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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년(庚寅年)에 보는 호랑이

또다른공간-------/잡동사니모음

by 자청비 2010. 1. 2.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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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년(庚寅年)에 보는 호랑이

 

 

 

 

호랑이는 12지신 중 하나로 진보, 모험, 독립, 투쟁 등의 속성을 갖고 있으며 4방위를 지키는 사신(四神, 청룡·백호·주작·현무) 중 유일한 실제동물이다. 호랑이는 '인(寅)'이라 하며, 가리키는 시간은 새벽3시부터 5시 사이이고, 음력 1월에 해당한다.

 

호랑이는 우리나라의 민담에서 빠질 수 없는 동물이다. 옛날 옛날 할머니들의 구수한 이야기 속에는 반드시 호랑이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효자를 알아보는 영물로, 사람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 은혜를 갚는 동물로, 그리고 사람으로 둔갑한 호랑이 이야기와 어리석은 호랑이 이야기 등 수없이 많다. 이처럼 속담·민담·민화를 비롯하여 문학작품에까지 호랑이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옛부터 우리나라에는 호랑이가 많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우리나라를 호담지국(虎談之國)이라고까지 불렀고, 중국 문헌 《후한서》동이전에도 호랑이를 신으로 받들어 제사지내는 나라라고 소개하고 있다. <삼국지>위지동이전에 "제호이위신(祭虎以爲神)"이란 말이 있듯이 예전에는 호랑이를 산신령으로 모셔졌다. 우리 문헌상에 처음 호랑이가 나타난 것은 《삼국사기》이다. 신라 헌강왕조에 호랑이가 궁궐에 나타났다는 기록이 그것이다.《삼국유사》단군신화에도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도록 환웅에게 빌어 곰은 쑥과 마늘을 먹고 신의 계율을 지켜 사람이 되고, 호랑이는 그러하지 못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에는 과부 호랑이가 혼자 산을 지키고 있다가 성골장군을 위기에서 구해주고 그에게 청혼하여 자식을 낳고 살았다는 설화가 들어 있다.


 

무속신앙에서 비롯된 '산신령 무신도'에는 반드시 호랑이가 그려져 있다. 무신도의 공통점은 호랑이와 소나무 그리고 까치가 항상 함께 나온다는 것이다. 이런 그림을 '작호도(鵲虎圖)'라고 했다. 작호도의 까치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길조로, 소나무는 늘 푸른 기상으로 장수를 의미하며, 호랑이는 잡귀를 물리쳐 집안에 태평하고 높은 권세를 얻어 집안이 흥하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좋은 일만 겹치라는 뜻으로 이 작호도가 그려졌으며 산신도의 대표적인 그림이 되었다. 또한 주술적인 의미가 있는 호랑이 그림은 용과 함께 문배로도 많이 그려졌는데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벽사능력이 있다고 믿었기 매년 호랑이 달인 인월(寅月)에 대문에 많이 붙였다. 옛 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인간적인 그림에 호랑이는 빠질 수 없는 존재인 셈이다.호랑이를 산신령으로 섬기는 풍속은 고려 초기까지 계속되었으나 도교가 유입되면서 호랑이가 차지하던 산신령의 자리는 사람의 모습으로 자리잡게 되면서 호랑이는 산신령의 심부름꾼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문배 속의 호랑이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곳이 바로 삼재부에 그려진 호랑이다. 삼재는 일반적으로 9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것으로 물, 바람, 비 등에 의하여 발생하는 자연재해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요즘은 험하고 나쁜 일을 당하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렇게 삼재가 들면 정월 초 하루날 호랑이가 그려진 삼재부적을 대문에 붙여 그 해의 나쁜 액을 면하고자 하였다.  정월에 첫 번째 호랑이날을 인일(寅日)이라고 한다. 인일이 정월 초하루 전에 있으면 그 해 목화가 풍년이 든다고 하며, 이날 메주를 쑤면 장맛이 좋다고 한다. 또 이날 일을 하면 호랑이에게 해를 입는다는 속설도 전해진다.


 

우리 조상들의 다양한 일상용품에서도 호랑이와 우리 문화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신부의 가마 위에 덮던 호랑이 가죽은 재해를 방지하는 의미가 담겨있고, 호랑이 발톱 모양의 노리개는 여성의 호신을 상징했다. 돌이나 명절에 아이들이 쓰는 머리쓰개에도 호랑이 문양을 수놓아 튼튼하게 자라기를 기원했다. 정초에 호랑이 그림을 대문에 내다붙이거나 부적에 그려넣기도 하고, 조정에서는 쑥범(쑥으로 만든 범)을 만들어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무관의 관복에 용맹의 표상으로 호랑이 흉배를 달아주기도 했다. 글 하는 선비들도 필통이나 베개 등에 즐겨 호랑이를 새겨넣었다. 자식의 입신양명을 위해 산방(産房)에 호랑이 그림을 붙여놓기도 하고, 기가 약한 사람에게 호랑이 뼈를 갈아 먹이는 한방요법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장가갈 때 새 신랑이 호신장구로서 장도(粧刀)나 주머니에 호랑이 발톱을 달거나 허리에 찼다. 호랑이의 가죽과 수염도 신령한 힘이 있다 하여 호신물로 차고 다녔다. 여인네 장신구나 장식품에도 호랑이를 새겨넣기도 했다. 심지어 무덤 주위에까지 능호석(陵護石)으로 세워 망자의 명복을 빌기도 했다.


이러한 호랑이의 성격을 닮은 범띠 생들은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관대하고 초지일관하는 성품을 지녔으며 나라의 관록을 먹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즉 권력 추구형이 많다고 할 수가 있다. 범띠생은 개띠와 말띠, 그리고 돼지띠와 잘 어울린다고 한다.한다. 특히 호랑이와 말, 개와 관계는 의사전달이 원활하고 인간적인 면을 중시한다고 한다. 또 호랑이의 진취적인 성향과 말과 개의 충직함이 서로 조화를 이뤄 적응력이 강하고 인간관계가 원만하다고 한다. 즉 호랑이띠의 단점을 개와 말띠 생이 보완하여 주므로 부부나 동반자로는 제격이라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원숭이띠와는 절대 상극이므로 어떤 일이든 도모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한편 동양 삼국 즉 한국, 중국, 일본의 민화에 나타나는 호랑이를 살펴보면 그 민족의 성품을 알 수 있다. 일본의 호랑이는 발톱이 날카롭고 이빨이 두드러져 마치 악마의 화신처럼 그려진다. 중국의 호랑이는 우람한 체격에 무서운 눈과 털을 그려 넣어 인간을 잡아먹는 무서운 호랑이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네 호랑이는 본래의 강인함과 두려움 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들고, 특유의 코믹한 모습과 눈빛 그리고 인간에게 순종하는 양순한 호랑이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그 유약한 모습의 호랑이 속에는 우리 민족의 해학과 특유의 강인함,강인함, 그리고 끈질긴 용맹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무신도에는 호랑이 두 마리를 거느린 산신도와 한 마리를 거느린 산신도가 있다.


<산해경/해외동경>편을 보면 "군자국이 그 북쪽에 있다. 그 사람들은 의관을 갖추고 칼을 차고 있으며 짐승을 잡아먹는다. 두 마리의 호랑이를 부려 곁에 두고 있으며 그 사람들은 사양하기를 좋아하여 다투지 않는다. 훈화초(薰華草)라는 식물이 있는데 아침에 나서 저녁에 죽는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은 우리 동이족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그 시대가 바로 한웅천왕 시대가 아닌가 한다. 이 산해경을 근거로 두 마리를 거느린 산신도는 한웅천왕을 의미하고 한 마리만 거느린 산신도는 단군왕검을 의미한다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구문회 학예연구사는 "호랑이가 과거에는 귀신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와 수호의 기능을 담당했지만 오늘날에는 세속적인 의미로 부귀나 권위를 기원하는 의미도 강하다"고 설명했다. 구 연구사는 또 "호돌이나 여러 엠블럼 등을 통해 호랑이가 보다 친근하고 귀여운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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