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글을 쓸 때는 욕설, 광 고 관련이나 성과 관련된 말은 걸러지도록 되어 있어 어길 때는 제대로 전달이 안됩니다. 참 잘하는 일이지요. 문장 중에 밑줄 친 부분이 바로 그런부분 입니다. 읽으시면서 양해 바랍니다.
“일산(日傘)이 없는 집에서는 장마철을 어떻게 견디어 내나?” 이 말은 조선조 청백리로 소문난 유관(柳寬) 선생이 집안에 비가 새자 아내에게 건넨 말입니다. 요즈음 장마철입니다. 엊그제는 굵은 장대비가 내리더군요. 유관선생이 과거 급제 때 임금께 받은 일산을 비가 새는 방안에서 펼친 모습이 그려집니다. 유관선생은 고려 말·조선 초 문신으로 조선의 개국공신이 되어 대사성, 대사헌 등을 지낸 분입니다. 그런 그가 성 밖 후미진 곳에 돌담은커녕 나무 울타리도 없고 물론 대문도 없는 두어 칸 오두막집에 살면서 나갈 때면 말을 타지 않고 짚신에 지팡이를 짚고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맨발에 베옷을 걸치고 남새밭 (채소밭)을 가꿨다고 합니다.
이렇게 청빈하게 살았던 유관이 살던 집을 뒷날 사람들은 “우산각(雨傘閣)”이라 불렀습니다. 또 먼 훗날 이 집을 물려 살았던 지봉유설의 이수광은 우산을 펴 근근이 비를 가렸다는 뜻으로 “비우당(庇雨堂)”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하지요. 이 청빈한 선비가 살던 곳은 지금 서울지하철 6호선 창신역 근처라고 하는데 이곳을 지나갈 때마다 유관 어른이 생각나는 것은 그분이 높은 관직을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청빈한 삶을 몸소 실천한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날은 덥고, 억수장마 지는 그런 계절입니다. 여름엔 쉽게 변질하기 때문에 술을 잘 빚지 않지만, 이런 때도 우리 겨레는 전통술을 빚어 마셨습니다. 봄철 배꽃이 피는 때에 빚었다가 여름철에 더위와 갈증을 씻기 위해 마시는 농축 유산균음료와 같은 형태의 이화주(梨花酒)도 사실은 여름술입니다. 또 여름철의 술로는 과하주 (過夏酒)가 있는데 여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마셔서 여름을 건강하게 날 수 있는 뜻입니다. 유 두 와 백중날에는 일꾼들을 위해 막걸리와 동동주로 잔치를 벌였다고 합니다.
우리의 좋은 전통술들이 이제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 까닭은 개화기 이후 술빚는 것을 천한 일로 생각한데다 맥주, 고량주 등 수입 술에 밀려 가내수공업 형태의 전통술은 점점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더더욱 한일합병 이후 조선총독부가 가정에서 술을 빚는 것을 금지하면서 전통술의 맥은 끊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