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낙동강 모래톱 본 기자들의 탄식
“왜 이제야 왔을까”…환경기자클럽 4대강 현장 답사
미디어오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강변에 살고 싶다던 아이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강변은 무참히 파헤쳐져 있었다. 햇볕을 받아 금색으로 빛나던 모래는 분주히 트럭에 담아져 이동하고 있었고, 몸을 부대끼며 소리를 내던 갈대 숲도 헤집어졌다. 허리가 잘려나간 낙동강의 모래톱을 본 기자들은 “왜 이제야 왔을까”하며 아쉬움의 한숨을 내 쉬었다. 답사에 나섰던 언론인들의 고민은 깊어졌다. 환경부 출입기자 8명 등 11개 언론사 기자·PD 등 19명과 대학신문 학생 기자 5명 등이 지난 1일 1박2일 일정으로 4대강 공사 현장 답사를 다녀왔다. 운하반대전국교수모임과 대한하천학회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4대강 현장 답사의 일환이다. 기자들이 공동으로 4대강 현장 답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예천군 상풍교 아래 공사현장에서 포크레인이 누런 흙탕물을 일으키며 수중골재채취에 한창이다.
▲ 여주 남한강 강천댐 공사현장 인근. 한 알의 모래도 남기지 않으려는듯 촘촘하게 긁어내는 포크레인의 삽질이 섬찟하다.
▲ 낙동강과 남한강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가물막이 밖에서의 직접적인 수중골재채취현장. 흙탕물이 식수원으로 바로 유입되는 엄연한 불법행위이다.
▲ 경북 예천군 상풍교 현장의 가물막이가 강물에 쓸려 잘려나간 채 포크레인들이 골재채취를 하고 있다. 가물막이 없이 수중골재채취하는 것은 흙탕물을 일으키므로 위법한 행위다.
첫 목적지는 우리나라 강의 원래 모습이 가장 잘 남아있다는 경북 예천의 내성천이었다. 360도로 휘감아 돌며 흐르는 강의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하지만 이곳도 4대강 사업의 영향을 받을 위험에 처했다. 이원영 수원대 도시·부동산개발학과 교수는 “4대강 사업이 내성천에 직접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4대강 사업 예산에 영주댐 공사가 포함돼 있어 공사가 끝나면 이곳도 지금의 모습을 잃을지도 모른다. 댐으로 모래 유입이 차단돼 풀이 자라게 되면 이곳도 뭍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내성천 천변습지에는 고라니 발자국이 뚜렷하다. 잘 살펴보면 삵과 너구리 발자국도 있단다. 까슬한 모래를 밝고 물에 발을 담그면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발등으로 흐르는 모래를 느낄 수가 있다. 기자단이 4대강 사업 공사 현장 답사를 한다니, 관련 부처도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취재’도 아닌 ‘답사’인데말이다. 환경부와 국토해양부 4대강사업추진본부 등에서 연락이 왔다. 이들 부처에서는 이번 답사에 누가, 왜 오는지를 물었다. 1일 밤에는 예천군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이 숙소로 찾아오기도 했다. 그는 기자단의 답사가 선거법에 저촉되는 게 아닌지 해서 왔다고 했다. “답사에 참여한 기자들은 누가 예천군 선거에 입후보했는지 조차 모르며, 단지 현장을 보러 왔을 뿐”이라고 말하자 돌아갔다.
▲ 맑은 내성천에 발을 담가본 기자들에게 운하반대교수모임의 이 교수가 모래톱의 중요성과 4대강사업의 실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멧돼지, 고라니, 삵, 너구리 등의 발자국으로 어지러운 내성천변 모래톱.
▲ 경기도 이천군 삼합리의 단양쑥부쟁이 자생지를 취재한 기자단이 공사현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2월 말에도 있었는데 다 걷어냈네. 분명히 있었는데.” 구담교 양쪽으로 진행되고 있는 공사현장을 보자 기자들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박수택 환경기자클럽 회장은 “전에 왔을 때만 해도 습지도 있고 버드나무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모래톱은 사라졌고, 버드나무는 잘려나갔다. 구담교 한가운데에는 이 마을에 산다는 할아버지가 모래를 퍼내다 말고 서 있는 굴착기를 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뭐 하는지 모르겠다”며 “마을 사람들에게 설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도에서 지시해서 공사한다는데 자기들끼리 하는 것이니 알 수가 없다”며 그 뒤로도 한참을 그곳에 서서 강을 바라봤다.
모래는 강을 맑게 한다. 그런데 이런 모래를 다 들어내면서 4대강을 살린다고 하니 그 말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 정기영 안동대 지구환경학 교수는 “물이 고인 상태에서는 모래도 정수역할을 하지 못한다”며 “물을 막고 흐르지 못하게 하는 것은 핏줄을 막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한 기자는 “낙동강의 모래톱을 ‘누런 지방층’으로 표현했다는 이명박 대통령은 모래의 역할을 알기나 하겠는냐”고 푸념했다.
정민걸 공주대 환경교육학 교수는 “우리 눈에는 습지만 보이지만 그 밑에는 곤충 알, 애벌레 번데기 등 엄청나게 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다”며 “사람의 이기심이 이들의 생명까지 앗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무엇보다 문제는 국민의 귀를 막고 공사를 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아이고 세상에 이런….” 나오는 건 한숨이요. 가슴 속 답답함은 풀리지 않는다. 잘려나간 버드나무 사이로 들이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구슬프다. 파헤쳐진 버드나무 군락에는 생태공원을 만들 예정이란다. 전국 어디에나 있는 정자와 옮겨 심은 소나무, 철쭉과 깎아 놓은 자연석, 벽돌로 깐 바닥이 이곳 낙동강에도 들어설 것이다. 전국 어디에나 있는 똑같은 생태공원을 보러 누가 낙동강까지 찾아올까.
▲ 경기도 이천군 강천댐 건설현장은 숫제 강을 반으로 갈라 왼쪽은 이미 10 여m 준설을 마쳤고 물길을 돌려 오른쪽을 준설할 준비를 하고 있다.
상풍교 밑은 공사가 한창이다. 다리 양쪽으로 굴착기 10여 대가 열심히 강을 파내고 있다. 그 중 2대는 가물막이 밖에서 공사하고 있다. 오탁방지막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았다. 공사 기준은 지켜지지 않으니 무용지물이다. 남준기 내일신문 기자는 “지난주까지만 해도 가물막이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상주보 공사 현장은 이미 상당 부분 공사가 진행됐다. 공사장 가장자리에는 ‘4대강을 살려야 생명이 살아난다’, ‘우리가 꿈꾸는 강의 이름은 행복입니다’ ‘맑은 물의 회기 생동하는 낙동강’ 등의 문구가 쓰여있지만 상주보가 정말 낙동강을 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원영 교수는 “생물은 흐르는 강에 사는 법”이라며 “우리는 정권과 싸우는 게 아니라 정권 몰염치를 꾸짖는 것이다. 반드시 4대강 사업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요일 오후 늦게 도착한 강천교도 공사가 한창이다. 이곳은 얼마 전 단양쑥부쟁이 군락지가 파괴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간 곳이기도 하다. 기자들이 온다는 말에 공사현장은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수자원공사쪽은 “단양쑥부쟁이 군락지는 그대로 보존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식지의 단양쑥부쟁이가 잘 자라고 있는지 보고 싶다는 기자들의 요구에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 여주 강천댐 현장 인근의 도리섬 단양쑥부쟁이 자생지에서 수자원공사 관계자가 보존현황을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자생지는 공사개시 후 발견되었고 이후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와 실태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 여주 남한강 도리섬 인근 공사현장을 취재하는 한겨레 하니TV기자. 사람키의 세배에 달하는 깊이의 모래톱이 골재채취로 인해 파헤쳐졌다.
공사담당자는 “사업장에서 이러면 곤란하다”고 말했지만, 기자들은 “여기는 사업장이 아니라 한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기자는 말했다. “기자들이 와도 이 정돈데 시민이나 NGO가 오면 오죽할까.” 정민걸 교수는 “다 죽은 것 같지는 않은데 살기 힘들어하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수자원공사쪽에서는 공식 취재요청이 없었다며 이날 취재분을 방영하면 안 된다며 PD들을 윽박지르기도 했다. 한 신문사 기자는 “역설적이게도 4대강 사업은 강을 ‘살리자’면서 ‘죽이는’ 공사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이번 4대강 사업과 관련해 ‘4대강 사업 위헌·위법 심판을 위한 국민소송단’은 행정소송과 효력정지가처분신청을 제기한 상태다. 이원영 교수는 “낙동강의 경우 공사 과정의 문제가 많이 제기됐기 때문에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이 중 하나라도 법원이 우리 손을 들어준다면 4대강 사업 전체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운하반대전국교수모임은 오는 8일 낙동강 회룡포 등에서 전국 대학생 4000여 명이 참여하는 ‘4대강 반대’ 현장 답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 경북 상주댐 건설현장에 내걸린 수자원공사의 현수막.
“4대강 외면 언론, 양식 없거나 비겁하거나”
박수택 환경기자클럽 회장 "보도책임자들 반성해야"
미디어오늘 2010년 05월 04일
▲ SBS 박수택 환경부출입기자가 답사 첫날 저녁 농은수련원 강당에서 4대강 지류의 수질 개선을 위한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이번 4대강 사업 현장 답사는 운하반대교수모임 제안으로 이뤄졌다. 박수택(사진) 환경기자클럽 회장은 “4대강 사업 현장 취재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웠다”며 “언론이 보도를 많이 하지 않고 있는데 직접 현장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돼 주말에 각자 시간을 내 부담 없이 가보자고 제안한 것”이라고 밝혔다. 박 회장은 4대강 사업과 관련해 언론 보도 자체가 많지 않음을 지적하며 “무시하는 거라면 양식이 없는 언론이고, 회피하는 거라면 비겁한 언론”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박 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기자들의 4대강 현장답사를 추진하게 된 계기는.
“지난 2월부터 대학생 4대강 현장답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운하반대전국교수모임으로부터 지난 3월 초 제안을 받았다. 4대강 사업 관련 언론보도가 많지 않은데, 보도와 상관없이 언론인들이 현장을 가보면 어떻겠냐는 약간의 항의·질책성 의견이었다. 기본인 현장취재를 게을리했다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마침 학생 기자들이 함께 가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이 교류할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 기자들에게 현장 답사를 제안했다.”
- 취재가 아니라 답사 형식인데.
“기자실에 앉아 정부가 제공하는 보도자료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현장취재는 기자수칙 1호다. 왜 4대강 사업은 현장취재를 안 시키는 것인가. 그것 참 이상하다. 이번 답사에서 보고들은 것이 앞으로 관련 취재를 하게 될 때 밑거름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업은 환경부, 국토해양부 출입기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다른 기자들도 현장에 가봤으면 한다.”
- 4대강 사업 보도가 적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나라 국토가 변형되는 상황을 전달하는 게 뉴스가치가 없나. 시민의 눈앞에서 자연이 심대하게 변형되고 있다. 생태 환경 측면의 대사건을 언론이 충실하게 전달하지 않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방송은 거의 다루지 않고 있고 신문은 경향신문과 한겨레 정도만 충실하게 보도하고 있다. 무시하는 것인지 회피하는 것인지. 무시한다면 양식이 없는 언론이고 회피하는 거라면 비겁한 언론이다.”?
-언론사가 4대강 사업 보도를 꺼린다는 목소리도 있더라.
“물론 기자들은 언론사에 소속돼 있어 언론사 편집방향과 데스크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언론사의 편집방향이 옳은지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보도 책임자들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봤으면 한다. 보도하지 않는 것은 회피든 무시든 직무유기다. 사회가 언론에 부여한 책무를 포기한 것이다.”
▲ 경북 상주군의 상주댐 건설현장 인근의 한 버드나무가 준설후 쌓인 모래에 파묻혀 가고 있다.
기자·PD들 “모르는 게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것”
[환경기자가 돌아본 4대강]
미디어오늘 2010년 05월 04일 (화)
“무거운 마음으로 이번 답사에 참여했다.” 한 방송사 중견 PD는 ‘할 말’을,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는 현 언론 상황에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탓에 현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4대강 사업과 관련해 언론 보도 자체가 너무 적다는 지적이 계속되던 차였다. 그는 “특권을 가진 현 정권이 언론까지 쥐고 있어 4대강 관련 보도가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문제는 비단 이 PD가 속해 있는 방송사만의 고민은 아니다. KBS MBC SBS 모두 4대강 사업에 대한 보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는 “4대강 사업과 관련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본질을 언급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모르는 게 아니라 말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이 4대강 사업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는 현 언론 상황을 뛰어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 경기도 이천군 삼합리의 단양쑥부쟁이 자생지를 취재한 기자단이 공사현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다른 방송사 기자는 “(데스크에서) 대놓고 하지 말라고 한다”며 “회사 차원에서 4대강 관련 보도를 불편해한다”고 전했다. 보도는 파급력이 큰 저녁 9시뉴스보다는 아침뉴스에 배치되고, 프로그램은 찬반 양쪽 의견을 담아 공방으로 처리된다. 그는 “지금 4대강 사업 공사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은 예전 같으면 다 현장 취재 감”이라며 “언론이 이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문사도 마찬가지다. 한 전국단위종합일간지 기자는 “4대강 사업과 관련해 발제를 여러 번 했는데 채택이 안 됐다”며 “데스크 회의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지면에 잡히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기자라면 싸워보겠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현재 4대강 사업의 문제를 꾸준히 지적하는 한겨레, 경향신문과 최근 4대강 사업 관련 기획을 내놓은 조선일보를 제외한 대부분의 전국단위종합일간지는 4대강 사업에 대해 입을 닫고 있다.
4대강 사업은 찬반의견이 극명하게 갈린다는 점에서 반대 목소리만 기사에 담기는 힘들다는 고민도 있었다. 한 환경부 출입기자는 “개인적인 입장은 있지만, 4대강 사업은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이 나뉜다는 점에서 반대하는 이들의 목소리만 전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다른 환경부 출입기자는 “사실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환경단체의 목소리는 새 기사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4대강 사업에 대한 편집방향이 자유로운 언론사 기자는 “실제로 다른 언론사에서 이 정도로 보도 통제가 심한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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