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겨울철 한강의 얼음을 떠서 동빙고와 서빙고에 보관하였습니다. 동빙고는 한강변 두뭇개, 곧 지금의 성동구 옥수동에 있었고, 서빙고는 지금의 서빙고동 둔지산(屯智山, 용산 미군기지 안) 기슭에 있었지요. 이에 대한 내용은 19세기 서울의 관청, 궁궐 풍속 등을 정리한 《한경지략(漢京識略)》의 궐외각사 (闕外各司) 조항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얼음은 네 치(한 치는 약 3.03cm로 12cm가량) 이상 얼면 뜨기 시작하였지요. 얼음을 뜨고 저장하는 일은 쉽지 않았는데 얼음을 뜰 때에는 칡으로 꼰 새끼줄을 얼음 위에 깔아 놓아 사람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또 《세종실록》에는 장빙군(藏氷裙, 석빙고에 얼음을 저장하는 군인)에게 술 830병, 생선 1,650마리를 내려주었다는 기록이 있어 얼음을 저장하는 사람들에게 세심한 배려를 했음을 알 수 있지요. 동빙고의 얼음은 주로 제사용으로 쓰고, 서빙고의 얼음은 임금의 친척과 높은 벼슬아치들에게도 주었지만 활인서의 병자, 그리고 의금부 죄수들에게까지 나누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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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996. 일제의 조직적인 경복궁 파괴행위 2007/04/03
경복궁은 조선시대 궁궐을 대표하는 곳입니다. 그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에는 임금만이 앉을 수 있었던 용상이 있습니다. 이 용상에 조선총독인 데라우치가 거만하게 앉아 보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엄연히 조선의 임금이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일제의 경복궁 파괴 행위는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철저히 진행되었습니다. 경복궁의 후원에 있던 용문당, 융무당, 경농재 등은 1926년에 모두 헐어 일본으로 빼돌렸지요. 또 건청궁을 1935년에 헐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지었는데 일제는 절에서 강탈해온 불상들을 전시했으며, 골프장, 야외극장, 식당, 맥주회사 따위를 세우려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리고 근정전 앞 박석(얇고 넓적한 돌)이 있던 자리에 무덤에나 깔던 잔디를 깔고, 온돌방을 마루로 바꾸는 등 수천년 역사를 간직해 온 한나라의 궁궐을 쑥밭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참고 : “쏭내관의 재미있는 궁궐기행”, 송용진, 두리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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