 인도주의적이고 민주적인 이상에 강렬하게 이끌렸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는 단호하게 반대했지만, 그 아들 요제프 2세의 용인하에 프리메이슨 교단은 1770년대와 80년대의 빈에서 두드러진 존재가 되어 있었다. 모차르트는 1784년(12월 14일)에 프리메이슨에 가입했으며 특별히 프리메이슨을 위한 작품을 여러 편 작곡했다. 쉬카네더는 1788년에 모차르트가 속한 지부보다 훨씬 격이 떨어지는 저급한 지부의 단원이 되었다. 사실 <마슬피리>의 정교한 무대장치를 위한 비용은 프리메이슨 형제들의 재정적 후원에 도움을 입었다는 얘기까지 있었다.
한편, 음악적인 의미 외에 이 '마술피리'는 프리메이슨 비밀결사와 항상 논란이 되어왔다. 프리메이슨은 18세기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자유, 평등, 박애를 모토로 한 비밀결사로 알려져 있는데 모차르트도 그 조직원의 한 사람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이 작품을 쓰면서 프리메이슨의 이상과 비밀 의식을 교묘히 나타내고자 했다는 이야기인데, 어떤 연구가에 의하면 각 등장인물이 그 당시 프리메이슨과 연관된 사람들을 상징하고 있다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즉, 타미노는 결사의 보호자 요셉 2세, 파미나는 오스트리아의 국민, 자라스트로는 프리메이슨의 지도자 이그나쯔 폰 보른, 밤의 여왕은 결사를 탄압했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모나스타토스는 프리메이슨의 적대관계였던 예수회를 상징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진위야 어떻든 오페라는 프리메이슨의 심벌과 이 교단의 특유한 의식에 대한 언급으로 가득 차 있다.
주인공인 완자는 입회자들의 서클에 속하기를 원한다. 그는 일련의 시험을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 오페라의 끝에 가서 그는 이시스와 오시리스 교단의 승려들 가운데 일원이 된다. 왕자의 입회의식과 그에 동반하는 많은 상징들은 프리메이슨 교단에 속한 것이다.
이를테면 신비로운 3의 숫자는 오페라의 도처에서 여러 방식으로 강조되는데, 이 3의 개념은 프리메이슨의 이상인 아름다움, 힘, 지혜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오페라는 E♭장조(세 개의 ♭)로 시작되고 끝 맺는다. 서곡 속엔 불길한 세 개의 화음이 있으며, 세 명의 여인들, 세 정령들, 타미노가 두드리는 세 개의 문, 그리고 타미노를 추격하는 거대한 뱀마저 세 토막으로 잘려져 살해된다. 이집트적 장치 역시 명백히 프리메이슨에 관계된 것이며, 리브레토의 초판 타이틀 페이지에는 프리메이슨적 도안들이 공공연히 인쇄되어 있다.
<마슬피리>에서 프리메이슨의 상징주의와 도덕성이 본질적으로 주제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오늘날 보편적인 견해가 되어 있지만, 그러나 기묘하게도 이 오페라가 공연된 초기엔 오페라에 대한 프리메이슨적인 해석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것은 당시의 사람들이 오페라의 프리메이슨적 연관을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반대로 모차르트의 당대엔 귀족의 서클이나 부르주아 계급에게 모두 프리메이슨단에 대해 신비로운 것이라곤 전혀 없었다. 대중들은 프리메이슨 지부의 기장을 착용하고 다녔으며, 프리메이슨의 심벌은 보석에 새겨졌고 손수건에 수놓아졌을 뿐 아니라 장식품으로도 널리 애용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차르트가 <마술피리> 속에서 프리메이슨의 비밀을 폭로했기 때문에 프리메이슨의 단죄를 받아 독살되었다는 설이 한동안 상당히 유력했고, 오늘날도 역시 그걸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당시엔 아무도 <마술피리>를 프리메이슨의 비밀을 폭로한 배신행위라고 해석하진 않았다. 오히려 이와 같은 견해는 프리메이슨이 오스트리아 당국에 의해 금지되고 박해를 받아 대부분의 지역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어 대중의 의식 속에서 사라져간 시기에 생겨난 것이었다.
6. 복잡한 상징과 알레고리로 가득한 <마술피리>
사실 <마술피리>는 복잡한 상징과 알레고리로 가득 차 있어 표면적인 행위나 현상 밑에 깔린 이론상의 여러 요소에 대해 마치 비밀암호를 해독하는 작업처럼 숱한 해석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아마도 이 오페라가 수년 내에 그토록 굉장한 대중적 인기를 획득하지 않았다면 그 같은 구구한 해석들이 난무하진 않았을 것이다.
1790년대 동안 라인란트 지방에선 당시 들끓고 있던 프랑스 혁명의 시각에서 이 작품을 해석하는 경향이 유력했다. 즉 밤의 여왕은 전제군주 루이 16세를 상징하고, 타미노는 인민을, 파미나는 전제정치의 딸인 자유를, 그리고 파파게노는 부유한 계급을 상징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모든 등장인물과 줄거리의 세부에 이르기까지 자코벵식 해석이 쏟아져 나왔다. 결국 이 오페라의 근본사상은 보다 나은 입법의 지혜를 통해 오랜 전제주의의 속박으로부터 프랑스 인민들을 해방시킨다는 것으로, 모차르트와 쉬카네더는 자유를 위한 투사가 되는 것이었다. 마인츠의 한 자코벵 당원은 파파게노의 유명한 아리아 '나는 새잡이'에다 자코벵식 가사를 붙인 노래를 만들어 유행시키기도 했다.
한편 구체제를 옹호하는 오스트리아에선 즉각 이와 반대되는 해석이 유포되었다. 밤의 여왕은 자코벵 철학을 대변하고, 그 딸인 공화국은 제국의 왕자에 의해 구출되어 정통성을 회복한다는 식이었다. 후에 모차르트 시대 프리메이슨의 부침에 대한 알레고리로 이 작품을 해석한 견해도 나왔는데, 즉 밤의 여왕은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모노스타토스는 제수이스트들, 타미노는 요제프 2세, 파미나는 오스트리아 인민들, 그리고 자라스트로는 저명한 과학자로 빈 프리메이슨의 존경받는 지도자인 이그나츠 폰 보른을 대변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모차르트와 쉬카네더가 이 모든 구구한 해석에 대해 그들의 의견을 밝혔다는 기록은 아무 데도 없다.
7. <마술피리>, 독일의 위대한 징슈필이자 모든 양식의 집적체
다만 모차르트는 단순히 독일의 징슈필인 위대한 오페라 한 편을 창조했을 뿐이었다. 징슈필은 오페라 세리아나 오페라 부파처럼 스타일상의 일관성을 지니고 있지 않았으나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는 징슈필이면서도 기실 모든 양식의 집적체라 할 수 있었다. 거기엔 민요풍의 단순한 소곡들과 엄청난 기교적 어려움을 지닌 눈부신 아리아들이 공존하며, 부파적인 곡들, 정교한 트리오들, 그리고 '서정비극'에나 적합한 엄숙한 행진곡도 있다. 프로테스탄트의 코랄이 바로크의 대위법적 방법으로 처리되었으며, 이것은 <이도메네오> 이래 모차르트의 오페라에선 최초의 장대한 합창이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새롭게 주조된 '모차르트다움(mozarteam)'이다. 그의 오페라에서 처음으로 인물들은 개인적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유행이나 상징이 되고 있으며, 오페라 자체가 하나의 알레고리요, 그 주제는 관념이라 할 수 있다. 즉 어둠을 정복하는 빛, 악에 대한 선의 승리, 덕과 형제애의 승리가 뚜렷이 부각되는 것이다.
제2막의 자라스트로와 승려들의 장면에서 종교적 톤(tone)이 도입되는 것은 모차르트의 무대작품에선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극장에서 코랄을 사용한 것은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타미노가 자라스트로를 찾는 동안 제 1막의 피날레 부분의 길게 진행되는 장면에서 모차르트는 레치타티보에 수반되는 독일어를 처리하는 방법을 확립했는데, 이것은 중요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차르트 음악의 위대한 '내면성' - 심각한 것을 리트 같은 직접적 표현과 결합시킨 - 은 독일의 오페라에선 전혀 새로운 요소였다.
베토벤도 거듭 찬탄했듯이 과연 모차르트는 <마술피리> 속에서 모든 종류의 형식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북독일의 코랄풍 전주곡으로부터 푸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콜로라투라 아리아에서부터 민요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형식을 <마술피리>가 내포한 심원한 도덕적, 윤리적 특질은 독일의 음악가에게뿐 아니라 작가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사랑과 보편적 우정의 찬양은 기실 독일 예술의 그 시대에 특별히 민감한 주제였다.(베토벤의 <제 9번 교향곡>은 바로 이같은 주제를 천명한 것이었다.) 괴테는 <마술피리>에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이 오페라의 후편을 쓰기까지 했지만 애석하게도 리브레토는 완성되지 못한 채 단편으로만 남아있다. 오페라의 심오한 내용뿐 아니라 음악의 특수한 성격은 베토벤의 <피델리오>와 독일의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오페라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바그너도 지적했듯이 진실로<마술피리>는 '최초의 위대한 독일 오페라'였다. 그리고 초연 200주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마술피리>는 여전히 가장 위대한 오페라의 하나로 남아 있는 것이다.
III. 추천하는 <마술피리> 음반
모차르트 : 오페라 마술 피리 (Die Zauberflote) K.620
- 모차르트의 오페라 중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오페라 중에서도 단연 으뜸인 뛰어난 작품이다. 스토리 라인도 복잡하고 환상적인 무대 세트와 악곡으로 인해 언제나 사랑 받는 작품이다. 이 오페라는 징슈필(singspiel) 이라고 하는데, 연극처럼 대사가 있는 음악극을 말한다. 말년에 작곡된 이 곡은 그가 가진 내면 세계와 음악성이 그대로 담겨 있다. 이 작품의 한가지 특징은 free mason (세계주의 운동의 비밀 결사 단체로 진리, 성실, 신의, 국제적 형제애를 신조로 한다) 사상이다. 여기에 나오는 기묘한 의식 장면은 이런 밀교적 프리메이슨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바탕이야 어쨌든 종합 예술로서의 오페라의 모든 성질이 복합된 매력적이고 매혹적이며 감동적인 오페라이다.
1.
지휘자 게오르그 솔티(Georg Solti)
악단 빈 필하모닉(Wiener Philharmoniker)
출연 로렌거, 도이데콤, 버로우즈, 디스카우, 프레이, 탈벨라
레이블 DECCA
serial No. 414 568-2 3CD
녹음연도 <69>
: 최고의 연주로 항상 각광받는 음반이다. 악곡이 가진 내용과 상태를 너무도 잘 파악하여 듣는 이를 끌어들이며 헤어나오지 못하게 한다. 이 음반의 명성에 결정적인 역할은 한 인물이 밤의 여왕을 맡은 도이데콤이다. 이 음반으로 도이데콤은 역사상 최고의 밤의 여왕으로 추앙받으며 또한 불세출의 콜로라투라로 레코드사에 남게 되었다.
2막의 가장 유명한 아리아인 "지옥의 복수 내 맘속에 끓고" 는 도저히 사람의 목소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초절 기교 를 선보이고 있다. 자신의 목소리를 악기 취급하여 부르는 이 아리아는 그 이후 다른 소프 라노들과는 비교가 안되는 불멸의 가창으로 남게 되었다. 이 아리아는 단순히 기교를 앞세워서는 전혀 그 맛을 느낄 수 없고 딸의 손에 검을 쥐어주며 살인을 강요하는 비정상적인 심리 상태를 잘 파악하여야 곡이 살아난다. 이 때문에 더더욱 도이데콤은 돋보인다. 또한 이 음반의 다른 배역들도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참여했기 때문에 그 진용은 지금도 상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다.
국내 카탈로그엔 솔티의 지휘와 빈 필의 연주로 다른 음반이 나와있는데, 여기엔 우리의 조수미가 밤의 여왕을 맡고 있다. 그런데 이 음반을 잘못 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이 음반은 막강한 실력을 가지고도 밤의 여왕의 심리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조수미가 망쳐놓았기 때문이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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