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뺨치는 <조선일보>의 작문 실력, 명불허전"
[인터뷰]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나를 이중인격자로 만들어"
프레시안2010-05-12
"어떻게 어린애도 아니고 내가 마치 햄버거 병이나 든 사람이나 이중인격자인 양 제목도 내용도 그렇게 쓸 수 있습니까. 정말로 한심한 신문이고, 그런 신문에 넘어간 내가 아직 철이 덜 들었구나,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국제전화 통화가 불완전하게 전달되기로서니 자기들 구미에 맞는 것만 골라 짜깁기 하나. 너무 황당하지 않습니까?"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은 11일자 <조선일보> 5면 기사 "'65만 명 광우병 사망' 외치던 그가…'올해 햄버거 먹으며 美 여행'"을 보고 기가 막혔다. 이 기사는 김성훈 전 장관과의 인터뷰 기사로 2008년 촛불 집회 당시 미국산 쇠고기의 인간광우병(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코브 병) 위험성을 경고한 김 전 장관이 말을 바꿨을 뿐 아니라 미국 현지에서 햄버거를 사먹는 등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
▲ 11일자 <조선일보> 5면 기사. "'65만 명 광우병 사망' 외치던 그가…'올해 햄버거 먹으며 美 여행'"
"기자의 전화, 반가운 마음으로 받았는데"
김 전 장관은 지금 캐나다 밴쿠버에 있다. 그는 지난 3월 29일부터 4월 18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샌디에이고 캠퍼스(UCSD) 국제관계대학에 초청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문제점과 전망'을 놓고 공개 강연회를 가졌다. 지난 4월 28일부터는 캐나다 밴쿠버 대학의 초청교수로 가있다. 지난 4일 이 기사를 쓴 <조선일보> 김정훈 기자의 전화를 받았을 때 그는 막 밴쿠버로 이사해 짐 정리를 하던 중이었다. 그는 김 기자의 전화가 "반가웠다"고 말했다. 그는 "김 기자가 이름도 비슷하고 해서 막연한 호감을 갖고 있던 터라 친밀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김 기자가 전화했을 때 집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반가웠죠. 근황을 먼저 묻길래 UCSD에서의 강연 내용을 이야기 했습니다. 한미 FTA와 관련해 미국은 재협상이나 추가 협상을 하지 않고 자동차 등 민감 항목을 별도로 처리할 계획이라는 정보부터 알려 주었죠. 물론 이 중요한 정보는 묵살당했습니다. 그리고 강연에서 한국이 미국과의 FTA 협상 과정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 아주 비대칭적으로 불리한 협상을 했다, 특히 불리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은 한국 소비자를 자극해 벌떼처럼 촛불 집회를 하게 된 배경이라고 설명해줬다고 말했습니다. 또 그런 강연에 대한 미국 청중의 반응도 자세히 설명했고요."
◀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그는 이 강연에서 "우리나라 소비자, 아기 엄마, 소년 소녀들이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무작정 반대한 것이 아니다. 미국인이 먹고 있는 쇠고기의 92퍼센트를 차지하는 20개월령 이하의 미국산 쇠고기를 놓고는 시비한 것이 아니다"라며 "한국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완전히 양보해 광우병의 98퍼센트가 발생한 30개월령 이상의 쇠고기와 광우병에 취약한 물질을 수입하도록 타결한 것에 항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조선일보> 기자에게 이러한 강연 내용을 설명하면서 "근 두달간 촛불 집회를 한 요인이 바로 미국인도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30개월령 이상 쇠고기의 수입 개방 때문이라고 말하자 미국의 일부 청중은, 특히 민주주의에 민감한 어린 학생까지도 박수하고 환호했다"며 청중의 반응도 전했다.
"미국인도 안전한 쇠고기 찾는다는 설명이 '햄버거 여행'으로"
이어서 김 전 장관은 <조선일보>가 기사에서 꼬투리를 잡은 '햄버거'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김 전 장관의 해명은 <조선일보>의 기사와는 전혀 맥락이 달랐다.
"김 기자에게 강연 내용을 설명하면서 예로 삼아 USCD 주변에서 풀을 먹고 자란 쇠고기를 쓰는 것으로 유명한 '버팔로' 햄버거 집에 가서 시식했다고 말했습니다. 발디딜 틈도 없이 붐비는 백인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고 하니 김 기자는 박장대소를 하더군요. 내친 김에 미국 서부 지역을 여행하다 보니 맥도날드 매장은 한산한데 비해 '인앤아웃(In N Out)'이라는 햄버거 매장은 문전성시를 이룬다는게 특이하더라, 그래서 오가는 길에 들러 그곳 고객에게 물었더니 젊은 소, 직영 또는 협력 농장 쇠고기라 안심되어 자주 찾는다더라는 반응이더라고 전해줬죠."
그러나 미국 사람도 '광우병 위험에서 비교적 안전한 풀을 먹이며 방목한 (20개월 이하의) 어린 쇠고기'를 즐겨 찾는다는 이 발언은 김 전 장관이 미국 여행을 다니며 햄버거를 즐겨 먹은 것처럼 바뀌어 보도됐다. 그리고 김 전 장관은 한순간에 '이중인격자'가 되었다. 김 전 장관은 "현지의 동향 파악 차 햄버거 집을 찾아 간 사실을 어떻게 내가 햄버거 병이나 든 사람 모양, 또 이중인격자인양 제목도 내용도 그렇게 쓸 수 있느냐"면서 "나중에 보니 총알을 잔뜩 장전하고 총구를 들이대고 있었는데 나는 철없이 성공적으로 끝난 강연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해 준 셈"이라고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미국에서는 인간광우병, 'O157 대장균' 등으로 쇠고기를 둘러싼 우려가 커지자, 맥도날드와 같은 기존의 패스트푸드를 거부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이런 소비자를 겨냥해 지역에서 광우병 감염 가능성이 낮은 풀만 먹여 방목한 쇠고기를 이용해 고객이 주문하면 바로 현장에서 요리해주는 대안 햄버거 매장이 인기를 얻고 있다. 김성훈 전 장관이 방문한 '버팔로', '인앤아웃'은 바로 이런 대안 햄버거 매장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이런 사실은 아주 간단한 인터넷 검색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영어 아닌 한글로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또 다른 보수 언론 <동아일보>도 '인앤아웃'을 이렇게 설명한다.
"직영 농장에서 키운 최상상등급 소, 신선하고 영양이 풍부한 채소를 매일 공급받아 재료로 쓴다. 재료를 보관하는 냉동고나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보관하는 온장고가 없다는 것도 자랑거리 중 하나였다. 매일 신선한 재료를 트럭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캘리포니아, 네바다, 애리조나 3개 주에만 점포를 둔다는 영업 철학을 고집스럽게 지키고 있다. 미국 서남부를 여행하다 점심 때 줄을 선 햄버거 가게가 보이면 영락없이 인앤아웃이다." (<동아일보>, 2008년 4월 9일자)
미국인이 이렇게 '버팔로', '인앤아웃' 등의 햄버거를 즐겨 찾는 것은 <조선일보> 보도와 달리 "미국인도 미국산 쇠고기를 위험하다고 여긴다"는 직접적인 증거이다. <편집자>
"기고글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고 그냥 썼다"
김 전 장관이 분노하는 이유는 이것만이 아니다. <조선일보> 기자는 이날 기사의 반 이상을 차지한 김 전 장관의 기고글 "10년 뒤 인간광우병을 주목하라"를 두고는 일언반구 묻지도 않았다. 전화 인터뷰는 했지만 정작 기사의 주요 내용에 대한 반론권은 전혀 보장해 주지 않은 것. 김 전 장관은 "기자는 <시민사회신문> 2008년 5월 5일자에 인쇄된 내 기고문과 내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 왜 다른가와 같은 질문은 전혀 하지 않았다"며 "만약 물어봤다면 사실대로 말해줬을 것이다. 기고 후 재교정한 원고를 보냈는데 이미 인쇄가 끝나 교정이 불가능하지만 기록에는 수정해 남기겠다는 대답이 돌아왔고 내 홈페이지에 올렸다고 설명해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김 기자는 기고글에 관한 것은 전혀 묻지도 않고 썼다"면서 "대신 '촛불 집회는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니냐고 질문하기에 '<조선일보>는 왜 노무현 정권 때는 그렇게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중시하던 논조가 새 정권 들어서 전혀 다른 논조가 됐느냐'고 묻자 대답이 없더라"고 말했다. 또 김정훈 기자는 "당시 사람의 우려와 주장이 좀 무리한 것이 아니었느냐"고 물었고 김 전 장관은 "그럼 왜 이명박 대통령은 두 번 씩이나 사과를 했느냐"고 반문했다. 김 전 장관이 광우병에 관한 입장을 바꾼 것처럼 쓰인 기사와는 전혀 다른 대화가 오간 셈이다.
게다가 이 기사는 김 전 장관이 미국 예일대 의료팀의 연구 결과를 잘못 인용했다고 비판하면서 "sCJD(산발성 크로이츠펠트야코프 병)는 쇠고기와 무관하고 전 세계 60대 이상 고령층에 치매 증상과 비슷하게 발병하는 병"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김 전 장관은 "CJD 중 가장 발생 빈도가 높은 sCJD나 vCJD는 모두 변형 프리온에서 기인하고 있고, 이것이 광우병 쇠고기와 연관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단, sCJD는 vCJD와 증상이 비슷해서 이 둘을 뚜렷이 구분하는 게 어렵기 때문에, 실제로 vCJD 환자가 sCJD 환자로 오인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문가의 지적이 있다"고 반박했다.
"'2008년 <조선일보> 사설 유감'이랬더니 같은 내용 기사로 되갚아"
<조선일보>가 김성훈 전 장관을 공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성훈 전 장관은 이날 김 기자와의 통화에서 2년 전 촛불 집회 당시 <조선일보>가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전직 장관의 혹세무민"이라는 사설에서 자신의 실명을 거론하며 확인도 없이 일방적으로 공격한 것을 놓고 유감을 표했다. 지난 2008년 6월 25일자로 나온 이 사설은 11일자에 나온 기사와 꼭같은 내용으로 김 전 장관의 기고글을 문제삼았다. <조선일보> 기자는 김 전 장관이 이 사설을 들어 "어떻게 본인에게 확인도 없이 사설에서 실명과 직책까지 거론하며 비난할 수 있었나. 서운했다"고 지적하자 묵묵부답, 아무런 답을 하지않았다. 대신 김정훈 기자와 <조선일보>는 이 사설과 꼭 같은 내용의 기사를 내어 답했다. 이번에도 '확인'이나 '반론'은 없었다.
우희종 교수 "<조선일보> 인터뷰 기사, '짜깁기' 창작물"
"<조선일보>는 항의할 가치도 없어…기자도 난감하다고 하더라"
프레시안 2010-05-11
<조선일보>가 연일 2년 전 촛불 집회를 일부의 선전, 왜곡으로 인한 것으로 보도하고 있는 가운데 <조선일보>가 전문가 인터뷰를 왜곡해서 보도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우희종 서울대학교 교수(수의대)는 11일 CBS 라디오 <이종훈의 뉴스쇼>에 출연해 "<조선일보> 기사는 내가 말한 의도나 맥락과는 정반대로 부분 발췌, 짜깁기한 결과"라며 "의학 전문 기자의 전화 인터뷰에 성실하게 대답했더니 멋진 창작물이 나왔다"고 비판했다.
<조선> "'촛불' 의료인 '언제 광우병 괴담 맞다고 했나'"
<조선일보>는 10일 "'촛불' 의료인 '언제 광우병 괴담 맞다고 했나'"라는 제목으로 우희종 교수와의 인터뷰 기사를 냈다. 이 신문은 "우희종 교수는 6일 본지 인터뷰에서 '나는 미국 쇠고기 자체가 위험하다고 한 게 아니라 쇠고기 수입과 관련된 통상 조건이 우리나라에 불리하고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것을 줄곧 지적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철중 의학 전문 기자가 쓴 이 기사는 "그럼 왜 당시 라면 수프나 화장품·기저귀를 통해서도 광우병에 걸릴 수 있다는 식의 괴담이 돌 때 진정시키는 발언을 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우 교수는 '정부가 광우병은 전염병이 아니다는 식의 허황된 주장을 펴기에 그런 정부의 행태를 지적하기에도 바빴다'며 '정부 입장을 바로 잡는 데 비중을 뒀다'고 말했다"고 보도하는 등 우 교수가 변명한 것처럼 보도했다.
▶ 10일자 <조선일보>의 우희종 서울대 교수 인터뷰 기사. ⓒ조선일보
"성실하게 답해줬더니 발췌· 짜깁기…기자도 난감하다고 하더라"
우 교수는 11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내 의견은 2년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며 "오히려 촛불 이후 시간이 지나며 정부 측 주장이 허구였다는 사실이 하나 둘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 <조선일보>는 정권에 따라 말 바꾸는 신문이라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따로 항의는 하지 않았다"며 "다만 그 기자에게 발췌해서 쓴 것을 항의하니까 '본인도 난감하다'는 문자를 보내오더라"고 말했다. 그는 "<조선일보>는 항의할 만큼 가치가 있는 신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김철중 기자는 '촛불 시위 2년이 지나며 일반인이 잊어버리기도 하고 안심하는 것 같은 데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과거 촛불 시위을 어떻게 생각하는냐'는 질문으로 시작했다"며 "그래서 지금의 안정된 상황은 우리 모두 2년 전 촛불에게 감사해야할 일이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그는 "2년 전 촛불의 저항이 있어서 졸속 협상이 재논의 됐고 지금은 30개월 이상 쇠고기, 30개월 미만의 SRM도 수입되지 않는다"며 "현 시점은 촛불의 공로로 비교적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일보>는 촛불로 재논의가 됐다는 점을 빼고 이야기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수입 조건 언제든 '촛불 이전'으로 돌아갈수 있어"
그는 "지금도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이 바뀌면 언제고 정부가 초기에 맺었던 수입 조건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항상 변화나 분위기, 조건을 감시하고 추이를 봐야한다"며 "초기의 졸속 협상 조건은 과학적으로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조건이고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또다시 반대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선일보>가 말하는 '괴담'에 대해 "당시 일반인 괴담은 근거는 있지만 과장된 것이었고 정부의 괴담은 근거가 없는 날조 수준의 괴담이었다"며 "예를 들어 화장품이나 라면스프 등에는 SRM이 포함되지 않도록 엄격히 규제하고 있고 (그에 대한 우려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정부는 광우병이 전염병이 아니라든지, 조만간 사라질 병이라고 한다든지 근거가 없는 괴담을 내놨다"고 비판했다.
그는 "최근 타이완에서도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기 위해 양보했다 한국에서처럼 항의 데모가 있었고 지방선거가 가까워서 대만 여당이 참패를 했고, 결국 대만 정부는 미국과 맺은 수입 조건을 전격 취소하고 수입 조건을 강화했다"면서 "2년 전 한국 주변국이 한국보다 강화된 수입 조건으로 협상하면 한국도 미국과 재협상한다고 했는데 정부는 모른 척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고 '명박 산성'을 기억한다면 한국에서도 대만에서처럼 앞으로 지방선거 등에서 국민의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고 싶은 말만 한’ 조선 광우병 보도
[기고] 강진구 경향신문 기자
기자협회보
아전인수(我田引水)라는 속담이 있다. 심리학 용어로는 ‘자기 합리화’라고 한다. 적당하면 자아방어 기제가 되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과하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무조건 자기가 옳다’고 우기다 남에게도, 자기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어느 정도 ‘아전인수’할 수 있지만 문제는 적당한 선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촛불주역들의 인터뷰를 왜곡하다 호된 역풍을 맞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적당한 선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발언한 대로 적었을 뿐인데 전체 발언을 안 적었다고 왜곡이라니 말이 되느냐”고 항변한다. 국내 최대 발행 부수와 영향력을 자랑하는 신문사에 ‘왜곡’이라는 말뜻을 설명해줘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지만 조선일보가 ‘어떤 사실이 틀렸는지 지적해달라”(5월20일자)고 물어왔으니 대답은 해줘야 되겠다. 지난 12일자 조선일보는 ‘광우병으로 한국기자상, 경향신문 K기자’라는 인터뷰 기사 도입부에 ‘K기자는 광우병 파동 당시 미국에 매년 광우병 감염소 4~7마리가 있다는 기사로 광우병 공포론을 선도했다”고 적고 있다.
C기자가 전화로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제일 처음 물어온 것도 ‘광우병 4~7마리 감염 추정’기사였다. 나는 ‘미 연방관보에 나오는 내용’이라고 알려줬고 설마 이를 광우병 괴담 수준으로 격하시킬 것으로 상상도 못했다. 조선일보 기준에서 미 연방관보를 토대로 기사화한 것도 광우병 공포론을 선도한 것이라면 도대체 뭘 근거로 기사를 써야 선동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인가. ‘미국소 한해 40만 마리 광우병 유사증세 보여’(2008년5월7일자)도 조선일보에 광우병 관련 칼럼을 기고한 서울대 이영순 교수의 정책연구용역 논문이라는 사실을 C기자에게 설명해줬다. 그러나 C기자는 정책용역논문도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는지 이 기사도 2년 전 무책임하게 광우병 공포를 확산시킨 주요 보도에 포함시켰다.
조선일보가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미국의 강화된 동물사료금지조치도 얼마나 허점이 많은지 설명했지만 인터뷰에는 이 모든 설명이 통째로 빠져 있었다. 결국 ‘광우병 공포를 선도한 K기자’에 대한 소개로 시작한 인터뷰는 ‘K기자가 광우병 파동 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연수를 가 1년간 쇠고기를 일절 먹지 않았다’는 내용만 달랑 담겼다.
조선일보가 이렇게 앞뒤 생략하고 짜깁기한 인터뷰를 통해 전달하려는 의미가 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설마 조선일보가 K기자의 ‘소신’을 강조하기 위해 그 귀한 지면을 할애했을까. 조선일보는 20일자 ‘본지 비난 나선 광우병 선동 주역들’에서 또다시 경향신문 K기자를 들먹였다. K기자가 2008년 ‘광우병 소 한마리를 먹으면 5만5000여 명이 감염 위험에 노출된다’고 광우병 공포를 부추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 기사는 미 농무부 감사보고서에 있는 내용이라고 바로 하루 전날 경향신문 28면에 설명한 바 있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는 “‘광우병 대재앙’ 운운했던 주역들이 광우병 공포를 불러일으킨 2년 전 괴담에 대해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5월20일자)고 적고 있다.
경향신문은 인터뷰를 요청해온 C기자에게 30분 넘게 광우병 ‘괴담’이 ‘괴담’이 아니라 여전히 현존하는 위험임을 인내심을 갖고 설명했고 다시 신문지면을 한 면 가까이 털어 광우병의 위험을 설명했다. 이쯤 되면 조선일보는 ‘아전인수’가 문제가 아니라 기자들의 ‘난독증’이나 ‘편집증’을 걱정해야 할 것 같다. ‘할말은 하는 신문’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신문’이라고 손가락질 받지 않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조선일보와 광우병 2년
[컴퓨터를 켜며]
기자협회보
언론과 인터뷰를 한 인사들이 내용이 왜곡됐다고 집단으로 항의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조선일보의 기획 ‘광우병 촛불 그후 2년’ 때문이다. 조선은 “없는 내용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난 사실 하나만으로도 조선의 신뢰도는 의심을 받게 됐다. 이외에도 적잖은 논란을 일으킨 이번 기획에서 조선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간추리자면 “광우병은 위험성이 거의 없다는 게 입증됐으며 2년 전 촛불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좌파세력과 일부 언론의 과장된 선동에 부화뇌동해 거리에 나섰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섣부른 판단이다. 우선 조선은 몇 가지 확률·통계와 사례를 들어 광우병의 위험이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광우병은 여전히 베일에 싸인 질병이다. 광우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로 알려진 프리온만 놓고도 세계 과학계에서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치료법 개발이 요원한 것은 물론이다. 그렇게 문제가 없다면 호주는 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금지했으며, 일본은 월령 20개월 미만의 미 쇠고기만을 수입하는 것일까. 게다가 EU는 암 발병률이 높다는 이유 하나로 호르몬제가 투약된 미 쇠고기 수입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정말 ‘미스터리’한 일이다.
1백66명의 인간 광우병 환자가 발생했던 영국을 반면교사 삼을 필요도 있다. 1993년 비키 리머라는 15세 소녀가 인간 광우병 의심 증상을 보였을 때까지도 영국 보수당 정부는 가능성을 강하게 부정했다. 당시 과학자들은 광우병의 ‘이종(異種) 간 전이’는 불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인들이 “과학은 영구불변의 진리가 아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누구도 “우리는 광우병에 절대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물론 불필요한 공포를 증폭시키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국민 건강권이 걸린 문제에서 불확실성이 있다면 아무리 경계해도 지나치지 않다. 1992년 채택된 리우 선언은 “과학적으로 불확실하다고 해서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한 조치를 연기하거나 유예해서는 안된다”는 ‘사전예방의 원칙’을 밝히고 있다. 비록 과학적 판명이 뚜렷하게 나지 않았어도 만에 하나라도 예상되는 피해가 치명적일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에 대한 전 인류적 합의인 셈이다. 이는 광우병에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하며 우리 언론도 명심해야 한다. 지금까지 인간 광우병 발병자는 소수였다. 하지만 사회가 치러야 할 혼란, 경제적 손실은 재앙에 가깝다.
또한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을 일부 괴담에 속은 ‘우중(愚衆)’으로 모는 것도 매우 위험하다. 조선도 사설과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광우병 파동의 이면에는 정부의 졸속협상과 오만한 초기 대응이 있었다. 이 부분에서는 조선 역시 주장에 앞서 자기성찰을 해야 한다. 정부에만 잘못을 떠넘기는 것은 곤란하다. 과연 조선은 정부의 협상 과정을 냉엄히 감시했는가. 촛불시민을 이념적 프레임에 끼워 맞추려 하지는 않았는가. 만약 이 같은 협상 결과가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 시절에 나왔다면 조선은 정권이 기우뚱할 정도로 혹독하게 보도했을 것이라는 게 언론계의 대체적인 평이다.
조선은 미디어환경 변화에 따라 ‘프리미엄 콘텐츠’를 강조해왔다. ‘인터뷰 불가’를 천명한 오피니언리더의 인터뷰를 성사시키고 각종 플랫폼에서 진일보한 기술을 선보이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독자들이 정치적 지향을 떠나 “이 신문에 나온 기사라면 일단 신뢰할 만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신문만이 미래에 살아남게 될 것이다.
‘촛불2년’ …조선일보와 이명박 대통령
[우리의 주장]기자협회보 편집위원회
최근 조선일보의 ‘광우병 촛불 2년’ 기획보도와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많은 논란을 야기했다. 우선 조선의 보도는 저널리즘의 원칙을 벗어난 참으로 이상한 기사라는 느낌을 주었다. 등장한 인물들이 거의 “2년 전 말할 때는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하는 식의 후회하는 내용으로 돼 있었다. 그리고 인터뷰에 등장한 인물의 사진은 여러 장이 모자이크 처리됐다. 등장인물들이 2년 전 당시의 발언을 소신있게 뒤집었다면 왜 조선일보가 소신있게 편집하지 못했을까.
조선일보와 인터뷰한 사람들 대다수가 “기사를 보고 경악했다”거나 “나의 발언이 왜곡됐다”고 말하고 있다. ‘촛불소녀’ 한채민양은 “시민단체가 써준 원고를 그대로 읽었다”고 보도된 데 대해 “꼭두각시처럼 따라읽을 만큼 멍청한 사람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대 우희종 교수는 “한마디로 말해 당했다”고 말했다. 우리 기자들끼리의 말이지만 언론이 인터뷰 상대자의 발언을 어느 정도 ‘정리’해 주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인터뷰 상대자들이 “정반대로 뒤집어서 보도했다”는 반응을 보일 때는 그 언론이 심각한 문제를 가졌다는 얘기다. 조선일보는 말한 대로 전달하지도 못하는 수준의 신문인가.
조선일보의 기획보도를 보고 기다린 듯이 이명박 대통령이 “2년 전의 촛불시위에 대해 반성하는 사람이 왜 없느냐”고 말했다는 것도 한 편의 코미디이다. 그는 나아가 촛불시위 2주년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도대체 누가 반성을 하라는 것인가. 스스로 반성하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대통령 앞에서 “내가 잘못했소” 하고 반성하라는 것인가.
돌이켜 보면 2년 전 광우병 촛불시위는 한국의 검역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대원칙과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국민적 집념이 표출된 것이었다. 학생, 주부, 시민들은 전국의 광장에 모여 주권국가인 한국이 광우병 우려가 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못하도록 결정하는 권한을 넘겨준 데 대해 이명박 정부에 항의한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에 문제가 있으면 한국 정부가 이것을 들여올 수 없도록 조치해야 하는데도 미국이 이런 결정을 하도록 한 것이 주권국가의 대통령이 할 일이었는가. 게다가 2년 전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했던 우희종 교수는 여전히 미국과의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이나 호주의 수입조건과 한국의 수입조건을 살펴보면 상식선에서 해결책이 나온다는 얘기다.
조선일보가 “야당 인사들이 미국에 와서는 미국산 쇠고기를 아무 탈 없이 잘 먹었다”고 보도한 것은 촛불 2년의 진정한 의미를 놓친 것이다. 이 기회에 조선일보도 ‘왜곡없는’ 올바른 보도라는 저널리즘의 원칙으로 되돌아가기 바란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국민들의 벌떼같은 항의시위로 인해 재협상에 나선 결과 그나마 다소 개선된 협상조건을 도출한 일을 기억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에 대해 “반성하라”고 하기 전에 오히려 국민이 재협상의 힘을 준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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