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 없는 정치를 심판하라
[칼럼] 예산안 강행처리 후폭풍과 철면피 집권층
미디어오늘
▶ 지난 8일 오후 한나라당이 힘으로 밀어붙여 각종 4대강 친수법을 비롯해 쟁점법안과 예산안을 날치기처리하는 과정에서 유혈 충돌 사태가 벌어졌다.
한나라당의 예산안 날치기 처리의 후폭풍이 거세다. 집권층 내부에서 서로 책임을 회피하거나 남에게 전가하는 추악한 모습이 벌어지고 있다. 진흙탕 속에서 개 싸움하는 격이요, 겨 묻은 개가 똥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다. 내 탓은 없고 네 탓 타령만이 난무한다. 여권 일각에서는 자성의 소리가 나오지만 이 또한 정권 재창출을 걱정하는 목소리에 불과하다. 진정한 정치적 수치심과는 무관하다.
여권이 한 통속이 되어 벌인 예산안 날치기 처리는 우선 삼권분립 정신의 훼손이라는 심각한 측면이 있다. 국회는 행정부 예산안 처리를 국민에게 최대한 서비스한다는 정신으로 엄격하게 객관적으로 수행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행정부 수장이면서도 국회가 법정 시일 안에 예산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문했고 ‘친 이계’ 한나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날치기 작전이 집행되었다. 이에 대해 대통령은 잘한 일이라는 식의 평가를 했고 청와대는 이를 공표했다.
국내외적으로 의회정치가 진흙탕 속으로 추락하면서 유권자들에게 정치에 대한 환멸감을 대못질한 현장이 TV로 생중계되었지만 대통령은 마치 외계인과 같은 사고방식의 소유자임을 스스로 드러냈다. 전 세계가 비웃었을 예산안 날치기 처리가 이뤄진 날 이 대통령은 해외 순방길에 올랐다. 그를 맞이한 외국에서 한국의 정치를 어떤 식으로 판단하면서 이 대통령을 맞았을까를 생각하면 등골에 식은땀이 솟는다. 나라 망신, 민족 망신을 이런 식으로 시키는데 국민이 속수무책인 것은 현대 의회민주주의에 내포된 치명적인 결함이다.
날치기 처리의 후폭풍이 거세지자 청와대에서 대책회의가 열리고 한나라당 정책위원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몸통은 따로 있는데 깃털만을 손본 꼴이다. 이런 식으로 사태를 수습할 수 있다고 여긴 여권의 사고방식은 전율을 느낄 정도로 천박하다. 특히 정도에 어긋난 정치를 하면서 느껴야 할 수치심이 집권층에게 고갈 상태라는 것은 정말 불행한 일이다. 여당 내에서 아직도 날치기 처리가 ‘정의’라고 주장하거나 예산 담당행정부처가 책임이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고위 당직자가 건재 한다. 청와대를 향한 해바라기 정치에 몰두하면서 수치심에 대해 백치상태인 대표적 인물들이다.
3권 분립은 효율적인 국정 수행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장치다. 과거 군사 독재 정권이 3권분립을 철저히 유린하면서 국정을 농단했던 모습이 오늘날 이명박 정권에게서 확인된다. 전국을 청계천화 하려는 4대강 사업 예산은 물론 '형님 예산'과 '청와대 안방마님 예산' 등은 고스란히 챙기고 정작 기초적 복지 등에 필요한 예산은 몽땅 제외되었다. 민주주의 정치는 국가 살림인 예산을 통해 실천된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날치기로 통과된 예산은 반민주적, 반민생적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한나라당과 청와대가 연출하는 구역질나는 신파극은 이 나라 기득권층의 수치심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수치심은 여러 각도에서 논의되지만 학습되는 측면이 강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배운 만큼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인간의 감정 가운데 수치심이 가장 강렬하다는 주장도 있다. 극단적인 경우지만 일본 무사들은 수치심은 자결로 해결하도록 학습을 받았다.
수치심은 사회 기본 질서를 유지하는 기준과 같다. 수치심을 유발하는 어떤 언행을 범할 경우 느끼는 감정은 자신이 더할 나위 없이 비참하고 비루하며 어떤 것으로도 그것을 상쇄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다. 이런 수치심은 현 정권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현 정권은 날치기 예산 후유증으로 전국이 소란스런 과정에 국무회의를 통해 새해 예산안을 확정하고 의결했다. 양식과는 담을 쌓은 철면피한 정권이다. 국민이 무어라 하든 내 갈 길을 가겠다는 심뽀다.
현 정권의 뿌리가 이른바 보수를 표방한 세력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수치심을 따지는 것이 전혀 무의미한 일이기는 하다. 이 나라 보수는 일제에 야합하고 30년간의 군부 독재 속에서 잇속을 챙긴 부도덕한 세력이다. 보수가 과거청산에 한사코 반대하는데 이는 수치심을 모르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보수 세력 내부에 수치심이라는 단어는 존재치 않은 것이 이 나라 비극의 씨앗이 되고 있다. 그런 모습을 이번 날치기 소동과 청와대 등 집권층의 태도에서 다시 한번 확인한다.
많은 사회에서는 수치심을 강제로 느끼게 만들어 사회 질서를 유지한다. 부끄러운 짓을 범한 사람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만들어 동일한 행동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수치심이 증발된 더러운 정치를 심판해야 한다. 정치는 국민에 대한 봉사가 기본이라는 것을 정치인들이 뼈에 새기도록 만들어야 한다. 어떤 면에서 오늘날 수치심에 바탕을 둔 정치가 실종된 것의 책임 일부분은 유권자에게 있다. 유권자들이 대오 각성할 부분이다./고승우 전문위원
WSJ '올해의 사진'중 한반도 관련 사진 (0) | 2010.12.25 |
---|---|
야만의 시대 …거짓의 트라이앵글 (0) | 2010.12.22 |
청와대 '연평도' vs 백악관 '미사일 위기' (0) | 2010.12.04 |
껍데기는 가라 (0) | 2010.12.03 |
“가장 강한 군대가 있을 때 평화를 누렸다” (0) | 2010.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