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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오르는 그들의 방식

한라의메아리-----/주저리주저리

by 자청비 2011. 2. 14.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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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와 ‘1박2일’, 정상에 오르는 그들의 방식

- 더디가도 함께 가자는 ‘무도’와 ‘1박2일’, 현실은?

엔터미디어

 

[정덕현의 스틸컷] 같이 가기보다는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살 수 있는 적자생존의 사회 속에서 같이 길을 간다는 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우연치곤 기막히다. 우리네 대표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과 '1박2일'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바로 이 '같이 길을 간다'는 것의 의미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 두 프로그램은 모두 동료가 함께 정상에 오르는 미션을 수행했고, 그 과정에서 남다른 동료애를 보여줌으로서 감동을 선사했다.

 

높이 90미터의 스키점프대 꼭대기까지 멤버 전원이 오르는 미션은 실로 '무한도전'스러웠고, 예능 냄새 쪽 빠진 채 다큐처럼 설악산 중청대피소까지 멤버 전원이 각각 나뉘어진 산행을 하는 미션은 실로 '1박2일'다웠다. '무한도전'이 가상의 놀이에서조차 그 진지함이 어떤 감동적인 의미를 선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면, '1박2일'은 여행 버라이어티답게 여행 속에서 그 감동적인 순간을 뽑아냈다.

 

오르는 길은 하나지만 그 길을 오르는 이들은 천차만별이다.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은 특유의 체력과 순발력으로 손쉽게 정상에 오르고, '1박2일'에서 강호동과 은지원은 비교적 수월한 산행으로 중청대피소까지 오른다. 하지만 '무한도전'에서 거구의 정준하, 나이 많은 박명수, 저질 체력의 길은 자꾸만 밑으로 미끄러지고, '1박2일'의 이수근과 김종민은 놀란 근육이 쥐를 일으키면서 자꾸 뒤쳐진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빛나는 건 동료애와 희생정신이다. '무한도전'에서 제일 먼저 정상에 오른 유재석은 동료 모두를 정상까지 올라가게 하기위해 줄을 타고 밑으로 내려와 동료들을 끌어올려주고, 포기 직전의 길에게 아이젠을 풀어줌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맨 밑으로 내려가 다시 오르면서 뒤에서 길을 밀어 올려준다. 그러면서 미안해 하는 길에게 "포기만 하지 마라"고 말하고, 두려워하는 그에게 "나를 믿어라"하고 말한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모두 같이 정상에 오른다.

 

'1박2일'에서 먼저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이승기는 짐을 풀어놓고 곧바로 동료들을 마중하러 나간다. 쥐가 난 다리로 고군분투하는 이수근의 짐을 대신 들어주고 올라오는 길에 역시 마중 나온 김종민을 만나고 그들은 베이스캠프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낙오 없이 모두 미션에 성공한 자신들에 뿌듯한 눈물을 흘린다.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이 길과 함께 오를 때 배경음악으로 깔린 이적의 '같이 걸을까'는 이 장면에 울림을 더해준다. '길을 잃은 때도 있었지. 쓰러진 적도 있었지. 그러던 때마다 서로 다가와 좁은 어깨라도 내주어 다시 무릎에 힘을 넣어 높은 산을 오르고 거친 강을 건너고...' 한편 '1박2일'에서 이승기가 이수근의 짐을 들어주고 함께 걸을 때 깔리는 음악은 'Lean on me'다. '힘이 나지 않을 땐, 내게 기대요. 당신의 친구가 되어줄께요. 당신이 버틸 수 있도록 도와줄께요." 의미를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감동적인 배경음악이다.

 

작금의 예능들이 스토리를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스토리는 바깥의 현실을 자꾸만 환기시킨다. 지병과 배고픔에 '남은 밥'이라도 달라는 쪽지를 남긴 채 저 세상으로 떠난 고 최고은 작가가 떠오르고, 생활고에 시달리다 뇌출혈로 작년 말 숨진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고 이진원씨가 떠오른다. 지금도 장벽처럼 놓인 사회로의 좁은 통로 앞에서 절망하고 있을 수많은 청춘들이 생각나고,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폭력적인 대우를 생계란 이름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노동자들이 아른거린다. 우리는 그들과 같이 가지 못하고 있다. 예능의 판타지가 깊을수록, 현실은 더 씁쓸해진다.

 

물론 의도적인 건 아니었을 게다. 하지만 원형적인 스토리, 즉 이처럼 목표를 향해 오르고, 그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끌고 당겨 모두 정상에 오르는 단순한 형태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작금의 현실과 즉각적으로 조우한다. 우리가 함께 가지 못했던 수많은 현실들의 그 사람들을. 그래서 '무한도전'과 '1박2일'은 마치 이렇게 얘기하는 것만 같다. 우리 더디 가도 같이 가자고. /칼럼니스트 정덕현 [사진 = KBS, MBC]

 

 

<같이 걸을까> - 이적

 

피곤하면 잠깐 쉬어가 갈 길은 아직 머니까
물이라도 한 잔 마실까 우린 이미 오래 먼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니까
높은 산을 오르고 거친 강을 건너고
깊은 골짜기를 넘어서 생의 끝자락이 닿을 곳으로
오늘도 길을 잃을 때도 있었지 쓰러진 적도 있었지
그러던 때마다 서로 다가와 좁은 어깨라도 내주어
다시 무릎에 힘을 넣어 높은 산을 오르고 거친 강을 건너고
깊은 골짜기를 넘어서 생의 끝자락이 닿을 곳으로
오늘도 어느 곳에 있을까 그 어디로 향하는 걸까
누구에게 물어도 모른채 다시 일어나 산을 오르고 강을 건너고
골짜기를 넘어서 생의 끝자락이 닿을 곳으로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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