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조선 식민지배의 상징으로 서울 남산에 세운 조선신궁[朝鮮神宮]이라는
신사가 있었습니다. 그 신궁은 천조대신(天照大神, 아마테라스 오오카미), 명치왕
등 일본이 가장 큰 신으로 여기는 신들을 받들었습니다. 조선총독부는 1945년 6월 현재 신궁(神宮) 2곳, 신사(神社) 77곳, 면 단위에 건립된 보다 작은 규모의 신사 1,062곳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 조선신궁 안에는 본전, 중문, 사무소 등과 함께 경찰관출장소도 있습니다. 신궁은 종교시설물입니다. 그 종교시설물 안에 경찰관출장소가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일본 홍문당에서 펴낸 《일본통치하의 해외신사》란 책을 보면 일본 헌병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신사로 데려가 강제로 신사참배 시켰는데 이에 반발하여 온 나라에서 신사를 습격하여 부수고 불을 지르는 사건이 잇달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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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586. 추사의 세한도를 보셨나요? 2006/02/06
국보 180호 '세한도(歲寒圖)'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았습니다. 이 그림에는 다음과 같은 추사의 발문(跋文, 책이나 그림의 끝에 그림의 뜻이나 그린 뜻을 간략하게 적은 글)이 보입니다. '날씨가 차가워진 후에야 송백의 푸름을 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也)'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그가 59살 때인 1844년 제주도 유배 당시 지위와 권력을 잃어 버렸는데도 사제간의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그를 찾아온 제자 이상적의 인품을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하여 그려준 것입니다. 한 채의 초가에 지조의 상징인 소나무와 잣나무를 매우 간략하게 그린 작품으로 문인화의 세계를 잘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갈필(渴筆, 그림을 그릴 때 쓰는 빳빳한 털로 만든 붓)로 형태의 대강만을 간추린 듯 그려 한 치의 더함도 덜함도 용서치 않는 강직한 선비의 정신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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