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일제 통감부가 설치되고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통감으로 군림한 1906년에 서울에 왔던 미야케라는 일본인이 쓴 회고기 “그때의 기억-고려고분 발굴(도굴)시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당시 예술적인 감동으로 고려청자를 모으는 사람은 별로 없었고, 대개는 일본으로 보내는 선물감으로 개성 인삼과 함께 사들이는 일이 많았다. 이등박문 통감도 누군가에게 선물할 목적으로 굉장히 수집한 한 사람이었는데, 한때는 그 수가 수천 점이 넘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하지만, 고종임금도 이등박문이 고려청자를 보여주자 이 나라엔 없는 물건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조선사람들은 고려청자를 몰랐습니다. 조선사람들은 조상의 묘에 손을 댄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기에 일본인의 도굴이 아니면 고려청자가 나돌았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등박문이 싹쓸이해간 고려청자도 결국, 도굴된 것이며, 이등박문은 장물아비가 틀림없지요.
최근 일본 정치권이 또 역사 왜곡을 일삼고 있습니다. 일본 총리까지 나서서 정신대를 강제 동원한 적이 없다는 망언을 합니다. 이런 일본인들의 망언은 일제강점기에도 물론 대단했는데 그 가운데 일본의 임학자 혼다 세이로쿠라는 사람의 "소나무 망국론”은 어처구니가 없는 것입니다. 그는 ”소나무가 많은 조선은 국운이 기운 것은 물론이고, 산의 지력까지 쇠진하여 희망이 없으므로 일본의 속국이 될 수밖에 없다.“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는 벌써 망했어야 하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는 바닷가 바위 꼭대기에도 소나무가 우뚝 서있는 것을 봅니다. 그건 소나무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따라서 혼다의 주장은 소나무가 끈질긴 생명력이 있다는 것을 거꾸로 뒤집어 억지를 부린 말에 불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