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과를 먹으려면 사과꽃이 열매를 맺어 수정을 해야 하고 수정하려면 벌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많은 양의 살충제를 씀으로써 벌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대신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수정을 할 수밖에 없고 그러려니 엄청난 인건비가 들었지요. 그 때문에 호르몬제를 써서 수정하도록 했는데, 이는 과일을 무르게 하여 상품성을 떨어뜨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벌이 꽃의 꿀을 먹으며 수정했을 때는 과일 모양이 아주 좋아지고, 수정률도 매우 높다고 하지요.
우리 겨레가 예전 밭에 콩을 심으면 날아다니는 새와 기어다니는 벌레와 함께 먹으려고 한 구멍에 세 알씩 심었다는 얘기 그리고 감나무에 까치밥을 남겨주는 정신과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는 것이 아닐까요? 자연과 이웃과 함께 살았던 우리 겨레의 철학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입니다.
1959년 3월 부여 군수리에서 오늘날 좌변기 같이 길쭉하게 생긴 변기로 짐작되는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조선시대 임금이 쓰던 매우틀과 비슷한 면도 있습니다. 아마도 방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일을 볼 수 있도록 고안된 것으로 보입니다. 또 양쪽에 손잡이가 달려있는 것으로 보아 일을 본 뒤 변기를 들어 올려 내용물을 버렸지 않을까요? 궁궐이나 절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썼을 가능성이 있는 것인데 남성 휴대용 변기로 짐작되는 호자와는 달리 어쩌면 이것은 여성용 변기였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앉는 윗부분이 폭이 좁아 그대로 앉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저 쪼그리고 앉아서 누었지 않을까요? 어쨌든 현대의 변기들도 그 원조는 백제였을지도 모릅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신발의 주위에 못을 촘촘하게 달았던 것이 오늘날의 스파이크신의 원조로 보는 것과 같은 이야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