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시대 … 거짓의 트라이앵글
교사를 때리는 학생, 폭력 의원 격려하는 대통령, 눈감은 언론 … 2010년 대한민국의 위기
미디어오늘
학생이 스승에게 손찌검을 한다. 대통령은 ‘폭력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격투기 솜씨를 격려한다. 언론은 그 폭압의 정치에 눈을 감는다. 2010년 대한민국의 위기를 웅변하는 풍경이다.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들이다. 교육과 정치, 언론은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세 기둥인 터다.
한국 교육을 지배하고 있는 핵심 화두는 ‘경쟁’이다. 경쟁을 통한 능력의 극대화, 그 거짓의 이데올로기가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 경쟁의 논리는 초등학교를 넘어 ‘요람’ 속 아이들에게까지 확산될 기세다. 경쟁지상주의를 통해 얻는 것보다는 그 희생이 너무 크다. 아이들은 인간성과 자연, 인권과 상상력을 그 대가로 치르고 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노는 것은 하늘이 내린 권리다. 아이들은 놀면서 세상을 배운다. 자연을 만나 생명의 기운을 체득하고, 자연의 아름다운 세계를 몸으로 경험한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더불어 살아가는 법도 익힌다. 싸우면서 성장하는 게 아이들이다. 또래들과의 싸움도 그들에게는 즐거운 놀이다. 철없는 아이들에 대한 인권탄압이 아무런 의심 없이 이뤄지고 있다.
▲ 서울신문 12월20일자 8면.
아이들 폭력, 경쟁·억압의 욕구불만 표출
경쟁시대 아이들은 자연과 차단돼 있다. 그나마 극소수 대안학교들에서 희망을 본다. 경향신문에 실린 한 산골 대안학교 모습이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천국이다. 그들의 얼굴엔 늘 생기가 넘친다. 그들은 컴퓨터 게임에 익숙하지 않다. 대신 자연을 벗 삼아 친구들과 함께 즐긴다. 학교에서 정규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은 가방을 내던지고 뒤뜰 닭장을 살피고, 들판에서 뛰노느라 땀범벅이 되기 일쑤다.’
MB는 대통령 후보 시절 사교육비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사교육비 부담은 더욱 커졌다. 격화된 경쟁의 결과다. ‘일제고사’는 학생과 학생, 학교와 학교 사이 경쟁에 불을 붙였다. 치열한 경쟁은 상상력을 좀먹게 마련이다. 이름 밝히길 꺼리는 한 사립고 교사는 한숨짓는다. “사교육은 자율적인 학습능력의 싹을 잘라내기 마련이다. 아이들에겐 홀로 생각에 잠겨볼 겨를이 없다. 주체적 인간은 물론 창조적 발상을 기대할 여지가 없다.”
폭력은 원초적인 야만의 징표다. 그것도 ‘그림자조차 차마 밟을 수 없는’ 스승에게 손질을 하다니 놀랍다. 아이들의 폭력에서 인간에 대한 애정의 결핍 현상을 본다. 그 폭력은 반자연적, 비인간적 교육의 자연스러운 산물이다. 그것은 경쟁과 억압의 체제가 낳은 욕구 불만의 분출이기도 하다. 교육은 국가경쟁력의 핵심 변수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경쟁지상주의는 교육경쟁력을 좀먹는 무서운 적이다.
정치판의 거짓은 뿌리 깊다. MB 역시 거짓말 정치에 능숙하다. 그는 진정성이 결여된 어법을 구사하는 데 탁월하다. 국민의 정치 불신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정치 불신은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로 이어지고 있다. 거짓의 정치판을 근본적으로 뒤엎는 일은 발등의 불이다.
정치 혁명은 시민의 몫이다. 선거는 그 혁명의 무대다. 문제는 혁명에 걸맞은 ‘대안’이 존재하느냐에 있다. 진보진영의 대단결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들도 그 당위성을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의 각오와 다짐도 뜨겁다. 그러나 그들 앞에는 뚫고 지나가야 할 두 개의 ‘바늘구멍’이 기다리고 있다.
‘기득권’은 통합 과정에서 최대의 걸림돌로 등장할 것이다. 제 손에 든 떡을 먼저 내놓기는 아깝다. ‘정강정책’도 미묘한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진보 정당으로 분류되는 정당들의 이념적 바탕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그 차이는 하찮다. 정치혁명을 기다리는 국민적 기대를 헤아린다면.
거짓 정치판에 짠맛 잃은 언론
역시 문제는 ‘진심’으로 귀결된다. 오늘 거짓의 정치풍토에서 진보진영 역시 자유롭지 않은 터다. 정략적 게임 방식으로는 큰 판을 움직일 수 없다. 그 열쇠는 단순하다. 그것은 소박한 ‘진심’으로 크게 양보하는 것이다. 물론 실천은 어렵다. 그래서 회의적인 시선이 대세인 것도 사실이다. 일반적 예상을 뒤엎는 ‘반란’은 한낱 꿈인가.
언론은 짠맛을 이미 잃어버렸다. 사회적 ‘산소탱크’로서의 기능은 사라졌다. 정치권력은 냉정한 감시의 대상이 아니다. 언론은 ‘내 편이냐, 네 편이냐’는 관점으로 바라볼 뿐이다. 보수-진보의 틀을 빌어 한국 언론의 야만성을 설명할 수 없다. 대통령과 주요 각료들의 도덕성, 정부 주요 시책은 이념과는 무관하다. 이념의 잣대로 보더라도 권력의 위선과 횡포, 과오는 냉정한 비판의 대상이다.
자본권력 앞에 언론은 한없이 초라하다. 대형 광고주가 언론을 손아귀에 넣고 쥐락펴락한 지 오래다. 디지털 격랑 미디어의 위기는 깊어지고 있다. 종합편성 채널이 궁지에 몰린 신문사들의 활로가 될 수 있을까.
상업성이 언론의 본분을 삼킬 개연성이 높다. 미디어 시장은 좁고 종편을 신청한 언론사는 넘친다. 이명박 정권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종편을 신청한 언론사들은 하나같이 MB 정권이 무시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갖가지 편법을 찾아 머리를 쥐어짜보지만 해법이 마땅치 않다. ‘황금알’은 이미 물 건너갔다. 종합 편성 방송들은 치열한 진흙탕 싸움을 펼칠 수밖에 없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자본의 언론 장악력은 한층 강화될 것이다.
‘자기 정화능력’의 뒷걸음질도 한국 언론의 어두운 그림자다. 지난날 철권 독재시절 언론은 본능적인 저항의 몸짓을 보였다. 권력에 순응함은 죄악이었고, 정권과 내통하는 언론인은 죄인이었다. 언론사엔 적어도 정의를 좇는 도도한 기운이 흘렀다. 그것은 빈사상태에 빠졌던 언론이 회생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었다. MB 시대, 그 흐름이 꺾이고 있다. 대신 거짓과 불의가 버젓이 춤춘다. 거짓의 문화가 교육과 언론,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 대한민국 미래를 위협하는 무서운 차꼬다. /고영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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