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승목사

마감된 자료-------/플래닛에있던글

by 자청비 2009. 7. 21. 09:14

본문

파리를 사러 다니는 승목사를 아시나요?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2009. 07. 21
 
 

 

 

          

        “무관 양 아무개가 공주목사가 되었는데 삼복에 파리가 많은지라 양이 이를
        싫어하여 아전으로부터 기생과 종들에 이르기까지 매일 아침 파리 한 되를 잡아
        바치게 하고 이를 독촉하니 위아래 할 것 없이 다투어 파리를 잡느라 쉴 겨를이
        없었다. 이리하여 주머니를 가지고 파리를 사러 다니는 사람이 생겼는데 그
        사람을 파리 ‘승(蠅)’ 자를 써서 <승목사(蠅牧使)>라고 불렀다.”

 

        위는 조선 전기 문신이며 학자인 성현(成俔)의 수필집 용재총화(慵齋叢話)
        나오는 글입니다. 용재총화는 조선시대 수필문학의 백미(白眉)라는 평가를 받지요.
        또 고려에서 조선 성종 대에 이르기까지 만들어지고 변화된 민간 풍속이나
        문물제도 ·문화 ·역사 ·종교 ·예술 등 당시 사람들의 삶을 골고루 다루고 있어
        민속학이나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구비문학(口碑文學) 연구 자료로 활용되지만,
        승목사 같은 재미있는 내용이 많으므로  이 무더위에 원두막에서 파리를 쫓으며

        한번쯤 읽어보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 

     (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1200. 칠거지악에 해당하더라도 삼불거면 이혼 불가  2007/12/03  

 

         20년 이상을 함께 산 부부 10쌍 중 2쌍이 이혼하는 등 중년이혼이 급증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선시대는 이혼할 수 있었을까요? 조선시대엔 질투를 할 때,
         아들을 낳지 못할 때, 부모에게 공손하지 못할 때, 바람을 피우거나 나쁜 질병이
         있을 때, 말이 많아 입방아에 오르고 물건을 몰래 훔쳤을 때 등은 칠거지악
         (七去之惡)이라 하여 부인을 버릴 수 있었던 여성에게만 불리한 제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양반은 임금의 허락을 받지 않고 이혼을 하면 벌을 받았습니다. 또 부모
         삼년상을 치르고 있을 때나 가난했지만 혼인 이후 부유해졌거나, 부인이 돌아가
         의탁할 곳이 없을 때 등 ‘삼불거(三不去)’의 경우에는 절대 이혼할 수
         없었습니다. 고종 때는 자녀가 있는 경우를 하나를 더 보태어 ‘사불거(四不去)’가
         되었습니다. 여성에게 절대 불리한 조건이었지만 그래도 일부는 요즘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이란 생각입니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마감된 자료------- > 플래닛에있던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거리  (0) 2009.07.23
마음이 아플 때마다 만든 골무  (0) 2009.07.22
고려시대 즐겨먹었던 참외  (0) 2009.07.20
사람과 벌 그리고 사과의 공존  (0) 2009.07.17
돌짐승  (0) 2009.07.16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